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카타르 프로젝트] 국내 조선사들, 예기치 않은 5조 손실 떠안을 판···금융권까지 리스크 전이 우려

2022-05-1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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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주 규모만 총 24조원에 이를 정도라 국내 조선산업의 최대 성과로 평가됐던 '카타르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건조 프로젝트'가 최근 들어 조선업 기반을 흔들 암초가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카타르 측이 현재 원자재 가격 급등을 고려하지 않고 2년 전 선가를 고집하고 있어 협상 결과에 따라 국내 조선사가 최소 5조원대 선가 하락을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조선사에 무조건 선수금환급보증을 담당해야 하는 금융권에서도 리스크 전이 우려와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 하락 문제로 고뇌하고 있다.

18일 조선업계에 따르면 국내 조선사와 금융사들이 카타르 에너지와 진행하는 협상에서 돌파구를 찾지 못해 셈법이 복잡해지고 있다.

◆국내 조선사들 5조 손실 떠안을 판

협상의 핵심은 '선가'다. 세부적인 계약 내용이 외부에 공개되지 않았지만 2020년 6월 한국조선해양·대우조선해양·삼성중공업 등 대형 조선 3사는 카타르와 100척 안팎(변동 가능)에 대해 수주계약을 맺으면서 수주 규모가 23조6000억원에 달한다고 밝혔다.

이는 수주계약을 맺은 2020년 글로벌 LNG운반선 신조선가인 1억8600만 달러(약 2360억원)를 기준으로 100척을 계상한 것과 유사한 규모다.

그러나 본계약이 지연되는 2년 동안 원자재 가격이 급등했다. 코로나19 확산과 올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등 외생 변수가 겹치면서 원자재 가격이 그야말로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원자재 가격 급등에 선가 산정의 기준이 되는 글로벌 신조선가도 크게 올랐다. 영국 조선·해운시황분석 업체인 클락슨리서치가 집계한 지난달 말 기준 LNG운반선 신조선가는 2억2400만 달러(약 2839억원)를 기록했다. 이는 2020년 1억8600만 달러 대비 3800만 달러(약 482억원)나 상승한 수준이다.

그러나 현재 카타르 측은 2020년 6월 국내 조선 빅3와 체결한 협악서에 언급된 선가를 지금 그대로 반영해 달라고 요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통상 선주사가 조선사에 선박 발주를 결정한 뒤 설계와 철강재·기자재 구입비용이 최초 가격과 차이가 있을 때 이를 합의한 선가로 본계약을 체결하는 관례와 차이가 크다. 이에 조선업계 일각에서는 국내 조선사가 2020년 당시 일감이 적어 매우 불리한 조건으로 계약을 하지 않았겠느냐는 추측도 나온다.

대형 조선 3사로서는 난감한 상황이다. 결국 국내 조선사가 2020년 기준으로 산정된 선가로 LNG운반선을 만들게 된다면 선박 한 척당 482억원 정도 선가 하락을 감수해야 하는 셈이다. 100척을 기준으로 생각하면 5조원에 이르는 손실을 보게 된다.

이는 지난해 대형 조선 3사 전체 영업손실보다 더 큰 규모다. 지난해 한국조선해양은 1조3848억원, 대우조선해양은 1조7547억원, 삼성중공업은 1조3120억원 등 나란히 적자를 기록했다. 올해 추가로 대규모 손실이 발생한다면 조선사 리스크가 급증하게 된다.

조선 3사 관계자는 "아직 협상이 진행 중이므로 최대한 빨리 합의를 이뤄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며 "다만 카타르 측과 협상하면서 서로 의견 충돌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금융권까지 리스크 전이 우려

카타르 측이 주장하는 요구를 그대로 받아들이면 조선사뿐 아니라 금융권에도 리스크가 확대될 수 있다. 24조원에 이르는 LNG 프로젝트의 안정성을 위해 국내 금융권이 필수적으로 선수금환급보증(RG·Refund Guarantee) 등 선박금융을 제공해야 하기 때문이다.

선주는 완성된 선박을 인수받기 전까지 건조비용 중 약 40~50%를 선수금으로 단계적으로 미리 지급한다. 선박이 제대로 인도되지 못하면 조선사를 대신해 은행이 선수금을 돌려주도록 마련된 장치가 RG다. 카타르 전체 발주 금액이 24조원에 이르는 상황이라 RG 규모가 약 10조원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다만 국내 금융권은 워낙 RG 규모가 큰 상황에서 리스크 확대를 우려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국내 조선사가 대규모 적자를 보는 상황에서 카타르 측 주장대로 LNG 프로젝트가 진행된다면 조선사에 부실 리스크가 커질 수밖에 없고 이것이 금융권으로 전이될 수 있다는 시각이다.

은행은 BIS 기준 자기자본비율 관리도 부담이 될 수 있다. RG도 여신(대출)으로 취급되는 상황에서 재무건전성이 좋지 못한 조선사에 대규모 RG를 해줘야 한다면 BIS 비율이 악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통상 RG는 위험이 거의 없어 보증수수료도 1% 수준으로 매우 낮은 상황이다. 은행으로서는 기존 RG보다 리스크는 높지만 그렇다고 보증수수료를 상향 조정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국내 조선사가 손해를 보는 상황에서 LNG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경우 거기에 보증을 해주면 그만큼 리스크가 커진다"며 "이익을 보는 사업 구조가 확보된 다음 선박금융을 진행하는 것이 좋다고 본다"고 말했다.

◆전문가들 "카타르와 적극 협상 나서야···선박건조계약 개선 필요"

국내 조선 3사가 24조원에 이르는 역대급 수주에 성공한 이후 본계약 협상에서 문제가 발생해 국내 산업권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우선 당장 카타르와 무난히 협상을 마무리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또 향후 원가 부담이 발생했을 때 이를 선가에 반영할 수 있도록 계약할 필요가 있다는 제언도 나온다.

이동헌 대신증권 연구원은 "일부 조선사들은 원자재 가격 인상분을 선가에 전가할 수 있는 조항을 계약에 넣지 못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국내 조선사로서는 버거운 힘겨루기가 이어지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일단 전문가들은 당장 카타르와 협상을 최대한 유리하게 마무리하는 것이 선결 과제라는 분석이다. 카타르 측도 LNG 운반선 분야에서는 국내 조선 3사가 70%대 점유율을 기록하는 상황에서 다른 대안을 찾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김용민 케이프투자증권 연구원은 "카타르 측 발주 물량이 워낙 많은 수준이라 국내 조선 3사 이외에 대안이 없는 측면이 있다"며 "협의를 통해 부분적인 선가 인상이 가능할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다만 향후 선박 수주에서 원자재 인상분을 본계약 선가에 반영할 수 없는 계약을 맺지 말아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번 사태를 본보기로 삼아 향후 같은 문제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는 시각이다.

해상법 권위자인 김인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선박 건조 계약은 체결 시기와 건조 시기에 시차가 있어 변수에 대비해 단서 조항을 넣어두어야 안전하다"며 "이런 종류의 계약을 체결할 수 있도록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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