아시아 최초로 한국 개최를 택한 ‘프리즈(Frieze)’의 선택은 현명했다.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한국 미술 시장이 프리즈를 품었다.
세계적 아트페어(미술장터) 주관사인 프리즈가 아시아 최초로 한국에서 개최한 ‘프리즈 서울’이 지난 2일부터 5일 오후 5시까지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렸다.
‘프리즈 서울’에서는 21개국 갤러리 110곳이 참여해 미술사의 주요 작가와 동시대 최고 작가들의 작품들로 부스를 차렸다.
1970년에 출범한 스위스의 ‘아트 바젤(Art Basel)’, 1974년에 시작한 프랑스의 ‘피악(FIAC)’과 함께 세계 3대 아트페어로 꼽히는 ‘프리즈’는 서울에서 큰 주목을 받았다.
VIP 티켓을 보유한 사람만 입장할 수 있었던 2일에는 개막 전부터 200m 넘게 줄을 서는 진풍경이 연출됐다. 첫날뿐만 아니라 마지막날까지 관람객이 이어졌다.
첫 날부터 거장들의 작품이 팔렸다. 하우저앤워스가 집계한 첫날 판매 내용을 보면 부스 전면에 걸어 둔 조지 콘도의 280만 달러(약 38억원) 상당의 유화를 비롯해 15점이 판매됐다. 조지 콘도의 붉은 색 화면이 돋보인 이 작품은 한국의 사립미술관이 구매한 것으로 전해졌다.
‘프리즈 서울’은 정치적인 변수가 존재하는 홍콩 대신 한국이 아시아를 대표하는 미술 시장으로 성장할 수 있을지 가늠해보는 시험대였다. 한국 시장은 가능성을 충분히 보여줬다.
◆ 런던 이어 두 번째로 큰 ‘프리즈 서울’ 품은 韓 미술시장
‘프리즈 서울’의 규모는 다른 아트페어 견줘도 손색이 없다.
사이먼 폭스 프리즈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2일 열린 간담회에서 “프리즈 서울에는 110여 개 갤러리가 참여했는데, 프리즈 뉴욕은 통상 60곳 정도가, 프리즈 로스앤젤레스는 100여 개가 참가한다”라며 “프리즈 런던에서는 약 300개 정도로 서울은 두 번째로 큰 규모다”라고 설명했다.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한국 미술시장은 프리즈를 품었다.
예술경영지원센터가 운영하는 ‘한국 미술시장 정보시스템’에 따르면, 2022년 상반기 미술시장 규모는 약 5329억원으로 집계됐다.
화랑이 2450억원으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가운데 경매(10개 경매회사 낙찰총액)가 1450억원, 아트페어(6개)가 1429억원을 기록했다. 여기에 분할소유권 시장 310억원을 포함할 경우 2022년 상반기 미술시장 규모는 5639억원으로 커지게 된다.
국내 미술시장은 2019년 3811억원에서 2020년 3277억원으로 줄어들었지만 2021년 9157억원으로 급속하게 성장했고, 올해에도 완만한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돌발 악재가 없는 한 올해엔 1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무엇보다 미술품을 사겠다는 심리가 꺾이지 않았다. 올해 상반기 경매시장의 출품작과 낙찰작이 크게 줄었음에도 낙찰총액은 오히려 늘어났다. 작품별 평균 낙찰가격이 큰 폭으로 상승했기 때문이다.
◆ ‘프리즈 서울’이 만든 기회와 남긴 과제
‘프리즈 서울’이 흥행에 성공함에 따라 한국의 미술시장에 대한 지원도 더욱 탄력을 받게 될 전망이다.
박보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2일 ‘프리즈 서울’을 방문해 행사장을 둘러보고 ‘키아프’ 운영위원장인 황달성 한국화랑협회장과 ‘프리즈’ 운영위원장인 사이먼 폭스 최고경영자를 만나 한국미술의 해외 진출 등을 논의했다.
박 장관은 “‘키아프’와 ‘프리즈’의 공동 입장권 운영을 계기로 국내외 미술 애호가와 미술전문가가 한국에 모여 매우 기쁘게 생각한다”라며 “앞으로도 우수한 한국 작가와 작품이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질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라고 밝혔다.
2023 ‘프리즈 서울’에 대한 구상도 시작됐다. 미술계에 따르면 지난 3일 오세훈 서울시장은 프리즈 서울 관계자 및 주요 VIP 만찬에서 최근 프리즈 측이 요청한 송현동 부지 행사 대여와 관련해 “내년 프리즈 서울과 키아프 개최지로 송현동 부지를 빌려줄 의향이 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프리즈 서울’이 흥행에 성공한 반면, 함께 개막한 ‘키아프’는 상대적으로 적은 관심을 받았다. 체급 차를 확인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키아프’를 통해 MZ 세대의 미술품에 관한 관심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프리즈 서울’에서 해외 갤러리들이 많은 작품을 판 것이 한국 미술의 성장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현실적인 평가도 쉽게 넘겨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