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초강대국, 다잡는 밸류체인]① "소외된 '팹리스·OSAT' 투자 나서야 시스템반도체 1위 가능"

2022-06-13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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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팹리스 기업, 세계 점유율 1% 불과…OSAT, 파운드리 경쟁력 좌우

"팹리스 투자, 골든타임 놓치면 끝"… 첫 '민관 협력' 속도, 정부 지원 강화

윤석열 정부가 출범 직후부터 ‘반도체 초강대국 육성’에 박차를 가하는 가운데 반도체산업의 밸류체인(Value Chain 가치사슬)을 다잡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정부가 이달 중 ‘반도체산업 발전전략’ 공식 발표를 예고한 만큼 투자와 세제 혜택, 인력 양성 등 지원책 못지않게 그동안 미약했던 밸류체인별 경쟁력을 끌어올려야 장기적으로 K-반도체 영향력도 세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팹리스, 세계 시장 점유율 1% 미만…전문가 “기업·인재 키워야”
13일 업계에 따르면 반도체산업은 크게 메모리반도체와 시스템반도체로 구분되는데, 업체별로는 크게 △종합 반도체 회사(IDM : Integrated Device Manufacturer) △설계 전문업체(Fabless 팹리스) △위탁생산 전문업체(Foundry 파운드리)△외부 패키징 및 테스트 전문업체(OSAT; Outsourced Semiconductor Assembly and Test Service 오샛)로 분류한다.
 
또한 반도체는 생산 단계에 따라 전공정과 후공정으로 나뉘는데, 팹리스와 파운드리가 전공정에 속하며, 오샛이 후공정에 속한다. 다시 말해 반도체 업체를 구분할 때는 전공정 업체와 후공정 업체로 분류할 수 있다. 전공정에 속하는 세계적인 팹리스 기업으로는 퀄컴이 있고, 파운드리 업체로는 TSMC가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메모리반도체 IDM 업체 중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다. 또한 파운드리의 경우 삼성전자가 TSMC에 이어 2위의 점유율을 확보하고 있다. 하지만 팹리스와 오샛의 경우, 세계 시장에서 입지가 유독 취약한 상황이다.

특히 팹리스는 우리나라가 차지하는 세계 시장 점유율은 1%에도 미치지 못한다. 무엇보다 자금력이 약하고 인력 확보가 어려운 중소기업들이 이 시장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탓이다. 이에 전문가들은 그동안 반도체산업 가운데 유독 소홀했던 팹리스와 오샛 분야 투자와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세계 상위 팹리스社, 전체 반도체 매출 증가율의 2배… OSAT도 전망 밝아
차세대 반도체산업의 핵심인 시스템반도체 시장 강화를 위해서라도 이들 분야 기업과 인재를 육성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일례로 시장조사기관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 상위 10개 팹리스 기업 매출액은 총 1274억 달러(약 162조원)로 전년 대비 48% 증가했다.

작년 전체 반도체 시장의 매출 증가율은 21.1%로, 이 역시 높은 편이었지만 팹리스와 비교하면 절반 수준이다. 지난해 전 세계에서 100억 달러 이상의 매출을 올린 17개 반도체 기업 중 전년 대비 매출이 50% 이상 증가한 곳은 퀄컴·엔비디아·미디어텍·AMD 총 4곳인데 모두 팹리스 기업이다.

후공정을 책임지는 오샛의 시장성도 밝다. 시장조사업체 PRM애널리시스에 따르면 OSAT 시장은 2021년에서 2025년까지 연평균 13.5%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업계 관계자는 “윤석열 정부가 반도체산업을 통한 경제안보 강화에 힘을 쏟고 있는 만큼 그동안 소외됐던 팹리스와 오샛 분야에 대한 투자는 곧 시스템반도체 경쟁력 강화로 이어질 것”이라며 “이들 밸류체인에 대한 장기적인 비전과 투자, 지원책 없이 대만 TSMC를 추월하겠다느니, 시스템반도체 1위를 하겠다느니 하는 목표는 어불성설”이라고 지적했다.
 

윤석열 대통령(오른쪽)이 지난 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과 반도체 포토마스크를 살펴보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中企에 쏠린 팹리스 경쟁력 떨어져… 파운드리 대기업과 시너지 필요
업계 전문가들은 우리나라 반도체산업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최우선 과제로 ‘팹리스’를 꼽는다. 반도체 밸류체인 가운데 유독 허약한 분야로 꼽히기 때문이다.
 
12일 시장조사업체 IC인사이츠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 팹리스 시장 점유율 1위는 미국으로 68%를 차지했다. 이어 대만(21%)과 중국(9%)이 뒤를 따랐고 한국 점유율은 단 1%에 그쳤다.
 
국내 기업 중 세계 50대 팹리스에 속한 기업은 LX세미콘 단 한 곳에 불과하다. 지난해 말 기준 국내 팹리스 기업 수도 중국(2810개) 대비 20분의 1 수준(5%)인 120개일 정도로 저변도 미미하다.
 
문제는 팹리스 경쟁력이 약화하면서 시스템반도체 시장 전체에서 한국 경쟁력도 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시장조사업체 옴디아에 따르면 지난해 글로벌 종합 반도체(IDM) 시장에서 한국은 점유율 19.9%로 49.8%인 미국에 이어 2위다. 또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이끈 메모리반도체 부문 세계 시장 점유율도 59.1%다. 반면 시스템반도체 점유율은 3.0%에 그쳤다. 퀄컴과 엔비디아를 필두로 한 미국 시스템반도체 점유율은 69.1%에 달한다. 대만(11.0%), 유럽(8.6%), 일본(4.8%), 중국(3.3%) 순이었다.
 
메모리반도체 시장에서 독보적 1위인 우리나라가 정작 전 세계 반도체 시장의 70%를 차지하는 시스템반도체 시장에선 불과 3%에 그치고 있는 것은 팹리스 경쟁력이 유독 약한 탓이 크다.
 
메모리를 넘어 논리, 연산, 제어로 기능이 확장된 시스템반도체는 팹리스와 떼려야 뗄 수가 없다. 실제로 대부분 시스템반도체는 팹리스에 의해 설계된다. 미국 엔비디아·퀄컴, 대만 미디어텍 등 전통적인 강호 외에도 최근 들어 애플과 테슬라, 아마존, 구글까지 자체 반도체 설계 강화에 사활을 걸고 있다. 반면 국내 반도체 대기업 중에서는 팹리스에 대한 눈에 띄는 투자가 보이지 않는다.
 
현재 팹리스 분야별로 △CPU 인텔 △GPU 엔비디아 △모바일 SoC 퀄컴 △이미지센서 소니 등이 강자로 꼽힌다. 삼성전자는 주요 팹리스 사업 중 모바일 SoC, 이미지센서 등은 1등 업체들과 시장 격차가 크다는 자평이다. 이에 투자와 연구개발(R&D)을 통해 분야별 1등 업체와 점유율 틈을 메워나가겠다는 전략이다.
 
팹리스의 미래 시장성이 엄청나다는 점에서 전문가들은 더 늦기 전에 정부와 대기업이 힘을 합쳐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옴디아에 따르면 2025년 팹리스 시스템반도체 시장 규모는 4773억 달러로 메모리반도체(2205억 달러) 시장 규모에 비해 2배 이상이다. 실제로 전 세계 상위 10개 팹리스 기업 매출액은 총 1274억 달러(약 159조원)로 전년보다 48% 증가했다.
 
전문가들은 국내 팹리스 산업이 중소기업 위주로 성장한 탓에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대형 메모리 반도체 기업에만 고급 인력이 집중됐고, 자금 부담으로 신사업 투자가 부족했던 점을 팹리스 저성장의 원인으로 꼽는다. 또한 팹리스가 성공하려면 설계·개발한 반도체를 실물로 만들어 줄 파운드리를 확보해야 하는데, 삼성전자 등은 해외 대형 고객에게 집중했을 뿐이다.
 
이에 팹리스 기업과 대형 파운드리 기업 간 상호 보완적인 역할이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대만은 TSMC(파운드리)와 미디어텍(팹리스)이 서로 일감을 주고받으며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다.
 

[그래픽=아주경제 그래픽팀]

삼성전자, 내달 중기부와 ‘팹리스 챌린지 대회’ 개최…지원·육성 본격화
그나마 다행인 것은 국내 파운드리 강자인 삼성전자가 중소벤처기업부와 함께 다음 달 ‘팹리스 챌린지 대회’를 열고 관련 중소기업 육성에 본격적으로 나선다는 점이다. 이는 새 정부 들어 처음 가시화한 반도체산업 관련 민관 협력 사업이다. 최종 선정된 업체는 삼성전자가 우선으로 시제품을 제작해줌으로써 팹리스·파운드리 업계 간 시너지가 구체화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 차원의 전폭적인 지원도 대만 정부는 회사 설립 때부터 출자 형태로 자금을 대주며 키운 TSMC의 성공 사례를 팹리스에도 그대로 적용했다. 이를 통해 성장한 미디어텍은 최근 전 세계 스마트폰 AP 시장에서 미국 퀄컴을 앞질러 시장 점유율 1위 업체로 도약했다.
 
업계 관계자는 “반도체 초강대국 달성을 위한 골든타임은 한번 놓치면 끝”이라며 “특히 세계 점유율 1%에 못 미치는 팹리스 육성을 위해서는 기업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인재 육성 정책과 자금 지원 등 정부 지원책이 시급히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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