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준호의 개념시선] 북유럽 평화 위한 선택? 스웨덴·핀란드 나토 가입

2022-05-2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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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준호 경인교대 윤리교육과 교수]

“러시아가 핀란드의 나토 가입을 어떻게 생각하겠냐고 묻는다면, 제 대답은 그들이 이걸 초래했다는 겁니다. 거울을 보세요.” 사울리 니니스퇴(Sauli Ninisto) 핀란드 대통령의 말이다. 지난 11일 핀란드를 방문한 보리스 존슨(Boris Jonson) 영국 총리와 상호안보협정에 서명한 후 니니스퇴 대통령은 러시아의 푸틴을 향해 ‘거울 앞 성찰’을 요청하며 나토 가입 의지를 밝혔다. 15일에는 대통령궁에서 나토 가입 결정을 공식화했다. 핀란드의 나토 가입 선언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에 따른 연쇄 반응이라고 볼 수 있다. 핀란드인은 우크라이나 사태를 지켜보며 러시아의 침략으로 시작된 1939년의 혹독했던 겨울전쟁 트라우마가 떠오를 수밖에 없었다. 그 당시 핀란드는 영토의 11%를 러시아에 빼앗겼다. 핀란드인은 역사적으로 반복되었던 러시아로 인한 안보 위협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핀란드인 76%가 74년의 중립국 지위를 포기하면서까지 나토 가입을 지지한 것은 평화를 향한 핀란드인의 결연한 의지를 보여준다.
 
핀란드는 유럽연합(EU) 회원국으로서는 러시아와 가장 긴 국경(1340㎞)을 맞대고 있다. 핀란드가 나토 회원국이 되면 핀란드와 긴 국경을 접하는 러시아는 완충지대 없이 나토와 직접 대치하게 된다. 러시아는 나토의 확대가 자국의 안보 이익을 침해한다고 보았기 때문에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에 반대하며 우크라이나 침략을 정당화했다. 그런데 핀란드의 나토 가입 결정으로 러시아의 전쟁은 나토의 북진 확대라는 결과를 초래했다. 핀란드가 나토 가입을 공식화한 다음날인 16일 마그달레나 안데르손(Magdalena Andersson) 스웨덴 총리도 나토 가입을 선언했다. 그에 따르면 핀란드와 스웨덴의 나토 동반 가입은 북유럽에서 전쟁 억지 효과를 높이는 조치였다. 이러한 연쇄 반응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핀란드와 스웨덴의 나토 가입 자체는 위협이 안 된다며 한발 물러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그는 “두 나라 영토에 군사적 자산을 배치한다면 분명히 대응하겠다”고 말하며 불편한 심경을 토로했다.
 
나폴레옹 전쟁(1803~1815) 이후 200년 가까이 중립국이었던 스웨덴과 더불어 핀란드도 74년째 중립국 지위를 유지하고 있었다. 핀란드와 스웨덴은 덴마크, 아이슬란드, 노르웨이와 2009년 북유럽 안보협력체(NORDEFECO)를 창설했다. 스웨덴과 핀란드는 나토 회원국이 아니어서 북유럽 안보협력체가 절실했지만 나토 회원국인 덴마크, 노르웨이, 아이슬란드는 북유럽 안보협력체를 나토에 대한 보완 수단으로 활용해왔다. 핀란드와 스웨덴은 중립국 지위를 유지하며 북유럽 안보협력체에서 자국의 방위력을 강화하고 유엔, 나토, EU 등이 수행하는 합동군사작전을 수행하고자 했던 것이다. 하지만 핀란드와 스웨덴은 최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으로 인해 북유럽 안보협력체가 러시아의 위협에 대처하기에는 충분하지 못하다고 판단했다. 결과적으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으로 나토는 ‘동진’을 넘어 ‘북진’하게 되었다.
 
나토(North Atlantic Treaty Organization·북대서양조약기구)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에서 소련의 군사적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1949년에 창설되어 현재까지 73년간 유지되어 온 국제기구(International Organization)다. 최초 회원국은 미국, 캐나다와 유럽 10개국(영국, 프랑스, 덴마크, 노르웨이 등)을 포함한 12개국이었다. 1955년에 서독이 가입했으며, 냉전 이후 가입국이 꾸준히 증가하여 현재 회원국은 30개국이다. 향후 핀란드와 스웨덴이 가입하면 나토 회원국은 32개로 확대된다. 국제기구로서 나토는 국제법적으로 국제조약(International Treaty)에 기초한다. 나토 조약 제5조에 따르면 나토는 회원국 안보를 보장하기 위해 집단방위(collective defense)를 작동시킨다. 어떤 회원국이 적에 의한 군사적 공격에 노출되면 30개 회원국이 적에 대해 집단적으로 군사적 행동을 취하게 된다. 즉, 나토는 군사작전을 수행할 수 있는 군사력을 유지하며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공유하며 지키는 집단방위체인 것이다.
 
나토와 같은 집단방위체는 명확한 적이 있을 때 전쟁억지력을 발휘한다. 냉전 시기에 나토는 소련을 위시한 바르샤바조약기구에 대항한 집단방위체로서 정당성을 확보했지만 냉전 이후 소련의 해체로 인해 존재 근거를 잃어버렸다. 따라서 나토의 지속성과 관련하여 많은 논의가 있었다. 예컨대 국제정치학자 마울(Hannes Maull)은 2003년에 나토의 미래와 관련하여 다섯 가지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첫째는 미국과 유럽 양측에서 군사적·정치적 이해관계가 감소하여 나토가 사라질 것이라는 예측이었고, 둘째는 미국의 강력한 리더십에 의해 나토가 지속된다는 예측이었으며, 셋째는 나토가 유럽 국가가 주도하는 기구가 될 것이라는 예측이었고, 넷째는 미국이 주도하는 기구가 될 것이라는 예측이었으며, 다섯째는 유럽과 미국 중에 어느 한쪽도 주도권을 확보하지 못한 채 혼란스러운 상태에 이르게 될 것이라는 예측이었다.
 
신현실주의자 케네스 월츠(Kenneth Waltz)는 나토가 사라질 것이라고 예견했다. 그에 따르면 강대국 숫자에 따라 형성되는 단극, 양극, 다극의 국제 구조(international structure)는 국제정치의 행위자에 영향을 미친다. 냉전의 양극(bipolar) 구조가 나토의 존재를 규정했기 때문에 양극 구조가 해체되면 나토도 사라질 것이라고 봤던 것이다. 하지만 나토는 사라지지 않았다. 나토의 존속은 헌팅턴(Samuel Huntington)이 <문명의 충돌>에서 제시한 관망과 어느 정도 일치한다. 냉전 이후 이슬람, 중국, 테러라는 새로운 적이 상정되었고, 서방의 핵심국(core state)이었던 미국은 글로벌 헤게모니를 유지하는 차원에서 나토를 활용했다. 나토는 마울이 제시한 다섯 가지 시나리오 중에서 둘째와 넷째 경로로 움직였다. 핵심국인 미국이 나토 안에서 지도력을 갖고, 새롭게 가입한 회원국들은 그 역할에 다소 차이가 있었지만 자발적으로 미국의 군사적 헤게모니를 따르는 정치적 집단방위체가 구축된 것이다.
 
나토는 지금까지 중국, 러시아, 유럽에 비해 비대칭적 군사력을 확보한 미국에 의해 주도되고 있고, 군사 개입으로 존립 근거를 확보해 왔다. 1999년 ‘작전지역 외 지역’이었던 코소보 사태에서 유엔에서 위임받지 않은 ‘인도적 개입’을 시도하며 역할을 모색했으며, 2001년 9·11 테러 이후에는 신속배치군(NRF·NATO Rapid Deployment Force)을 설치·투입하며 테러와 신종 위협에 대처해 왔다. 또한 나토는 회원국의 확대 전략으로 생존을 강화했다. 냉전 이후 1999년에 체코, 폴란드, 헝가리가 가입했고, 2004년에는 발트 3국(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슬로베니아, 불가리아, 루마니아가 가입했다. 2009년에는 알바니아와 크로아티아가 회원국이 되었고, 2017년에는 몬테네그로가, 2020년에는 북마케도니아가 가입했다.
 
역설적으로 냉전 이후 러시아의 외교적 행보도 나토의 확대를 초래했다. 소련이 붕괴한 후 러시아의 보리스 옐친(Boris Yeltsin) 대통령은 미국에 편승하는 외교·안보전략을 선택했다. 그는 나토 가입 의사를 표명했고, 동유럽 국가들에 대해 나토 가입을 용인했으며, 나토와 협력 조약을 체결하며 나토-러시아 상설합동위원회를 설립했고 나토의 정책 합의 과정에 참여했다. 2000년 이후 푸틴 대통령도 나토 가입 의사를 표명했지만 미국이 이를 거부했다. 미국은 만장일치제인 나토의 의사결정체계에서 러시아의 거부권(Veto)을 우려했다. 러시아의 입장에서 보면 나토의 회원국이 되지 못하는 상황에서 체코, 폴란드, 헝가리 등 EU 회원국의 나토 가입까지는 어느 정도 감당할 수 있었지만 미국이 조지아와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지지하자 지속되었던 나토의 팽창은 어느덧 자국의 안보를 침해하는 레드라인을 넘어서고 있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러시아는 2008년 조지아를, 2014년과 2022년에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던 것이다.
 
러시아가 2014년 우크라이나의 크름반도를 합병한 이후 나토 회원국은 국방 예산을 증가시켰고, 유럽안보공약구상(ERI)에 입각하여 동유럽에서 실시되는 군사훈련, 군사인프라 건설, 우크라이나와 조지아 등에 대해 군사 원조를 투입했으며, 나토의 틀에서 미국, 영국, 캐나다, 독일은 각각 폴란드,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의 안보를 담당했다. 냉전 이후 유럽에서 강대국으로 부상한 독일은 나토와 EU에 가입한 동유럽 국가들에 대해 주도권을 갖게 되었지만 러시아를 자극하지 않으려고 했다. 동유럽에서 나토 군사력의 과도한 강화를 자제하려고 했던 것이다. 하지만 미국의 나토 확대가 러시아의 핵심 이익 지역으로까지 확대되자 2022년 2월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침략했고, 독일의 대러시아 노선은 협력에서 제재 쪽으로 선회하기에 이르렀다. 독일은 2022년 우크라이나를 지지하면서 자국의 무기 지원과 국방력 강화를 정당화했고, 나토와 EU의 틀에서 미국 다음으로 자국의 외교적·정치적 위상을 강화했다.
 
핀란드와 스웨덴의 나토행은 독일이 대러시아 노선을 변경한 것과 유사한 논리로 이해될 수 있다. 즉, 핀란드와 스웨덴도 독일처럼 합리성·적절성·필요성의 논리를 따랐던 것이다. 합리성은 기대에 따른 결과의 논리로서 최상의 선호도를 극대화하는 것이다. 적절성은 권력 분배의 현실, 명분과 정체성을 고려하는 하는 논리다. 필요성은 상황에 따라 타이밍을 선택하는 논리다. 합리적이고 적절한 선택이라도 타이밍을 놓치면 그러한 선택이 필요했다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독일은 국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나토에서 미국의 압도적 군사력을 고려하며 적절한 시기에 러시아에 제재를 취했던 것이다. 핀란드와 스웨덴의 관점에서도 나토 동반 가입은 자국 방위를 위한 최상의 수단이었고, 유럽에서 미국의 핵전력과 군사력을 고려할 때 적절했으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이라는 계기를 활용하며 필요성도 충족했다. 러시아의 위협을 지켜본 유럽 국가와 미국도 핀란드와 스웨덴의 나토 가입이 필요하다고 여겼다.
 
핀란드와 스웨덴의 나토 가입은 유럽에서 나토의 위상이 확고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유럽은 EU를 통해 경제·정치공동체를 확립하고, 나토를 통해 미국의 비대칭적 군사력에 의지하는 집단방위체를 구성하고 있다. 단순화하면 유럽의 안정성은 독일의 경제적 리더십과 미국의 군사적 리더십에 기초한다고 말할 수 있다. 즉, 핀란드와 스웨덴은 독일의 EU와 미국의 나토라는 안전망 안에서 자국의 안보 보장을 모색하고 있다. 이러한 유럽의 안보 지형은 동북아 안보 지형과 다르다고 볼 수 있다. 중국이 핵전력을 포함한 군사력을 강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의 대외 정책도 중국의 전략과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다. 미국은 유럽을 나토라는 집단방위체로 관리하지만 동북아에서는 한·미 동맹, 미·일 동맹과 같은 개별 국가와 맺은 상호방위조약으로 중국과 북한의 군사력을 억지하고 있다. 러시아에 의해 초래된 핀란드와 스웨덴의 나토 동반 가입을 보며 한반도에서 한·미 동맹이 지닌 ‘전쟁억지력(deterrent)’을 다시 생각해본다.
 

장준호 필자 주요 이력

 △독일 뮌헨대(LMU) 정치학 박사 △미국 UC 샌디에이고 객원 연구원 △경인교대 윤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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