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이번 기회에 나토와 더 긴밀한 관계를 구축하려는 의지를 나타냈고, 뉴질랜드는 대놓고 중국을 비판했다. 중국이 군사·경제적으로 영향력을 극대화하는 가운데 서방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불안감과 반감이 커지는 상황이다.
나토, 글로벌로 확대?
나토는 29일(현지시간) 향후 10년간의 지침이 되는 새로운 ‘전략 개념’에 중국을 ‘체제상의 도전’이라고 명시했다. 나토가 약 10년 주기로 수정하는 ‘전략 개념’에 중국을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특히 중국에 대해서는 핵무기 개발뿐만 아니라 가짜 정보를 퍼뜨리거나, 전 세계 주요 인프라와 공급망을 지배하려 한다고 평가했다. 우주·사이버·해양에서 군사·경제적 영향력을 강화하고 있다고도 지적했다.
전략 개념은 “중국과 러시아가 국제 질서를 파괴하려는 것은 우리의 가치와 이익에 어긋난다”며, 인도·태평양 지역의 정세가 유럽과 대서양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점을 감안할 때 이 지역과의 협력을 강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도 명시했다.
전투력도 강화했다. 나토는 기존 4만 명인 신속대응군을 30만 명으로 확대하고, F-35 스텔스 전투기 2개 대대를 추가 배치하는 등 새로운 무기를 통해 유럽의 방어력을 끌어올리기로 합의했다. 또한 러시아와 국경을 맞닿은 핀란드와 스웨덴을 끌어안아 러시아의 문턱까지 나토의 영향력을 확대한다. 해당 소식이 전해진 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만약 군부대와 시설을 그곳(스웨덴과 핀란드)에 배치하면 우리는 똑같이 대응할 수밖에 없으며 우리를 위협하는 영토에 대해 같은 위협을 가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블룸버그 등 외신은 나토의 ‘전략 개념’에 주목하면서 나토가 새로운 시대에 맞서기로 했다고 전했다. 러시아가 동유럽 국가에 대한 노골적인 야욕을 드러내고 중국이 아시아 태평양 전역에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군사력을 증강하는 새 시대에 맞서는 것이란 시각이다.
나토 회원국들은 중국에 대한 표현을 두고 이견을 보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중국과 경제적으로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독일 등은 중국에 대해 강한 표현을 사용하는 것에 거부감을 표했다는 후문이다. 블룸버그는 “(나토가) 중국에 대한 표현을 두고 협상을 하는 데 몇 달이 걸렸다”며 “나토는 중국이 최근 러시아와 ‘무한한 파트너십’을 맺는 등 러시아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점을 우려했다”고 전했다.
리즈 트러스 영국 외무장관은 회담과 함께 “중국이 우크라이나를 면밀히 주시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며 중국이 대만을 침공하는 등의 “재난 수준의” 오판을 할 수 있는 “실제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나토에 바짝 다가가는 일본, 대놓고 중국 비판한 뉴질랜드
나토는 이번 정상회담에서 인도·태평양의 균형추가 중국이 아닌 서방으로 기울도록 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서방 정세에 한정했던 힘을 아시아 태평양을 포함한 글로벌로 확대할 것이란 강력한 시그널을 보낸 것이다.마르크 뤼터 네덜란드 총리가 우리나라, 일본, 호주, 뉴질랜드 정상들이 초대된 회담에 도착하면서 “나토가 돌아왔다”고 말한 점은 세계정세가 과거 냉전 시기로 돌아가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나토에 바짝 다가가려는 제스처를 취했다. 정상회의에 참석한 기시다 총리는 남중국해와 동중국해의 상황을 무력으로 바꾸려는 시도에 대해 우려를 거듭 강조하면서 스톨텐베르그 나토 총장의 조기 일본 방문을 고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일본 외무성 관리는 기자들에게 기시다 총리가 한국, 호주, 뉴질랜드 정상들과 함께 이번 정상회의에 참석한 것은 유럽의 안보가 인도·태평양의 안보와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아울러 기시다 총리는 윤석열 대통령, 앤선지 알바니스 호주 총리, 저신다 아던 뉴질랜드 총리 등과의 별도 회의에 참석해 나토 회의에 정기적으로 참석할 것을 요청했다.
가와시마 마코토 도쿄 대학 교수는 니혼게이자이신문에 “한·일 양국 정상의 나토 정상회의 참석은 확실히 획기적”이라며 “중·러와의 대립축이 명확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전략 개념이 중국의) 군사적 위협과 함께 경제를 언급하는 것은 경제가 안보의 한 영역이기 때문일 것”이라며 “중국이 한-일 정상의 나토 정상회의 참여를 강력히 경계한 것은 중국 입장에서는 포위망 형성으로 비치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도 마코토 교수는 “중국과 선진국의 경제 관계는 여전히 긴밀하다”며 “중국의 도전을 안보 영역으로 한정할 것인지, 경제 전반으로 넓혀 볼 것인지 등 아직 앞날은 불투명하다”고 강조했다.
타키다 요이치 일본경제 신문사 편집 위원은 “유럽이 드디어 눈을 떴다”며 “이 기회를 포착해 (서방과) 구체적인 연계 강화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뉴질랜드는 중국을 콕 집어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저신다 아던 뉴질랜드 총리는 나토 정상회의에서 국제 규범에 도전하려는 중국의 의지를 저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연설을 통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한 긴장 고조는 유럽에만 국한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는 중국을 지목하면서 “더 독단적으로 됐고 국제 규칙과 규범에 더 도전하려고 한다”고 비판했다.
아던 총리는 “우리는 우리가 보는 행동에 대응해야 한다”며 “인권 침해가 목격되는 경우 항시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고 했다.
중국이 남중국해 등 근해를 넘어 태평양 원양까지 진출하면서 뉴질랜드의 반감은 커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올해 4월에 솔로몬제도와 안보 협정을 맺으며 해당 지역에서 군사력을 확대하려는 우려를 일으켰다. 솔로몬제도는 오세아니아 남태평양의 파푸아뉴기니 동쪽에 위치한 섬나라다.
중국에 대한 반감 폭발
국제 사회에서 중국에 대한 반감은 나날이 커지고 있다. 퓨 리서치 센터가 조사한 최근 설문조사에 따르면 19개국 가운데 다수 국가에서 중국에 대한 부정적 견해가 사상 최고치에 근접했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응답자의 68%는 중국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를 갖고 있으며 미국, 일본, 우리나라, 호주, 스웨덴을 중심으로 부정적 인식이 많았다. 특히 부정적 견해를 가진 미국인은 응답자의 82%로 1년 전 76%, 2020년 79%보다 크게 늘었다.
응답자의 66%는 중국의 국제적 영향력이 점점 더 강해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중국에 대한 부정적 시각에도 불구하고 조사 대상 국가의 절반 이상은 자국과 중국의 관계가 양호한 상태라고 생각했다. 설문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62%는 중국과의 관계가 좋다고 답했고 32%만 관계가 나쁘다고 답했다.
주목할 점은 미국인의 약 70%가 중국과 관계가 나쁘다고 본 것이다. 호주(83%), 일본(81%), 한국(74%)도 관계가 안 좋다는 응답이 많았다.
특히 중국의 인권 문제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컸다. 79%는 중국의 인권 정책이 심각한 문제라고 답했고 45%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신뢰하지 않는다고 했다.
미국 정부를 비롯한 서방은 중국이 신장에서 집단학살(제노사이드)을 자행하고 있으며 티베트에서 사회, 안보, 종교를 통제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중국은 빈곤층에게 고용과 교육을 제공하면서 종교 극단주의에 맞서고 있다며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미국은 이달 21일 ‘위구르 강제노동 금지법’(UFLPA)을 발효해 중국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서 강제 노동으로 생산된 제품이나 원자재의 수입을 금지했다.
아울러 백악관은 신장 정부의 인권 침해 혐의와 관련해 CCTV 제조업체인 항저우 하이크비전 디지털 테크놀로지(Hangzhou Hikvision Digital Technology Co. )에 제재를 가하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는 인권 탄압에 쓰이는 제품을 만드는 중국 기업에 기술을 판매하는 것을 금지하는 행정 명령을 내린 바 있다.
한편, 해당 설문조사는 올해 2월 14일부터 6월 3일까지 19개국 성인 2만944명을 대상으로 실시됐다. 조사 대상 국가는 미국, 캐나다, 벨기에, 프랑스, 독일, 그리스, 이탈리아, 네덜란드, 스페인, 스웨덴, 영국, 일본,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한국, 헝가리, 폴란드, 이스라엘, 호주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