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조직개편 임박] 이달 중 혁신안 발표…'수재의 무덤' 오명 벗고 활력 찾을까

2022-06-09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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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30일 오후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금융협의회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취임 두 달여를 맞은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한은 직원들의 오랜 숙원인 조직개편 및 혁신안을 조만간 공개한다. 이 총재가 취임 전부터 한은의 변화와 혁신, 내부 직원들의 사기 진작 필요성 등을 지속적으로 강조해왔던 만큼, 대대적인 조직문화 쇄신을 통해 경직된 기존의 틀을 벗고 생기있는 조직으로 거듭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9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한은의 조직개편안 및 혁신안 공개가 이르면 다음주, 늦어도 이달 말 공개된다. 당초 이번주 중 발표될 예정이었으나 지연됐다. 한은 관계자는 “개편안 내용은 어느 정도 마무리 수순인 것으로 안다”면서도 “다만 대외적으로 발표하기에는 더 손을 봐야 한다는 의견에 따라 예상보다 시간이 걸리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외부선 ‘신의 직장’, 내부선 ‘비효율·낡은 조직’ 괴리…직원 이탈 심화

한은의 조직개편 필요성에 대한 문제 제기는 비단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외부에서는 높은 연봉과 안정적인 근무여건 등으로 인해 ‘신의 직장’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고 있지만, 정작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입사한 직원들은 조직 내 처우 등에 대한 불만으로 수년째 들끓고 있는 실정이다.

한은 직원들의 가장 큰 불만은 수년째 계속되는 저조한 임금인상률이다. 지난 2018년 이후 해마다 0~2%대에 그친 인상률은 물가 상승 등을 감안하면 사실상 동결과 다름없는 상황. 한국은행 인건비는 한은법에 따라 기획재정부 승인을 거쳐 결정되는데, 한은의 경우 공무원보다 1%포인트가량 낮은 수준에서 상승률이 결정되고 있다.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 시스템 알리오(ALIO) 등에 따르면, 한은 직원의 평균 임금은 지난 2018년 9940만원에 이어 2019년 9910만원으로 축소됐다가 2020년에 1억60만원으로 소폭 늘었다. 지난해 평균 연봉은 1억1370만원으로 집계됐다. 그에 비해 출범 6년차를 맞은 카카오뱅크 임직원의 평균 임금은 2021년 기준 1억5000만원 수준이다. 여타 금융 공기업이나 시중은행과 비교했을 때도 한은의 연봉은 적은 편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여기에 보수적이고 폐쇄적인 조직문화에 가로막혀 직원들이 전문성을 키우기 힘들다는 불만 또한 팽배하다. 조직 내에서 전문적으로 성장하기 어렵고 이를 위한 동기부여도 부족하다는 것이다. 황보승희 국민의힘 의원실이 제공받은 조직 진단 보고서에 따르면, 글로벌 컨설팅업체 맥킨지가 평가한 한은의 '조직 건강도' 평점은 38점으로 글로벌 최하위 수준으로 나타났다. 국내 기업 130곳, 공공 기관 5곳과 비교해 봐도 가장 저조한 수준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직원들은 "조직에서 의견을 밝히고 나면 불안하고 걱정돼 잠을 잘 수 없는 수준",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지 않는 조직"이라며 신랄하게 평가했다.

한은 직원들의 이같은 불만은 내부 경영진에 대한 피로감과 비판으로도 표출되고 있다. 한은 노조가 지난해 말 직원 716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65.7%가 이주열 당시 총재의 내부경영 방식에 대해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또한 응답자의 절반(57.9%) 이상이 차기 수장으로 외부 출신 수장을 원한다고 답해 기존 조직문화에 대한 대대적인 변화의 필요성을 촉구했다. 

이러한 분위기 속, 한은 직원들의 이탈 역시 본격화하고 있는 추세다. 한은에 따르면, 최근 10년 간 한은을 중도퇴직한 직원은 300여명을 웃도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은 역시 이에 대한 내부 불만을 인지하고 지난해 중장기 발전전략 일환으로 조직체계와 직제 및 직책, 보상을 아우르는 경영·인사 개선 작업에 착수해 개선방안을 마련하기로 했으나, 세부 방안을 검토하는 단계에서 이주열 총재 임기가 종료돼 조직개편과 혁신작업은 뚜렷한 진척을 보이지 못한 채 일단 멈춰서게 됐다.
 

"한은, 최고 싱크탱크로" 비전 제시한 새 수장…공감대 형성 속 개선폭 '주목'

이런 가운데, 한은의 새 수장으로 취임한 이창용 총재는 조직 내 문제를 심각하게 인식하고 컨설팅 내용을 바탕으로 조직 개편에 나서겠다는 의지를 수차례 표명했다. 특히 이 총재가 경제학자·정부 관료·국제기구 경험을 토대로 내부조직 개편에 책임지고 변화를 가져오겠다고 공언한 만큼, 실질적인 변화가 뒤따를지 관심이 높다. 

이 총재는 취임을 전후해 직원들의 처우 개선과 경쟁력 강화에 대해 공감하는 메시지를 꾸준히 내고 있다. 이 총재는 지난 4월 후보자 인사청문회 당시 양경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제출한 서면답변을 통해 "최근 젊은 직원들을 중심으로 타 기관이나 민간기업 등에 비해 낮은 한은의 급여 수준을 개선해야 한다는 요구가 많아지고 있다"면서 "직원들이 맡은 업무를 충실히 수행하도록 독려하기 위해서는 그에 맞는 적절한 보상이 필요하다"고 의견을 밝혔다.

그는 취임사를 통해서도 직원들의 도약을 뒷받침하기 위한 노력을 소홀히 하지 않을 것이라고 다시 한번 강조했다. 이 총재는 "개개인의 동기 부여와 조직의 성과를 위해서는 일에 대한 사명감이나 보람 못지 않게 인사 조직운영이나 급여 등에 있어서의 만족도도 중요함을 잘 알고 있다"면서 "예산이나 여러 제약들이 있지만 근무 여건을 개선하고 사기를 진작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보자"고 말했다.

이 총재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중앙은행의 역할 확대를 언급하며 한은의 미래 비전을 적극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 총재가 국제통화기금(IMF)에서 근무한 경험을 토대로 침체된 조직 분위기를 다잡고 업무 능력을 끌어올릴 수 있다는 점, 또한 한은이 정부 정책에 보다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민간기관과 교류도 확대한다는 구상도 내놓은 상태다. 그는 "한은을 우리 경제를 잘 아는 명실상부한 국내 최고의 싱크탱크로 발전시켜나갈 계획"이라며 "연구 성과를 책상 서랍 안에만 넣어 두면 안 되며, 경험과 연구 성과를 해외와 공유해야 한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한편, 한은 내부에서는 적극적으로 내부 문제 해결에 임하려는 신임 총재에 거는 기대가 큰 분위기다. 다만 오랜 기간 경직돼 온 조직 분위기가 수장 한 명에 의해 단번에 바뀌기도 쉽지 않은 만큼, 조직개편 및 혁신안의 구체적인 내용과 추진 상황을 더 지켜봐야 한다는 시각도 적지 않다.

당국 관계자는 "직원들의 처우개선과 역량 개발 등을 약속했기 때문에 장기 로드맵과 실행까지 관심을 지속적으로 가져주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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