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 리스크] 경기침체 국면에 기업대출은 계속 늘어... "건전성 관리 시급"

2022-06-11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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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재 가격 상승 여파로 제조업 대출 급증

"금융권 대손충당금 더 쌓아야... 연체 대응"

서울의 한 시중은행 창구. [사진=연합뉴스]

국내외 경기침체가 예상되는 가운데 금융권의 기업 대출이 증가하면서, 기업의 잠재 부실, 대출 연체율 리스크가 금융기관에 전이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올해 하반기에 국내외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추가로 인상할 것으로 전망되면서 금융권이 지금보다 위기 대응 능력을 더 키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예금취급기관의 산업별 대출금 잔액은 전분기보다 63조9000억원 늘어난 1644조7000억원을 기록했다. 예금은행 대출은 28조1000억원, 비은행기관 대출은 35조8000억원 증가했다.
 
이 중 제조업 대출은 전월 대비 13조2000억원 늘어난 428조5000억원을 기록했다. 주요 업종 중 가장 높은 증가 폭이다. 제조업 대출 증가는 지난 2월부터 시작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전쟁으로 인한 원자재 가격 급등, 공급 병목현상(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현상)의 영향이 반영된 것으로 분석된다.
 
제조업의 경우 원자재 가격 부담과 중국의 ‘제로코로나’ 정책으로 인한 도시 봉쇄로 기업들의 체감 경기는 나빠졌다. 지난 5월 제조업 업황 기업경기실사지수(BSI)는 86으로, 전월 대비 1포인트 떨어졌다. 1차 금속업이 10포인트 떨어졌고, 반도체·디스플레이 제조용 기계장비의 수주 부진으로 기타 기계·장비업도 5포인트 하락했다. 6월 제조업 업황 전망 BSI도 전월 대비 1포인트 하락한 87을 기록했다.
 
김준수 키움증권 연구원은 “2020년 코로나 이후 점차 회복세를 보이던 기업들의 매출 및 수출 실적은 2021년 하반기부터 다시 둔화되기 시작했지만, 원자재 구입가격 실적, 즉 원자재 구매비 지출은 여전히 높은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며 “제조업에서 원자재 비용 부담이 대출 증가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대출 성장 맞춰 대손충당금 더 쌓아야”
그러나 금융권의 대출 성장 대비 대손충당금 적립이 적극적이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손충당금은 금융회사가 대출 손실이 발생할 가능성에 대비해 미리 쌓아놓는 돈을 의미한다. 은행권은 코로나19 확산이 본격화된 2020년에 매 분기 약 2조원 규모의 충당금을 쌓았으나, 지난해에는 분기당 1조원 수준으로 줄었다.
 
은행권은 자산건전성 지표인 고정이하여신(NPL) 비율에 따라 대손충당금을 쌓는다. NPL 비율은 은행대출 중 3개월 이상 원리금이 연체된 대출(부실채권)의 비중을 말한다. 올해 1분기 말 기준, KB국민은행의 NPL 비율은 0.20%, 신한은행 0.26%, 하나은행 0.24%, 우리은행 0.28%, NH농협은행은 0.23%로 낮은 수준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 3월 말 기준 국내 은행의 NPL 비율은 0.45%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그러나 이는 금융당국의 소상공인·자영업자 대출 만기연장과 원리금 상환유예 조치로 인한 착시라는 분석이 나온다. 금융당국과 금융권은 코로나19 확산으로 피해를 입은 중소기업, 소상공인을 지원하기 위해 2020년 4월부터 대출만기 연장, 원리금 상환유예 조치를 시행해오고 있다. 코로나19 장기화로 현재까지 6개월 단위로 총 네 차례 연장됐다. 지난 1월 말 기준 대출만기 연장, 원리금 상환유예 조치를 받은 대출은 133조4000억원이다. 만기 연장 잔액은 116조6000억원, 원금과 이자 상환유예 잔액은 각각 11조7000억원, 5조원이다.
 
정은보 전 금융감독원장이 지난달 은행이 대손충당금을 더 쌓아야 한다고 강조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는 지난달 3일 은행장들을 만난 자리에서 “대내외 충격에도 은행이 자금 중개 기능을 차질 없이 수행할 수 있도록 손실 흡수 능력을 확충할 필요가 있다”며 “평상시 기준에 안주하지 말고 잠재 신용위험을 보수적으로 평가해 대손충당금을 충분히 쌓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 연구원은 “비금융산업의 리스크가 금융기관에 전이될 가능성이 점차 부각될 것으로 보이며, 이에 금융기관의 건전성 관리와 연체 발생에 대한 선제 대응이 필요해질 것으로 판단한다”고 말했다.
 

4대 시중은행 로고 [사진=아주경제DB]
 

금리 인상기에 기업 자금조달 비용 커져... 하반기 실적 악화 우려
올해 한국뿐만 아니라 미국, 유럽 등 주요국이 기준금리를 인상하고 있어 기업들의 금융비용 부담은 더 커질 전망이다. 원자재 가격 상승 등으로 인한 실적 악화가 하반기에도 계속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한국은행은 주요국 기준금리 인상, 물가 상승에 대응하기 위해 올해 들어 기준금리를 0.25%씩 세 차례 올렸다. 올해 하반기에도 추가 인상이 유력하다. 한국은행은 9일 발간한 ‘통화신용정책보고서’에서 “물가 상승 압력이 전방위로 빠르게 확산되고 기대인플레이션도 상승세를 지속하는 상황에서는 중앙은행이 물가 안정을 도모해 경제 주체들의 물가 불안심리를 완화하는 방향으로 통화정책을 선제적으로 운영하는 것이 중기적 시계에서의 거시경제 안정화 도모 측면에서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이창용 한은 총재 또한 지난 5월 26일 금융통화위원회 개최 이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작년 2월에 나온 올 연말 기준금리 예상치를 보면 1.75~2.0% 정도”라면서 “그런데 지금 물가 상승률 예상치가 1%포인트 이상 높아졌기 때문에 당연히 시장이 예상하는 기준금리가 2.25~2.50% 이렇게 올라간 것은 합리적인 기대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기준금리를 한 번에 0.5%포인트씩 올리는 ‘빅스텝’에 나서고 있는 미국은 올해 말 기준금리를 3%대까지 인상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2023년 2분기에 미국 기준금리가 3∼3.25%에는 도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유럽중앙은행(ECB)은 기준금리를 다음달에 0.25%포인트 인상하고, 9월에도 추가로 인상하겠다고 밝혔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ECB 총재는 지난달 말 ECB 블로그에 올린 글에서 예금금리가 마이너스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ECB 위원인 로베르트 홀츠먼 오스트리아 중앙은행 총재와 마르틴스 카작스 라트비아 중앙은행 총재도 기준금리 인상을 논의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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