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철 칼럼] '초격차'보다 시급한 것은 소재·부품 중국 의존도 탈피

2022-05-1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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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新)냉전·자원 무기화의 가장 큰 희생양으로 한국 제조업이 될 수도 있는 상황

[김상철 전 KOTRA 베이징·상하이 관장·동서울대 교수]



중국의 추격 속도가 예상보다 훨씬 빠르다. 추격을 당하고 있는 한국 기업의 초조하고 당황해하는 모습이 역력하게 눈에 띈다. 누구도 근접할 수 없는 ‘초격차(Super Gap)’를 언급하고 있지만 말보다 쉬운 것은 없고 공염불이 될 수도 있다. 한국 기업은 지난 1980〜90년대에 일본과의 격차를 줄이려고 사활을 걸었다. 당시 일본 기업은 한국과의 격차를 벌리기 위해 무리수를 연발하는 자충수를 두면서 2000년대 들어 상당 분야에서 한국에게 경쟁력에서 밀려나는 수모를 당했다. 지금 상황이 그때와 매우 흡사하다. 20여 년 전부터 중국 기업의 1차 과녁은 명백하게 한국 기업임이 매우 분명하다. 한국 기업을 넘어서지 않고서는 글로벌 시장에서 우월적 지위를 확보할 수 없다는 것을 충분히 간파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 기업의 사례에서 보듯이 한번 무너지면 다시 올라서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거의 불가능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결국은 시장에서의 영원한 승자는 없고, 오늘의 승자가 내일의 패자가 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팬데믹과 우크라이나 전쟁과 같은 외부 정세 악화가 갈수록 상대적으로 한국 기업에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기도 하다. 부품이나 소재를 국내보다 해외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는 구조적 취약성으로 인해 위기에 크게 흔들리는 근본적 원인이 되고 있다. 시장에서의 격렬한 경쟁을 버티기 위해 국내산을 외면하고 중국산을 채택함으로써 중국이 인위적으로나 자연발생적으로 공급 중단이 발생하면 치명적인 위험에 빠질 수 있는 상황이다. 궁여지책이라고 하지만 시한폭탄을 안고 있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실시간으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기도 하다. 삼성이 부품 공급을 TCL‧BOE‧ATL 등 중국 기업에 의존하면서 한국 업체들이 파산 위기에 처했다.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멀티 카메라 시스템을 중국산으로 채택한 후 중국 업체들은 날개를 달아주는 꼴이 되었다. 올해부터는 BOE·CSOT에서 갤럭시용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패널 조달까지 늘려가고 있다. 수익성 확보를 위해 중국산 부품 사용 비율 확대가 당장 불가피하다고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점에서 심히 우려된다. 코로나가 장기화하면서 중국 공급선이 상대적으로 안정적이라고 판단한 것이 최근 중국의 확진자 발생 확대에 따른 봉쇄 조치로 오히려 부품 공급에 차질이 생겨나면서 2분기 실적이 악화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1분기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점유율은 삼성 24%, 애플 18%, 샤오미·오포·비보 증 중국 연합군의 점유율은 31%로 간신히 격차는 벌리고 있다. 미국의 제재로 한동안 위축되었던 화웨이도 스마트폰 시장 재진입을 서두르고 있어 전혀 살얼음판과 같은 시장 환경을 예고하고 있기도 하다. 완성차 업체도 유사한 몸살을 앓고 있다. 반도체 수급난에 이어 중국 부품 공급 차질로 생산이 급감하는 홍역을 치르는 중이다. 배선 뭉치로 불리는 전선 제품인 ‘와이어링 하니스’ 공급 차질로 국내 완성차 공장 대부분이 멈춰 서기도 했다. 중국에서 공급이 되지 않으면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대체 공급선을 신속하게 찾을 수 없다는 것이 딜레마다. 원자재 및 에너지 가격 상승, 원화 약세 등도 이들에게 가중되고 있는 두통거리다.
 
중국이 마음만 먹으면 한국 제조업 초토화, 국내 생태계 복원해야 위기 극복 가능
 
중국 소재나 부품이 조달되지 않으면 수출 주력산업의 엔진이 정지한다. 전자·자동차·반도체·디스플레이 공장의 가동이 중단된다. 소재 중에는 중국 의존도 100%인 마그네슘 잉곳(자동차·스마트폰 소재)을 비롯하여 90% 내외에 달하는 것들이 산화 텅스텐·네오디뮴 영구자석·수산화리튬 등이다. 중국에 대한 의존도가 줄어들기는커녕 더 늘어나고 있다. 중국 의존도가 80% 이상이나 되는 품목 수가 무려 1850개에 달한다. 미국은 503개, 일본은 438개로 상대적으로 적기는 하지만 이 또한 만만치 않은 숫자다. 일본산 수입에 대한 고민은 점점 줄어들고 있지만, 중국산은 30%에 도달하고 있어 고민이 깊어진다. 급등하고 있는 원자재 가격이 자원 부국 중국, 빈국 한국의 명암을 극명하게 갈라놓고 있다.
 
걱정은 현실화하고 선명해지고 있다. 배터리 핵심 원재료인 글로벌 리튬 생산 1위인 중국 업체의 약진은 두드러지고 있지만 한국 경쟁업체들은 지속해서 고전하고 있는 양상이다. 재작년까지만 해도 CATL과 LG엔솔의 글로벌 시장점유율이 엇비슷하였지만, 작년에는 12% 차로 벌어졌다. 올해엔 20% 이상으로 점유율 차이가 확대되고, 중국 주요 5사의 합계는 55.2%로 한국 3사의 합계인 24.1%를 크게 앞지르고 있다. 중국은 국내 생산에 더해 해외 리튬 광산 채굴권까지 확보함으로써 원자재 장악력을 극대화하는 추세다. 자원의 무기화와 이에서 파생하는 원자재 공급 가격 상승의 기회를 활용하여 해외 생산 기지도 전방위적으로 확대하고 있다. 한국 기업의 추격을 뿌리치고 격차를 더 벌리겠다는 계산이다.
 
전 산업에서 중국과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지만, 중국에 대한 부품이나 소재 의존도가 줄지 않고 늘어나고 있는 것을 이대로 보고만 있을 수 없다. 미국과 중국 간의 냉전이 격화되고 글로벌 공급망 재편에 진영 논리가 개입하면 한국이 최대의 희생양이 될 수 있는 경우를 배제하기 어렵다. 시급한 것은 중국 이외 지역으로 소재 혹은 부품 공급선을 서둘러 다변화해야 한다. 핵심 광물의 60%를 중국(37%)을 비롯한 5개국에 매달려 있는 현재 상황을 극복하지 않으면 한국 제조업이 일시에 무너질 수도 있다. 한편으론 국내 생태계를 복원시키는 노력을 병행해야 한다. 일본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기 위한 부품 국산화 운동보다 이제는 중국에 대한 의존도를 획기적으로 줄이기 위한 혁신 생태계 조성이 최대 과제다. 




김상철 필자 주요 이력

△연세대 경제대학원 국제경제학 석사 △Business School Netherlands 경영학박사 △KOTRA(1983~2014) 베이징·도쿄·LA 무역관장 △동서울대 중국비즈니스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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