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GL로 시작된 사우디 골프 리그
지금으로부터 2년 5개월 전이었던 2020년 1월. 새로운 골프 리그가 출범한다는 소식이 세상에 알려졌다. 신호탄이 쏘인 곳은 미국 경제의 중심지 뉴욕. 당시 이름은 프리미어골프리그(PGL)였다.
PGL은 2년 뒤인 2022년 1월 출범을 목표로 준비에 들어갔다. 시즌은 1월부터 8월까지다. 8개월 동안 18개 대회(미국 10개, 아시아 4개, 유럽 3개, 호주 1개)를 소화한다.
방식은 일반 골프대회와는 달랐다. '파격'이라는 단어가 어울렸다. 일반적인 남자 골프대회는 약 144명이 출전해 2라운드 결과 커트라인(합격선)을 통과한 선수들이 3·4라운드를 통해 우승자를 가린다.
PGL은 48명이 출전한다. 4인 1팀이다. 12개 팀이 사흘 내내 경기해 우승자를 가린다. 합격선 없이 모든 선수가 마지막까지 경쟁한다는 구상이다.
당시 바클레이스 캐피털 책임자이자, 월드골프그룹(WGG) 대표이사인 앤드루 가디너는 "타 단체들(PGA 투어 등)과 협력하는 것이 우선이다. PGL은 남자골프 4대 메이저 대회(마스터스, US오픈, 디오픈, PGA챔피언십)가 열리는 기간을 피해 일정을 잡을 것"이라며 "세계 최고의 선수를 포함해 모든 이들이 원해야 출범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가디너는 "든든한 재정적 후원이 있다"고 자부했다. 당시 영국과 미국 매체는 후원의 배경이 영국이고, 사우디 석유 자본이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PGA 투어를 주 무대로 뛰는 로리 매킬로이(북아일랜드) 등이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PGL의 등장에 PGA 투어는 물론이고, DP 월드 투어, 아시안 투어 등이 촉각을 세웠다. 잘못하면 선수 유출 및 투어의 존립에 위협을 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후 각 투어는 PGL에 대한 견제를 시작했다. 존립을 위협하는 존재에게 친절할 리 없었다.
골프계에 사우디 인권 문제가 떠올랐다. 사우디가 스포츠를 통해 이미지 세탁을 한다는 주장과 함께다.
사우디는 여성에게 차별과 억압을 해왔다. 2020 세계 성 격차 지수에서 153개국 중 146위에 위치했다. 성 소수자도 별반 다를 바 없었다.
한 가지가 또 있다. 언론 탄압이다. 2018년 10월 터키 이스탄불 주재 사우디 영사관에서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가 암살당했다. 카슈끄지는 2017년부터 미국으로 건너가 사우디 왕좌를 비판해 왔다.
이 사건이 골프계를 뒤덮었다. 사우디 골프 리그가 성공하면 안 된다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선수들은 분개하고, 결집했다.
PGL이 점차 흐지부지해졌다. WGG는 더 이상 활동하지 않고, 침묵했다.
시간은 흘러 2021년. 이번에는 수퍼골프리그(SGL)가 등장했다.
회사 이름은 LIV 골프 인베스트먼츠. 대주주인 사우디 국부펀드(PIF)가 전면으로 나섰다.
그해 10월에는 '백상아리' 그렉 노먼(호주)을 최고경영자(CEO)로 앉혔다. PGL에 그치지 않고, 돌파하겠다는 PIF의 의중이다.
첫 흐름은 PGL과 동일했다. PGA 투어 등에 협조를 구했다. 메이저 대회를 주관하는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클럽(마스터스), 영국왕립골프협회(R&A·디오픈), 미국골프협회(USGA·US오픈), 미국프로골프협회(PGA of America·PGA챔피언십)에는 일정이 중복되지 않을 것이라며 설득했다.
단, 다른 것이 있었다. 언론 플레이, 선수 영입 그리고 아시안 투어 포섭이다. 노먼은 코로나19 이후 위기를 맞은 아시안 투어와 손을 잡았다.
사우디 인권 문제가 대두되며 DP 월드 투어가 주관을 포기한 사우디 인터내셔널을 아시안 투어로 옮겼다. 올해(2022년) 2월 개막전으로다. 총상금은 무려 50억원이었다. 아시안 투어로는 꿈 같은 상금이다. 단숨에 투어를 대표하는 대회가 됐다.
즉각 PGA 투어와 DP 월드 투어는 소속 선수들의 출전에 대해 경고했다. 이후 조건을 걸었지만, 시선을 떼지 않았다.
사우디 인터내셔널에 선수들이 초청됐다. 필 미컬슨, 브라이슨 디섐보, 브룩스 켑카, 더스틴 존슨(이상 미국) 등 화려했다.
대회를 하루 앞두고 LIV 골프 인베스트먼츠는 아시안 투어 인터내셔널 시리즈를 발표했다. 10년간 3억 달러(3756억원)를 투자한다면서다.
아시안 투어는 월드골프챔피언십(WGC)에 소속된 6대 투어 중 하나다. 완충 지대를 깔아 놓은 셈이다. SGL을 받아 주지 않는다면 이를 통해 진입하겠다는 심산이다.
사우디 인터내셔널이 시작됐다. 노먼과 골프 사우디 등은 대회 내내 주요 선수들과 대화하기 바빴다. SGL로 영입하기 위해서다. 한 관계자는 부상으로 테라스에 앉아 쉬고 있는 디섐보와 2시간 동안 대화하기도 했다.
대회 내내 기자회견장에서는 새로운 사실들이 터져 나왔다. 이언 폴터(잉글랜드)가 SGL 출전에 돈을 받기로 했다는 기사가 나가면서다. 이후 다른 선수들은 기밀유지협약(NDA)을 이유로 대답하지 않았다.
신문과 포털을 뜨겁게 달구던 LIV 골프 인베스트먼츠가 한 달 뒤인 지난 3월, 사우디 골프 리그의 이름을 공개했다. SGL이 아닌 LIV 골프 인비테이셔널.
48명은 동일하지만, 일정과 방식이 수정됐다. 일정은 6월부터 10월까지 8개 대회다. 7개 정규 대회(런던, 포틀랜드, 베드민스터, 보스턴, 시카고, 방콕, 제다)와 1개의 팀 챔피언십(마이애미)으로 나뉜다.
팀은 드래프트 형식으로 뽑는다. 경기는 샷건을 채택했다. 각 홀에서 출발해 빠르게 끝난다. 모든 선수는 로고가 새겨진 팀 단체복을 입어야 한다.
정규 대회는 사흘(54홀) 스트로크 플레이(최저타 경기)로 개인 우승자와 우승팀을 가린다.
팀 챔피언십은 나흘 일정의 토너먼트다. 첫날 하위 팀끼리의 경기에서 승리한 팀이 둘째 날 상위 팀과 격돌한다. 이후 4강을 통해 1·2위 결정전과 3·4위 결정전으로 향하는 팀을 결정한다.
각 대회 총상금은 2500만 달러(313억원)다. 개인 2000만 달러(250억4000만원)와 팀 500만 달러(62억6000만원)로 나뉜다. 합격선이 없기에 모든 선수가 상금을 받는다. 개인은 400만 달러(우승자·50억원)부터 12만 달러(48위·약 1억5000만원)까지. 상위 3개 팀은 300만 달러(37억5600만원), 150만 달러(18억7800만원), 50만 달러(6억2600만원)를 받는다.
아무리 못 쳐도 1억5000만원을 챙기는 셈이다.
이 발표로 골프계가 동요했다. 출전을 밝히는 선수와 비난하는 선수로 나뉘었다. 몇몇 유명 선수는 PGA 투어의 유산을 따르겠다고 했다.
지난달(5월) 31일 첫 대회(LIV 골프 인비테이셔널 런던)를 앞둔 LIV 골프 인베스트먼츠는 출전 선수 48명 중 42명의 명단을 공개했다.
명단에는 더스틴 존슨, 케빈 나(미국), 리 웨스트우드, 이언 폴터 등이 포함됐다. 공개와 동시에 골프계는 충격에 휩싸였다. 존슨이 받았다고 보도된 금액은 타이거 우즈(미국)가 지금까지 투어에서 획득한 총상금을 뛰어넘었다. 케빈 나는 명단 발표 이후 PGA 투어 탈퇴를 선언하기도 했다.
인터내셔널 시리즈 잉글랜드 이후 나머지 5명 명단이 공개됐다. 모두 아시안 투어를 주 무대로 뛰던 선수들이다.
완성된 48명 명단을 보면 선수 영입에 나섰던 사우디 인터내셔널보다 빈약한 것이 사실이다. 영입은 실패로 돌아갔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LIV 골프 인베스트먼츠는 자신만만하다. 돈을 보고 선수들이 올 거라는 확신 속에서다.
LIV 골프 인비테이셔널 런던은 6월 9일부터 11일까지 사흘간 영국 런던 근교의 센추리온 클럽에서 개최된다.
첫 대회에 한국 선수는 출전하지 않는다. 출전이 유력했던 김주형(20)과 김비오(31)는 PGA 투어 진출을 목표로 설정했다.
한국 선수는 없는데 중계 싸움은 치열한 모양새다. 한 방송 관계자는 "국내 방송사 3곳에서 LIV 골프 인비테이셔널을 중계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한편 LIV 골프 인비테이셔널을 옹호하고, PGA 투어를 겨냥한 필 미컬슨은 6월 6일 48번째로 막차를 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