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뒤를 이을 후계자는 누구일까? 언젠가 푸틴 대통령의 통치가 막을 내리게 되는 날, 대통령 자리를 둔 권력 투쟁이 벌어질 것이란 분석이 나왔다. 이오시스프 스탈린, 니키타 흐루쇼프, 보리스 옐친, 그리고 푸틴이 그랬듯 러시아의 리더십 전환은 파벌싸움 등으로 얼룩지며 매우 지저분한 모습을 보일 것이란 전망이다.
브라이언 테일러 미국 시라큐스대 정치학과 교수는 최근 미국 외교전문 매체 포린어페어스에 기고한 ‘푸틴 이후 권력투쟁: 러시아의 불가피한 승계 위기’라는 글에서 이같이 주장했다.
푸틴 대통령의 나이는 69세로 고령일 뿐만 아니라 갑상선암 등 건강이상설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푸틴 이후 펼쳐질 세 가지 시나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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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일러 교수는 “푸틴은 매우 고도의 개인주의적 독재 정권을 구축함으로써 불가피한 일이 발생했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날지 예측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 20년간 대통령의 임기를 연장하고, 2036년까지 재임할 수 있도록 헌법을 수정하는 등 국가의 모든 것이 본인을 중심으로 돌아가도록 만들었다. 또한 권력에 도전할 가능성이 있는 인물들을 감금하거나 죽였다.
때문에 푸틴 대통령이 예기치 않게 사망하거나 퇴임할 경우 후계자가 누가 될 것인지를 예측하기는 어렵다. 특히 푸틴 최측근들이 손을 잡지 않는다면 권력 승계는 더욱 복잡해진다.
테일러 교수는 “그(푸틴)의 통치의 불가피한 종말은 러시아에 불확실하고도 위험한 순간이 될 것”이라며, 러시아의 차기 대통령은 엘리트 내부 암투에 의해 결정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봤다.
테일러 교수는 첫 번째 시나리오는 미하일 미슈스틴 총리가 헌법에 따라 대통령 권한대행이 되고, 선거 준비 기간에 푸틴 이너서클 내에서 합의 후보를 결정하기 위한 치열한 싸움이 벌어지는 것이다.
러시아 헌법에 따르면 대통령이 ‘직무를 수행할 능력이 없는 경우’ 총리는 선거를 준비하는 3개월 동안 대통령 권한대행을 할 수 있다.
미슈스틴 총리는 권한대행인 점, 대중의 지지도가 높은 점 등이 강점이다. 보리스 옐친 전 러시아 대통령이 건강 문제와 후진 양성 등을 이유로 총리였던 푸틴을 대통령 권한대행으로 지명했던 1999년 당시, 푸틴은 선거를 준비하는 3개월간 정적을 모두 물리치며 본인을 중심으로 엘리트들을 연합한 뒤 대통령에 선출됐다.
그러나 “미슈스틴이 압승을 거두더라도 그가 크렘린 내부 연합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며 “푸틴의 최측근들과 달리, 그는 KGB 출신도 상트페테르부르크 출신도 아니다”라고 테일러 교수는 지적했다.
두 번째 시나리오는 미슈스틴과 다른 인물 간 경쟁이다. 미슈스틴 외에 후계자가 될 가능성이 높은 인물은 세르게이 쇼이구(국방장관), 드미트리 메드베데프(전 대통령이자 현 국가안보회의 부의장), 뱌체슬라프 볼로딘(러시아 하원 의장), 세르게이 소뱌닌(모스크바 시장) 등이 꼽힌다.
이들에 대한 대중의 지지도는 미슈스틴 총리에 비해서는 낮은 편이다. 그럼에도 이들 중 한 명이 미슈스틴에 도전한다면, 세계는 “결과가 미리 결정되지 않은 러시아 대통령 선거”를 보게 될 수 있다.
쿠데타가 일어날 가능성도 있다. 군대를 비롯해 방위군, 연방보안국 등은 이론상 쿠데타를 일으킬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테일러 교수는 “전시 중에 이러한 모든 병력을 하나의 깃발 아래로 집결시킬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고 했다.
특히 러시아군은 오랜 기간 민간 엘리트들의 의견을 따랐기 때문에 러시아군이 반란을 일으킨 마지막 사례인 1825년 데카브리스트(12월 당원)가 오늘날 러시아에서 반복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는 설명이다.
마지막 시나리오는 푸틴 대통령이 건강상의 이유로 대통령 자리를 떠나면서 승계자를 지명하는 것이다.
독재정권의 아킬레스건…권력 승계, 더러울 수밖에 없다
테일러 교수는 “푸틴 이후 러시아는 혼란스럽고 폭력적인 과도기에 처할 수 있다”고 밝혔다. 푸틴이 구축한 ‘개인주의 독재 정권’은 정권 교체에 매우 취약하기 때문이다.실제 ‘승계’는 개인주의 독재정권의 약점, 즉 아킬레스건이다. 정치학자 안드레아 켄달 테일러와 에리카 프란츠가 1946~2012년 사이 권위주의 국가의 모든 승계를 분석한 결과, 개인주의 독재정권 가운데 56%는 통치자가 사망한 후 5년 내 정권교체를 했다.
하페즈 알아사드(현 아사드 대통령의 아버지) 통치하의 시리아나 김일성 통치하의 북한의 경우 권력을 자손에게 대물림해서 정권의 생존을 보장했다. 그러나 푸틴 대통령의 딸들은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뿐더러 후계자 수업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북한이나 시리아와 같은 모습으로 승계가 이뤄질 가능성은 없다고 볼 수 있다.
푸틴 사망 후 확실한 후계자가 없으면 푸틴 이너서클은 분열되며 파벌주의에 빠질 수 있다. 테일러 교수는 파벌싸움은 러시아에서 승계가 이뤄질 때마다 나타났다고 짚었다.
1924년 블라디미르 레닌이 사망한 후, 이오시프 스탈린은 확실한 지도자로서의 지위를 공고히 하는 데 수년이 걸렸다. 이후 1953년 스탈린이 사망한 후 니키타 흐루쇼프는 경쟁자인 라브렌테 베리아를 체포하기 위해 군인들을 동원하는 등 권력투쟁을 벌였고, 1993년 옐친은 러시아 의회를 해산하기 위해 탱크를 동원했다.
1999년 옐친에서 푸틴으로의 승계 역시 매끄럽지만은 않았다. 체첸 전쟁 재개와 동시에 수많은 러시아 아파트에서 일련의 불가사의한 폭탄 테러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푸틴은 사건 현장을 돌아보는 모습을 중계해 강력한 지도자의 모습을 각인시키며 인기를 얻었는데, 푸틴의 당선을 위해 테러가 의도적으로 꾸며졌다는 의혹을 지금도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