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는 최근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공약 중 하나인 촉법소년 연령 기준 하향을 이행하기 위한 정부안 마련에 본격 착수했다. 국회에서도 이미 촉법소년 연령 기준을 낮추는 내용이 담긴 개정안이 여러 차례 올라왔지만 계류 중이다.
촉법소년 연령 하향 문제를 두고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죄질에 따라 처벌을 해야 한다는 주장부터 보호처분을 더 세분화해야 한다는 지적까지 다양한 개선책이 논의되고 있다. 다만 일각에서는 연령을 하향해 소년들에 대한 처벌 가능성을 넓히는 것만이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회의적인 목소리도 나온다.
소년범죄 중 촉법소년 범죄 34%···성범죄 373건
지난 15일 국민동의청원 홈페이지에는 학교폭력과 성폭행을 저지른 촉법소년 가해자에 대한 엄중 처벌을 호소하는 청원이 올라왔다.해당 청원인은 "초등학교 3학년 A군(9)과 동급생 B군이 같은 학교 6학년 학생들에게 꾸준히 학교 폭력과 성폭행을 당했다"며 "(피해학생들은 형들이) 부모님이나 선생님에게 또 말하면 죽여버린다며 때리고 협박했다. 보복을 이미 당한 적 있어 똑같은 일이 반복될까 봐 두려워서 말을 못했다"고 했다.
청원인은 "또 다른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청원에 동의해 달라"며 "촉법소년 범죄는 점점 더 자주 발생하고 있다. 하루빨리 촉법소년 연령 하향 법안이 개정됐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최근 몇 년간 인천 초등학생 살인 사건, 부산 여중생 폭행 사건, 포항 여중생 폭행 사건 등 청소년의 잔혹한 강력범죄가 발생하면서 촉법소년 연령 기준을 낮춰야 한다는 주장이 고개를 들고 있다.
법원 통계월보에 따르면 촉법소년 범죄는 2019년 9376건, 2020년 1만112건, 지난해 1만1007건으로 꾸준히 증가했다. 2021년 전체 소년범죄에서 촉법소년이 차지하는 비율은 34.2%에 달한다. 2020년 ‘촉법소년’이 저지른 흉악 범죄 건수만 살펴봐도 살인 4건, 강도 14건, 성범죄 373건, 방화 49건이나 된다.
촉법소년 범죄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지만 범죄 연령 기준은 형법이 처음 제정된 1953년 이후 한 번도 바뀐 적이 없다. 국회에 계류 중인 개정안들은 1953년과 현재 아이들 성장·발육 상태가 다르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다만 연령을 몇 살까지 낮춰야 하는지, 연령을 낮추는 것이 실효성이 있을지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다.
윤석열 대통령은 후보 시절 촉법소년 연령 기준을 만 12세 미만까지 하향 조정하겠다는 공약을 냈지만 이후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는 하향 연령 기준을 결정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최근 “어릴 때 실수로 인해 전과자가 양성될 것이라는 우려가 없도록 정교하게 준비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하향 조정된 촉법소년 기준은 강력범죄에만 적용될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촉법소년 연령 기준 하향에 대해서는 반대도 만만찮다. 2018년 12월 국가인권위원회는 “형사미성년자 기준 연령 하향 등은 유엔 ‘아동권리협약’ 등 국제인권기준에서 강조하는 소년의 사회 복귀와 회복 관점에 반한다”고 주장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도 촉법소년 연령 하향 추진을 중단하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보호처분 세분화도 고려해야
단순히 형사처벌 연령을 낮추는 것은 정치권이나 공직자들이 일종의 '인기 영합적인 쇼'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곽대경 경찰사법대학 교수는 "연령을 낮추고 난 이후 12세 이하의 소년범들이 늘어나면 10세까지 낮추자는 얘기도 나올 텐데 연령을 낮추는 것은 정치를 하는 사람들이나 행정을 하는 사람들이 사회적 반감을 이용해 자신들이 열심히 일하는 것처럼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또 "연령 기준을 낮추는 것이 청소년 비행을 감소시키거나 재범률을 낮추는 효과가 있다는 객관적 데이터나 확신할 수 있는 자료들이 없다"고 전했다.
만 10세 이상∼만 14세 미만인 촉법소년은 범죄를 저지르더라도 가정법원 소년부로 송치된다. 이후 소년법에 따라 보호처분(1∼10호) 대상이 되는데 사회봉사, 보호관찰, 소년원 송치 처분 등을 받고 전과기록도 남지 않는다. 처벌보다 교화가 효과적이라는 취지다. 만 10세 미만은 책임 능력이 없다고 보고 보호처분 대상에서도 제외한다.
이와 관련해 보호처분을 세분화하는 입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김영식 서원대 경찰학부 교수는 "시대가 바뀌어서 청소년도 많이 달라졌다. 시대에 맞는 보호처분이 필요하다"며 "10호까지가 아니라 20호까지 가더라도 보호처분을 세분화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나이를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다. 현재 보호처분은 1호부터 10호까지 있는데 상한선이 많이 제한돼 있다. 흉악범죄를 저질렀거나 반사회적인 범죄를 저질렀을 때는 보호처분을 강화해야 한다"고 부연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범죄를 저지른 소년의 연령을 하향해 처벌 가능성을 넓히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는 점에는 입을 모았다.
승재현 형사법무정책연구원 박사는 "나이는 도외시하고 죄질만 고려하면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면서 "우리 성인들에게는 책임이 없는가 하는 반성적 고려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14세 미만인 소년들이 범죄를 저질렀을 때 그들을 형사처벌하는 것은 사회가 해야 할 의무를 방기하고 아이들에게 단순히 책임을 돌리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