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의 발톱이 한국 금융시장을 찢어발겼다.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 의장이 잭슨홀에서 매파적인 연설을 펼친 여파로 국내 증시에서 시가총액이 50조원 이상(코스피 42조원, 코스닥 10조원) 증발했고 원·달러 환율은 1350원 선을 돌파했다.
29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날 코스피는 전일 대비 2.18%(54.14포인트) 내린 2426.89로 거래를 마쳤다. 이는 코스피가 글로벌 증시 대비 극도로 부진했던 지난 6월 22일(-2.74%) 이후 가장 큰 폭으로 하락한 것이다.
약세는 대형주에서 특히 두드러졌다. 이날 코스피 대형주는 2.24%, 시가총액 상위 200개 종목으로 구성된 코스피200은 2.33% 내리며 낙폭이 코스피 평균을 웃돌았다. 코스닥에서도 코스닥100 낙폭이 3.21%로 코스닥(-2.81%) 대비 약세를 보였다.
업종별로는 코스피에서 운수창고(-3.67%)와 섬유의복(-3.48%), 서비스업(-3.28%)이, 코스닥에서 반도체(-3.89%)와 제약(-3.82%), 비금속(-3.53%)이 부진했다.
코스피 급락을 야기한 투자 주체는 기관이다. 기관은 이날 5587억원어치를 순매도하면서 지수 하락을 주도했다. 업종별 기관 순매도 규모는 제조업이 3562억원으로 가장 컸다. 이어 전기전자(-2776억원)와 서비스업(-886억원), 화학(-584억원) 등이 뒤를 이었다.
장 초반 국내 증시를 순매수했던 외국인도 459억원어치를 순매도하며 증시 발목을 잡았다. 오전 9시 32분을 기점으로 순매수를 끝낸 외국인의 순매도 규모는 장중 한때 1000억원을 웃돌았다. 외국인은 전기전자(-714억원)와 철강금속(-202억원), 통신업(-178억원) 등을 집중적으로 매도했다.
반면 개인은 코스피에서 5995억원, 코스닥에서 1024억원어치를 순매수하며 다른 투자 주체가 던진 물량을 떠안았다. 특히 제조업을 3499억원어치 순매수했고 전기전자(3399억원)와 서비스업(1016억원), 금융업(640억원) 등을 적극적으로 주워담았다.
김석환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파월 의장이 매파적인 발언을 통해 강렬한 메시지를 전달하면서 미국 기준금리 인상이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득세하며 투자심리가 위축됐다"며 "이번주 시장은 잭슨홀의 여운을 소화하며 월말월초 주요 경제지표 발표에 주목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환율도 급등했다. 장중 한때 원·달러 환율은 달러당 1350.80원으로 1350원 선을 돌파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부 개입으로 환율은 소폭 하락하면서 1350.4원으로 마감했다. 증권업계는 환율이 달러당 1350원 선을 재차 돌파할 수 있다고 봤다. 다만 정부가 환율 방어 의지를 드러낸 만큼 1350원 선에서 매매 공방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한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파월 의장의 잭슨홀 발언을 통해 미국 연준의 매파 기조가 확인됨에 따라 당분간 달러 강세 기조를 꺾을 수 있는 이벤트가 부재한 상황”이라면서 “반면 유로화와 영국 파운드화 약세가 달러화 가치 추가 상승으로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불안한 대외 여건을 고려할 때 원·달러 환율은 재차 1350원 선을 위협할 가능성이 높다”며 “정부의 1350원 선 방어 의지가 강해지고 있어 저항선이 쉽게 돌파되지는 않겠지만 1350원을 두고 시장과 정부 간 공방이 예상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