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대표 미스터리 작가인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 〈화차〉는 갑자기 종적을 감춘 여성의 행방을 쫓는 스릴러다. 휴직 중인 강력계 형사 혼마는 먼 친척 조카로부터 '실종된 약혼녀 세키네 쇼코를 찾아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단순실종으로 조사를 시작하던 혼마는 시간이 갈수록 그녀 뒤에 하나씩 밝혀지는 믿을 수 없는 실체를 접하게 된다. 이름부터 출신, 직장까지 쇼코가 약혼자에게 말한 신상이 모두 거짓말이었던 것이다. 알고 보니 쇼코는 갚을 수 없을 만큼의 빚을 지고 사채업자들에게 쫓기다 급기야는 자신의 정체성까지 지워야 했던 비운의 여자였다.
소설의 배경이 되는 1990년대 초반은 무시무시했던 일본의 버블경제가 시작되는 시점이기도 하다. 일본 스스로도 잃어버린 10년이라고 칭하는 이 경제 암흑기 시대가 초래한 각종 사회문제들이 이 소설의 모티브다. 카드빚과 신용불량, 개인파산, 가정경제파탄 등 현대 자본주의가 파생시킨 다양한 문제점들이 도미노처럼 서로 맞물리면서 한 개인이 얼마나 몰락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이 작품은 모든 것을 포기하고 살 수밖에 없었던 한 여자의 삶을 역순으로 파헤쳐 간다. 우리나라에서는 변영주 감독이 이선균·김민희 등의 스타급 배우들을 내세워 같은 이름으로 영화화한 작품으로 화제가 됐다.
영국 경제학자 케인스는 "내가 1파운드를 빚지면 내 문제겠지만, 100만 파운드를 빚지면 그건 빌려준 사람의 문제가 된다"라고 말했다. 개인 부도는 은행에 커다란 비용 발생 요인이 된다. 가계부채가 많아지면 이는 결국 그 사회 전체의 문제가 된다. 개인이 빚을 갚느라 소비를 줄이면 경기가 침체에 빠지고 이는 소득 감소라는 악순환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최근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사상 처음으로 기준금리를 0.5%포인트 인상하는 '빅 스텝'을 단행했다. 기준금리가 높아지면 은행 등 금융기관의 자금 조달 비용이 늘어나 결국 금융기관이 소비자에게 적용하는 금리도 동반 상승하게 된다. 대출자의 부담이 그만큼 커질 수밖에 없다. 시장 예상대로 기준금리가 연말까지 0.5%포인트 더 오르면 시중은행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지난해 연 4%에서 연말에는 8%로 상승할 것으로 보인다. 이 경우 다중채무자나 자영업자, 수년간 차입을 통해 공격적으로 자산을 매입한 소위 '영끌족'과 '빚투족'은 원리금 상환 부담으로 공포에 사로잡히게 될 것이다.
가계부채는 투트랙 전략으로 풀어가야 한다. 소비 위축을 초래하지 않는 범위에서, 최악의 상황이 도래해도 어떻게든 상환이 가능한 수준으로 대출을 촘촘하게 관리해야 한다. 대환대출이나 분할상환 프로그램을 적극 펼쳐 갚을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 갚을 수 있도록 하고, 갚을 수 없다면 맞춤형 신용회복 프로그램을 지원해 지속적인 경제 활동이 가능하도록 도와야 한다. 은행들은 고령층(60대 이상) 가계부채 증가, 고신용자 대출 위주 증가, 비은행 가계대출 급증 등 한국의 가계부채 증가에서 나타나는 우려 신호에 주목하고 대비책을 세워야 한다.
아울러 이미 부실화가 진행돼 낙오된 기업과 가계를 위한 사회안전망을 강화해야 한다. 정부가 오는 10월부터 자영업자 및 소상공인의 빚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가동하는 '새출발기금' 이 한국형 신(新)배드뱅크로 자리할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가계부채는 연착륙을 통한 규모 축소가 핵심이다. 정책의 일관성을 통해 금리가 급등하거나 집값이 큰 폭 하락하는 등의 급작스러운 악화를 막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