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29∽30일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리는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정상회의에 나토 파트너 국가 자격으로 참석한다. 한국 대통령이 이 회의에 참석하는 것은 처음이다. 취임 후 첫 해외 순방이고, 대면(對面) 다자외교 무대 데뷔이기도 하다. 나토 파트너국은 한국 일본 호주 뉴질랜드 등 나토 훈련에 참여하거나 정보 교환 등을 통해 협력 관계를 맺은 나라다.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이 동맹국과 파트너 국가 간 회의 세션에 참석하는 한편 여러 정상들과 양자 회담도 할 것”이라면서 “가치와 규범을 토대로 한 국제질서를 위해 협력을 강화하고, 글로벌 중추 국가로서 우리의 역할을 확대할 중요한 계기 될 것”이라고 말했다.
북방정책이 햇볕정책의 뿌리
저자는 노태우 정권(1988∽1993년) 때 북방정책을 '한국이 국제 체제 수준의 외교 전략을 최초로 입안해 실행한(성공한) 케이스'로 본다. 한·소, 한·중 수교를 통해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체제의 변화를 유도했고, 북한은 이로 인한 체제적 압박(systemic constraint)을 견디지 못하고 끌려 들어옴으로써 획기적인 남북기본합의서(1991년) 체결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정확한 평가다. 북방정책은 그 창의성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감이 있다. 결실인 남북기본합의서만 해도 남북 화해와 상호 불가침, 교류협력의 방책을 구체적으로 제시한 대북·통일정책의 대장전(大章典)이었다. 그럼에도 제대로 계승되지 못했다. 북한 측의 이행 노력이 뒤따르지 않은 게 주된 원인이었지만 우리 측에서도 뒤이은 정권들이 그 동력을 살려가지 못했다.
오늘날 진보 좌파 진영이 전가의 보도로 삼는 햇볕정책도 그 출발점은 북방정책이다. 북방정책 없이 햇볕정책이 가능했겠는가. 햇볕정책을 열 번 얘기할 때 북방정책을 한 번이라도 언급하는 균형감과 아량을 보였더라면 남북 관계 담론과 논의 구조가 이토록 한쪽으로 기울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북한에 대한 체제 압박의 효과
윤 대통령의 NATO 정상회의 참석은 북한에 대한 체제적 압박, 곧 국제 체제에서의 압박을 가중시킬 게 분명하다. 핵을 포기하고 책임 있는 국제사회 일원이 되라는 압박이다. NATO는 회원국이 30개국이고, EU(유럽연합)는 회원국이 27개국이다. 윤 대통령이 NATO 회원국 정상들과 만날 때마다 김정은의 심경이 어떨까. 북방정책 당시 김일성 주석의 심경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저자는 국제 체제의 압박을 통해 외교적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한 최초의 인물로 오스트리아제국의 재상 메테르니히(Klemens von Metternich, 1773∽1859)를 소환한다. “메테르니히는 국제 관계가 단순 양자 관계에 기초해서는 평화롭게 유지될 수 없고, 강대국 어느 누구도 벗어날 수 없는 ‘체제(국제 체제·International System) 수준의 결속 혹은 압박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메테르니히는 독일 통일의 주역 비스마르크(1815∽1898)와 함께 구미(歐美) 외교사에서 전설로 기억되는 인물이다. 이념적으로는 보수 반동이었지만 나폴레옹전쟁이 끝난 후 세력 균형에 기초한 유럽 협조 체제(Concert of Europe)를 구축함으로써 유럽에 100년 평화 시대를 연 주인공이다. 저자는 북방정책이 메테르니히의 전략과 어느 정도 유사하다고 암시한다.
김일성, “천군만마를 얻었다”
북방정책에 대해 당시 북한이 느꼈던 압박감은 실로 컸다.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 초반 자고 나면 동유럽 공산권 국가들이 우수수 무너지던 때였다. 당시 필자는 통일부 출입 기자였다. 김일성 주석은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가 체결됐을 때 안도의 숨을 쉬었다고 한다. 일설에 의하면 김일성은 “(기본합의서로) 천군만마를 얻은 것 같다”는 말도 했다고 들었다. 당시 김 주석은 “남북 관계는 누가 누구에게 먹히는 관계가 되어서는 안 된다”(1991년 1월 북한 신년사)고 했는데 이는 흡수 통일에 대한 북의 우려를 처음 표명한 것이었다.
6자 회담 실패 딛고 글로벌 접근으로
물론 지금 상황은 다르다. 그때는 북한이 핵을 보유하기 이전이었지만 지금은 엄연한 핵 보유국이다. 북핵 문제를 남북 양자 관계 차원에서 풀기가 훨씬 더 어려워졌다. 그럴수록 다자적 차원에서 다시 시도해볼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한다. 북한에 대한 국제 체제적 압박을 통해 핵을 포기하도록 설득·압박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압박'이란 용어에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면 ‘지렛대’라는 표현을 쓸 수도 있겠다.)
다자 정상외교를 통한 대북한 ‘체제적 압박’은 북핵 6자 회담 실패와 오버랩된다. 남북한과 미국·중국·일본·러시아 6자는 2003년부터 10여 년간 수차례 회담을 하고 북핵 문제 해결을 모색했으나 무위에 그쳤다. 이번 나토 회의에서 윤 대통령이 어떤 형태로든 북핵 문제를 거론한다면 다자적 해결 노력, 곧 6자에 국한되지 않는 확대된 ‘글로벌 접근’으로 새롭게 재조명될 수 있다.
윤 대통령의 NATO 정상회의 참석에 대해 언론은 “미국 중심의 동맹 열차, 그것도 앞자리에 타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이라고 해석했다. 어떤 동맹 열차인가. 자유민주주의라는 가치를 공유하는 사람들이 타는 열차다. ‘자유’가 인류 보편의 가치임을 강조해온 윤 대통령으로서는 자연스러운 선택일 것이다.
“윤 대통령 취임 후 영향력 상승”
미국 측 전문가들도 일제히 반겼다. 에번스 리비어 전 국무부 동아태 담당 수석부차관보는 “윤 대통령이 NATO 정상회의에 참석하기로 함으로써 북한에 강력한 신호를 보냈다”면서 “한국은 윤 대통령 취임 후 불과 몇 주 만에 국제사회에 대한 영향력과 파급력이 최상위 수준으로 올라섰다”고 평가했다.
패트릭 크로닌 허드슨연구소 아시아·태평양 석좌교수는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해 한·미 동맹에 대해 우위에 서려고 시도한다면 한국이 매우 강력한 파트너들과 함께 국제적으로 협력하는 것을 보면서 그러한 시도가 무의미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6월 11일 미국의소리 방송·VOA)
한·나토 양자 관계 차원에서 긍정적인 발전이 있을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김정섭은 “나토가 민주주의, 인권, 법치주의 등 핵심 가치를 공유하는 서방 선진국들의 안보 공동체라는 관점에서 우리의 안보 개념과 한국군의 안보 역량을 현대화하는 거시적 차원에서 협력에 실익이 있을 것”으로 보았다.(김정섭, <외교상상력 – 지나간 백년 다가올 미래>, MID)
물론 다른 시각도 있다. “대미 편중으로 미·중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받는 상황을 자초한다”는 비판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한·미 동맹의 한 당사자로서 분단의 구조적 현실 앞에서 동맹 열차 탑승은 불가피할 뿐 아니라 최선의 선택일 수 있다. 백번 양보해도 한·미 관계가 이완돼 “한·미 연합훈련을 컴퓨터 게임으로 축소·전락시켰다”는 말을 들었던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는 일이다.
‘동맹 열차 탑승’은 잘한 결정
동맹 열차 탑승은 바른 결정이다. 무엇보다 글로벌 공급망 재편으로 통상질서가 흔들리고, 가치(價値)는 물론 첨단 기술과 자원을 놓고서도 서로 ‘깐부’가 되지 않고서는 생존할 수 없는 현실 앞에서 더욱 그런 확신을 갖게 된다. 예컨대 한·일 관계 복원이라는 외교적 난제 중 난제도 일단 동맹 열차에 올라타고 난 후에 풀어야 한다.
동맹열차를 타기로 한 이상 일본과 함께 가야 하고, 갈 수밖에 없다. 일본 측에도 이점을 설득해서 윤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총리의 현지 정상회담이 성사되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 이번 나토 정상회의 참석의 실익을 배가하는 방책일 것이다.
다만 언제 어디에서 동맹 열차에서 내릴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우리 몫이다. ‘친구 따라 장에 간다’고, 무작정 따라 갈 수는 없는 일이다. 우리는 필요한 때, 필요한 곳에서 내려야 한다. 앞으로 윤 대통령에게 그 결정은 탑승할 때보다도 훨씬 더 어려운 결정이 될 것이다. 우리 외교안보팀에 충분한 복안이 있을 걸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필자 주요 이력
▷고려대 정치학박사 ▷동아일보 정치부장 ▷동아일보 논설실장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