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종 칼럼] 뉴욕타임스의 자기혁신과 종이신문의 운명

2022-08-04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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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종 교수]

얼마 전 미국 권위지 뉴욕타임스는 특이한 칼럼을 하루에 8개나 게재했다. 신문의 대표적인 칼럼니트스 8명이 과거 자신들 주장이 틀렸음을 인정하는 글이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은 인플레이션이 없을 것이라던 자신의 의견이 실수였다고 밝혔고 퓰리처상 수상자인 토머스 프리드먼은 중국의 언론 통제가 완화되리라는 자신의 예측이 빗나갔음을 인정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지지자들을 과소평가했고 페이스북을 칭송했던 것도 과오였다는 칼럼도 있었다. 모두 용기 있는 자기반성이었다. 그리고 이런 파격적인 칼럼의 배경에는 끊임없는 자기반성과 혁신을 추구해온 뉴욕타임스의 정신이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뉴욕타임스의 이러한 부단한 자기 혁신과 개혁은 엄청난 성과로 돌아왔다. 불과 10년 전에 100만부에도 못 미치던 구독 수가 지난 2월 1000만부를 돌파했다. 원래 목표를 3년이나 앞당겼다. 구독자 수는 그보다 약간 적어 910만명에 달했다. 앞으로 계획은 더 야심 차다. 2027년까지 구독자 수를 1500만명으로 늘릴 계획이다. 최고경영자인 메르디스 레비언은 전 세계 1억3500만명이 잠재적 구독자라고 밝힌다. “세계를 이해하고 관여하려는 모든 영어 사용자에게 필수적인” 신문이 되겠다는 포부를 펼쳤다.

구독 및 광고 수입의 끊임없는 감소로 고전하는 한국 신문들에는 꿈만 같은 얘기다. 종이신문의 몰락을 점치던 전문가들은 이해할 수 없는 수수께끼다. 역시 미국 유력지인 워싱턴포스트도 비슷한 성공을 거두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그러하다. 워싱턴포스트 역시 아마존 창업자인 제프 베이조스가 2500만 달러를 들여 인수한 2013년 수십만 명에 불과하던 구독자 수가 현재 300만명을 넘고 있다. 2017년부터 3년 동안 무려 3배 증가했다.

많은 신문들이 경영난으로 문을 닫는 시점에 무엇이 이들에게 이렇게 엄청난 성공을 안겨주었을까? 두 신문사가 약간 차이는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과감한 유료화 전환이다. 뉴욕타임스는 2011년 획기적인 디지털 전환을 선언하며 디지털 구독자에게 요금을 부과하기 시작했다. 매달 일정 수의 기사까지는 무료로 제공하지만 그 이후부터는 구독료를 요구했다. 전통적으로 의존하던 광고 시장은 구글이나 페이스북 등 디지털 플랫폼이 장악하는 가운데 이에 대한 의존을 줄이고 대신 구독 수입을 늘리기로 했다. 그 결과 2000년대 수입 중 25%에 불과하던 구독 수입을 현재 72%까지 늘리고 광고 수입은 67%에서 17%로 줄였다. 종이신문 구독자가 현재도 80만명에 지나지 않아 구독 수입 대부분은 디지털 구독자에게서 나온다.

대부분의 온라인 정보가 무료인 가운데 유료화를 요구하는 것은 매우 위험했으나 이 신문은 콘텐츠의 질을 획기적으로 향상시켜 이를 극복했다. 많은 신문사가 기자들을 해고할 때 오히려 인원을 늘렸다. 특히 폴리티코(Politico)나 버즈피드(BuzzFeed) 같은 온라인 매체의 인재들을 고액 연봉을 주고 영입했다. 지명도가 높은 칼럼니스트도 늘려 이들의 개인 브랜드를 십분 이용했다. 10년 전 1000여 명이었던 편집국 인원수를 두 배 이상으로 늘렸다.

이러한 투자를 위해서는 많은 자금이 필요했고 이를 위해 비핵심 자산들을 모두 매각했다. 본사 건물도 매각하고 임차를 택했다. 그다음은 콘텐츠 다양화를 꾀했다. 낱말 풀기 퍼즐 등 게임 콘텐츠와 요리 콘텐츠 및 멀티미디어 서비스를 강화했다. 해외 뉴스 지국을 확장해서 국제 뉴스를 대폭 늘렸고 이를 통해 많은 해외 구독자를 유치했다.

이들 신문에는 또한 운도 따랐다. 2016년 보수적인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되자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이들 신문은 강경한 어조로 그의 정책을 비판하여 역시 진보적인 독자들에게 호응을 얻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파격적인 언행과 전통 언론에 대한 공격적인 태도 역시 독자들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특히 워싱턴포스트는 트럼프와 날카로운 대립각을 세우면서 그의 취임 후 3년 만에 구독자 수를 세 배로 늘렸다. 민주주의는 어둠 속에서 사라진다(Democracy Dies in Darkness)라는 새로운 슬로건을 통해 트럼프의 비민주적인 행태를 공격했다. 코로나 바이러스 팬데믹 출현 역시 도움이 되었다. 많은 독자들이 이에 관한 새로운 정보를 얻고자 열심히 구독했다.

또한 이들 신문은 디지털 기술에 과감한 투자를 했다. 광고 부문 인력을 줄이는 대신 엔지니어나 소프트웨어 개발자 등을 대거 채용했다. 특히 워싱턴포스트는 여기에 전력 질주했는데 이는 베이조스가 가장 관심을 가졌던 부분이다. 아마존에서 개발된 디지털 기술들을 이 신문에 적용했고 소위 데이터 주도(data-driven) 뉴스룸을 만드는 데 공을 들였다. 모바일 구독자들이 보다 빨리 기사를 업로드하고 오프라인 상태에서도 이를 읽을 수 있도록 소트프웨어를 개발했다. 정도는 약하지만 뉴욕타임스도 디지털 기술 개발에 역점을 두었다.

이러한 조치들을 통해 이들 두 신문은 뉴스 제작·배포 형태를 획기적으로 바꾸었다. 디지털 환경에 맞게 24시간 뉴스 공급을 도모했고 이를 위해 미국에 집중되어 있던 편집 기능을 전 세계로 분산했다. 뉴욕타임스는 현재 뉴욕, 런던, 서울을 전 세계 3대 뉴스 허브로 운영하고 있다. 즉, 각 도시의 일과 시간 중에 전 세계 뉴스를 담당하고 있다. 뉴욕과 런던의 밤 시간에는 서울이 전 세계 뉴스의 중심 허브가 된다. 이를 위해 현재 서울에만 40명 이상의 에디터를 고용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 역시 비슷한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이와 같은 획기적인 변화와 이에 따른 성공은 역시 미국 신문사들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기본적으로 영어라는 언어를 통해 전 세계 독자들을 상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극히 제한된 여건과 환경 속에 있는 한국 신문사가 따라 하기에는 불가능한 현실이다. 특히 애초부터 네이버 등 포털이 뉴스 시장을 지배하는 구조에서는 더욱 어렵다.

그러나 환경만을 탓할 수는 없다. 불과 10여 년 전 이들 신문 역시 앞날이 암담했다. 부채는 눈덩이처럼 불고 있었고 만성 적자 속에 새로운 돌파구는 보이지 않았다. 종말이 눈앞에 있는 듯했다. 그러나 끊임없는 자기 혁신, 그리고 디지털 환경에 맞는 기술 개발은 이들의 운명을 바꾸어 놓았다. 한국의 뛰어난 디지털 환경은 한국 신문에도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 기술 혁신을 통해 변화하는 독자의 요구에 부응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 사회가 정파와 이념으로 갈려 혼란 속에 있는 것도 오히려 도움이 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 시절 두 신문이 정권에 대해 부단한 비판과 저항을 통해 영향력을 키웠듯이 정론을 고집하고 원칙을 고수한다면 한국 신문들도 독자들의 신뢰를 다시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종이신문의 종말을 고하기에는 아직 이른 시점이다.


이병종 필자 주요 이력

▷연세대 언론정보학 박사 ▷AP통신 특파원 ▷뉴스위크 한국지국장 ▷서울외신기자클럽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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