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병식 칼럼] 민주당 분당설 몰고 온 '이재명 팬덤 정치'

2022-06-05 18:38
  • 글자크기 설정

[임병식 위원]

“바닥을 쳐야 반등한다. 그런데 상대가 계속 바닥을 파는 바람에 끝없이 추락하고 있다.” 최근 만난 언론사 후배는 우리 정치를 ‘막하막하(莫下莫下)’로 규정했다. 흔히 실력이 비슷해 우열을 가리기 힘든 상황을 ‘막상막하(莫上莫下)’라고 한다. ‘막하막하’는 더불어민주당의 날개 없는 추락을 이해하는 단서다. 절박해야 변화를 모색한다. 한데 국민의힘 또한 헐렁하니 그 기회조차 잡지 못하다고 있다는 분석이다. 꽤 설득력 있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건 민주당을 장악한 진영논리와 팬덤 정치에서 찾아야 한다. 극단적인 탈레반 정치인들이 민주당 체질을 바꿔 놓았다. 그들은 민주당을 극단이라는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다.

지방선거 이후 민주당 상황은 ‘막하막하’를 떠올리기에 맞춤하다. 패인을 스스로에게 찾는 대신 밖으로 돌리는 고질병이 여전하다. 이재명과 송영길의 명분 없는 출마는 선거 결과 입증됐다. 두 사람은 대선 패배에 가장 큰 책임이 있다. 그런데 성찰하고 자중하는 대신 어설픈 조기 등판론을 앞세웠다. 전체 선거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었지만 극성 지지층에 의해 제압됐다. 방탄복과 정치적 야욕 때문에 출마한다는 우려 또한 희생이라는 포장으로 정당화됐다. 이들은 ‘이재명 책임론’을 배신자 프레임으로 반박했다. 김남국과 민형배는 “상처에 소금 뿌리는 꼴” “당권에 대한 사심”이라며 궤변과 물 타기를 시도했다.

물론 지방선거 패인을 두 사람에게만 돌리는 건 지나치다. 대선 연장선에서 치른 까닭에 집권여당에 유리했음은 당연했다. 또 성 추문 이슈(박완주, 최강욱 의원)도 악영향을 미쳤다. 지도부 분열도 한몫했다. 팬덤 정치와 결별, 86 용퇴를 주장한 박지현 비대위원장 비판은 옳았다. 그럼에도 분열과 갈등으로 폄하됐다. 선거에서 패한 근본적 이유는 당을 지배한 안일한 인식 때문이다. 강경론자들이 주도한 오만과 독선에서 찾는 게 합리적이다.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로 대표되는 자기기만과 변명이 그것이다. 21대 총선 180석, 20대 대선 0.73% 패배는 민주당에 독이 됐다. 경청하고 성찰하는 대신 턱없는 오만을 불렀다.

돌아보면 비례위성 정당 창당, 4·3 서울과 부산시장 공천, 임대차 3법 강행 처리, 국회 상임위원장 독식, 공수처장 야당 비토권 삭제는 독단과 오만에 있다. 6·1 지방선거에서 이재명과 송영길 공천, 임기 말 ‘검수완박’은 정점이다. 문재인 정부가 밀어붙인 ‘검수완박’은 중도층이 등을 돌리게 한 결정적 계기가 됐다. 민주당은 법안 처리를 위해 민형배를 위장 탈당시켰다. 또 회기를 쪼개거나 김진표 의원을 법사위로 사‧보임하는 등 편법과 꼼수를 동원했다. “우리가 하는 일은 무조건 옳다”는 무오류에 근간을 둔 독선이었다. 그나마 남아 있던 중도층이 마지막 애정을 버린 것도 더는 감내하기 어렵다는 신호였다.

션스타인 교수는 <우리는 왜 극단에 끌리는가>에서 집단 극단화를 편향동화로 설명했다. 편향동화는 비슷한 생각을 가진 이들끼리 의견을 주고받으면서 편향을 강화한다는 이론이다. 편향이 지속되면 극단화는 강화된다. 반면 목소리 큰 몇몇 강경론자들로 인해 온건한 중도는 위축되기 마련이다. 아프가니스탄 탈레반들이 합리적인 중도를 공격할 때 으레 사용하는 방식이다. 지난 5년 동안 민주당을 작동해온 방식도 비슷하다. 극단에 치우친 몇몇이 당을 주도하는 동안 합리적인 목소리는 실종됐다. 지방선거 이후 제기되는 자성을 촉구하는 목소리마저 배신자, ‘수박 프레임’으로 공격하는 상황이다.

팬덤은 민주당 내 극단적인 정치인들을 추동한 자양분이다. 이들은 팬덤에 기생해 극단을 부채질해 왔다. 자신들과 다른 견해를 피력하는 동료 의원은 무차별 공격했다. 겉과 속 다른 수박에 빗대 합리적인 비판을 조롱했다. 김남국은 “‘이재명 책임론’ 논의가 선거 전부터 계속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카더라 통신’을 남발했다. 문재인 정부 내내 민주당 강경론자들은 걸핏하면 친일 프레임을 들먹였다. 이들은 사실 규명과 단죄를 건너뛰는 바람에 역사청산이 안 됐다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대선과 지방선거 패배 책임을 규명하자는 요구에는 귀를 닫았다. 이재명에게 불똥이 튈까하여 배신자 프레임을 씌우는 지독한 모순만 반복하고 있다.

강준만 전북대학교 명예교수는 <정치전쟁>에서 “환호하는 팬덤이 있는 한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정치인이다”면서 이재명을 팬덤 정치 창업자라고 했다. 이어 “이재명은 팬덤 구성과 운영에 직접 개입한 매우 독특하고 희귀한 ‘팬덤 CEO’”라며 ‘손가락혁명군’을 들었다. 손가락혁명군은 이재명을 있게 한 열렬 지지층이다. 이들을 중심으로 허구적인 이재명 신화가 형성됐다. 2010년 성남시장에 당선된 이재명은 전국 226개 기초단체장 중 한 명에 불과했다. 그가 11년 만에 집권 여당 대선 후보에 오른 건 팬덤을 빼놓고는 설명할 방법이 없다. 이재명과 추종자들이 팬덤에 기승해 민주당을 황폐화시키고 있다는 진단이다.

건강한 조직이라면 내부 논쟁과 비판은 당연하다. 치열한 논쟁을 토대로 견제와 책임, 그리고 변화를 도모할 수 있다. 이는 극단화를 억제하고 균형을 이루게 한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민주당은 당론, 배신자 프레임으로 다른 목소리를 봉쇄했다. 책임지고 사과하는 사람도 없다. 공론장이 사막화되면서 민주당은 서서히 괴멸해 왔다. 자신들이 보수‧꼰대로 부르는 국민의힘이 30대 청년을 대표로 선출할 때 그들은 단단한 소라껍질 속으로 들어갔다. 국민의힘보다 보수화, 기득권화되지 않았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민주당원은 몇이나 될지 의문이다. 무오류와 절대선이 지배하는 민주당은 분당설마저 나돌고 있다.

극단주의 화신 트럼프를 분석한 <억만장자 도널드 트럼프의 비즈니스 법칙>에는 5가지 특성이 제시돼 있다. “결과에 상관없이 이겼다고 우겨라” “뻔뻔해지는 것에 인색하지 마라” “무슨 일이든 반드시 이겨라” “언제나 과대포장 해라”. 트럼프가 자기 최면과 정신승리를 바탕으로 막장정치를 펼친 비결이다. 친명으로 불리는 강성 정치인이 장악한 더불어민주당 상황을 연상케 한다. 지금 민주당에 필요한 건 탈레반이 아닌 합리적이며 건강한 정치인이다. ‘막하막하’에서 ‘막상막하’로 반등시킬 문제의식과 리더십은 어디에 있나. 


임병식 필자 주요 이력

▷국회의장실 부대변인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위원 ▷한양대 갈등연구소 전문위원 ▷서울시립대 초빙교수 ▷전북대 특임교수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공유하기
닫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