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 대통령실 초대 정무수석비서관에 내정된 이진복 전 의원은 3일 "정무수석이 아닌 여의도 수석이 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이는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취임 뒤 펼쳐질 여소야대 정국에서 거대 야당과의 소통을 이어가야 할 정무수석의 각오가 함축된 말로 해석된다.
4일 정치권에 따르면 이 전 의원은 한 언론과의 통화에서 이같이 말했다. 그는 대통령실 수석급 인선 중 가장 먼저 낙점된 인사로 알려졌다. 윤 당선인과 개인적인 인연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전 의원은 "대선 때는 캠프에 들어가면 괜히 권력이나 탐하고 온 사람인 것처럼 비칠까 봐 전직 의원 모임 등에 참여하는 등 뒤에서만 도왔다"며 "2~3주 전쯤 정무수석에 지명될 것이란 이야기를 들었다. 이후 당선인을 처음 찾아뵀다"고 설명했다.
인수위 측에선 "윤 당선인이 강조한 능력 위주 인선의 대표적 인물이 이 내정자"라는 평가가 나온다. 서울대 등 명문대 출신이 즐비한 새 정부 국무위원 후보자, 대통령실 수석급 이상 인선을 통틀어 실업계 고교(부산기계공고)와 방송통신대를 졸업한 유일한 인사다.
이 전 의원은 1957년생으로 국회 보좌진을 시작으로 부산 동래구청장과 3선(부산 동래) 의원을 지낸 입지전적 인물이다. 유신 시절 투표장에 두 번 들어가는 동네 아주머니를 보고 참지 못해 투표함 위에 걸터앉아 이의를 제기하며 투표를 중단시켰던 의기가 그를 정치로 이끌었다는 후문이다.
이 전 의원은 21살이던 1978년 10대 총선 당시 부산 동래에 출마한 신민당 이기택 후보(전 민주당 대표)의 선거운동을 자발적으로 돕다가 당시 국회 전문위원이었던 박관용 전 국회의장의 눈에 들었다.
이 전 의원은 1981년 총선부터 박 전 의장의 참모로 활동했고, 캠프 청년 기동대장을 시작으로 지구당 총무부장, 의원 보좌관, 대통령 비서실 행정관 등을 두루 거쳤다.
2002년 지방자치단체 선거에서는 한나라당 후보로 부산광역시 동래구청장 선거에 출마해 당선됐다. 동래구청장 시절에는 온천천을 자연 친화형 도심하천으로 되살렸고, 이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서울 청계천 복원'의 모델로도 유명하다.
2006년 지방선거에서는 당의 공천을 못받아 재선에 실패하고 2008년 18대 총선에서 '친박 무소속 연합'에 참가해 부산 동래구 선거구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됐다. 그가 모셨던 박 전 의장의 지역구를 물려받은 셈이다. 당선 후 같은 해 복당하고 20대 총선까지 내리 3선에 성공한다.
학업에 대한 아쉬움이 컸던 그는 그사이 방통대를 늦깎이 입학해 주경야독했다. 동아대에서 석사과정도 밟았다.
이 전 의원은 한 언론 인터뷰에서 "(명문대를 가지 못한 것에)열등의식이 늘 상존했다. 국회의원 비서 할 때는 다른 사람보다 더 열심히 했다"며 "학교에도 차이가 있듯이 지식도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와의 차이가 심하더라"고 회고했다.
그는 "고교 졸업 후 본의 아니게 정치판에 뛰어들어 일본 유학 시기를 놓쳐 정상적인 방법으로 정상적인 대학을 갈 수 없어 방통대를 뒤늦게 입학해 주경야독을 했다"면서 "그래도 학업에 대한 아쉬움이 남아 동아대에서 석사과정을 밟았다"고 설명했다.
여야를 막론하고 두루 넓은 인간관계를 형성하게 된 것은 그가 갖고 있는 특유의 친화력과 함께 다양한 사회 경험이 뒷받침됐다는 평가다. 민주당 내부에서도 '윤석열 정부 최고의 인선'이란 평가가 나온다.
이 전 의원은 친박계(친박근혜계) 출신이다. 하지만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으로 새누리당이 분당하는 과정에서 탈당 행렬에 동참해 바른정당으로 합류했다. 이후 20대 대선 직전 복당했다. 그러면서 탄핵사태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지겠다며 2020년 21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스스로 '계파가 없는 사람'을 자신하고 있다.
다만 정치권에선 그가 바른정당 시절 장제원 대통령 당선인 비서실장과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 등과 친분을 쌓은 것이 이번 정무수석 발탁의 계기가 된 것 아니냐는 관측도 있다.
새 정부 출범과 동시에 맞이할 여소야대 정국에서 대통령실과 야당과의 관계 설정은 윤석열 정부의 성공을 좌우할 핵심이 될 전망이다.
이 전 의원은 "정당 간 다툼이야 어쩔 수 없다"면서도 "국가와 국민을 위해서 도움이 될 수 있는 길을 찾아볼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게 내 소임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장 비서실장은 "정무는 진심이고 진정성이고 노력이라고 생각한다. 묵묵하게 상대에게 신뢰를 주고 진정성으로 야당을 대하는 분이 정무수석으로 적임자가 아니겠나"라며 "이 전 의원이 가진 온화함과 부드러움, 상대에 주는 신뢰감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했다"고 인선 배경을 설명했다.
4일 정치권에 따르면 이 전 의원은 한 언론과의 통화에서 이같이 말했다. 그는 대통령실 수석급 인선 중 가장 먼저 낙점된 인사로 알려졌다. 윤 당선인과 개인적인 인연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인수위 측에선 "윤 당선인이 강조한 능력 위주 인선의 대표적 인물이 이 내정자"라는 평가가 나온다. 서울대 등 명문대 출신이 즐비한 새 정부 국무위원 후보자, 대통령실 수석급 이상 인선을 통틀어 실업계 고교(부산기계공고)와 방송통신대를 졸업한 유일한 인사다.
이 전 의원은 1957년생으로 국회 보좌진을 시작으로 부산 동래구청장과 3선(부산 동래) 의원을 지낸 입지전적 인물이다. 유신 시절 투표장에 두 번 들어가는 동네 아주머니를 보고 참지 못해 투표함 위에 걸터앉아 이의를 제기하며 투표를 중단시켰던 의기가 그를 정치로 이끌었다는 후문이다.
이 전 의원은 21살이던 1978년 10대 총선 당시 부산 동래에 출마한 신민당 이기택 후보(전 민주당 대표)의 선거운동을 자발적으로 돕다가 당시 국회 전문위원이었던 박관용 전 국회의장의 눈에 들었다.
이 전 의원은 1981년 총선부터 박 전 의장의 참모로 활동했고, 캠프 청년 기동대장을 시작으로 지구당 총무부장, 의원 보좌관, 대통령 비서실 행정관 등을 두루 거쳤다.
2002년 지방자치단체 선거에서는 한나라당 후보로 부산광역시 동래구청장 선거에 출마해 당선됐다. 동래구청장 시절에는 온천천을 자연 친화형 도심하천으로 되살렸고, 이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서울 청계천 복원'의 모델로도 유명하다.
2006년 지방선거에서는 당의 공천을 못받아 재선에 실패하고 2008년 18대 총선에서 '친박 무소속 연합'에 참가해 부산 동래구 선거구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됐다. 그가 모셨던 박 전 의장의 지역구를 물려받은 셈이다. 당선 후 같은 해 복당하고 20대 총선까지 내리 3선에 성공한다.
이 전 의원은 한 언론 인터뷰에서 "(명문대를 가지 못한 것에)열등의식이 늘 상존했다. 국회의원 비서 할 때는 다른 사람보다 더 열심히 했다"며 "학교에도 차이가 있듯이 지식도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와의 차이가 심하더라"고 회고했다.
그는 "고교 졸업 후 본의 아니게 정치판에 뛰어들어 일본 유학 시기를 놓쳐 정상적인 방법으로 정상적인 대학을 갈 수 없어 방통대를 뒤늦게 입학해 주경야독을 했다"면서 "그래도 학업에 대한 아쉬움이 남아 동아대에서 석사과정을 밟았다"고 설명했다.
여야를 막론하고 두루 넓은 인간관계를 형성하게 된 것은 그가 갖고 있는 특유의 친화력과 함께 다양한 사회 경험이 뒷받침됐다는 평가다. 민주당 내부에서도 '윤석열 정부 최고의 인선'이란 평가가 나온다.
이 전 의원은 친박계(친박근혜계) 출신이다. 하지만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으로 새누리당이 분당하는 과정에서 탈당 행렬에 동참해 바른정당으로 합류했다. 이후 20대 대선 직전 복당했다. 그러면서 탄핵사태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지겠다며 2020년 21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스스로 '계파가 없는 사람'을 자신하고 있다.
다만 정치권에선 그가 바른정당 시절 장제원 대통령 당선인 비서실장과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 등과 친분을 쌓은 것이 이번 정무수석 발탁의 계기가 된 것 아니냐는 관측도 있다.
새 정부 출범과 동시에 맞이할 여소야대 정국에서 대통령실과 야당과의 관계 설정은 윤석열 정부의 성공을 좌우할 핵심이 될 전망이다.
이 전 의원은 "정당 간 다툼이야 어쩔 수 없다"면서도 "국가와 국민을 위해서 도움이 될 수 있는 길을 찾아볼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게 내 소임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장 비서실장은 "정무는 진심이고 진정성이고 노력이라고 생각한다. 묵묵하게 상대에게 신뢰를 주고 진정성으로 야당을 대하는 분이 정무수석으로 적임자가 아니겠나"라며 "이 전 의원이 가진 온화함과 부드러움, 상대에 주는 신뢰감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했다"고 인선 배경을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