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씨네 리뷰] 유연석·올가 쿠릴렌코 '배니싱: 미제사건', 낯설게 보기

2022-04-06 0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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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니싱: 미제사건' 3월 30일 개봉[사진=㈜스튜디오산타클로스]

"낭만적이네요. 이 조명, 온도, 습도···." 한 예능 프로그램의 출연자가 남긴 말이다. 장소, 날씨, 몸 상태 등 하나하나가 모여 '분위기'를 만든다는 의미다. 영화도 마찬가지. 그날의 기분, 나의 경험이 영화의 '평가 기준'이 되기도 한다. 이처럼 '최씨네 리뷰'는 필자의 경험과 시각을 녹여 관객들에게 영화를 소개하는 코너다. 조금 더 편안하고 일상적으로 담아내고자 한다. <편집자 주>

대학 시절, 어느 수업에서 '낯설게 보기'에 관해 배운 적이 있었다. 우리에게 익숙한 것들을 '낯설게' 보며 기묘한 감각을 일깨우고 새로운 결과물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익숙하고 친숙한 것들을 '낯설게 보기'란 어려운 일이다. 하나의 장르가 되고, 카테고리화 된 것들을 낯설게 보기란 더더욱 그렇다.

그런 의미에서 글로벌 프로젝트 '배니싱: 미제사건'은 '낯설게 보기'의 정석과도 같다. 프랑스 감독의 눈으로 보는 한국의 풍경, 범죄 스릴러 장르는 익숙한 것들을 비틀고 간극을 만들며 관객들을 홀린다. 한국을 배경으로 한 기존 범죄 스릴러 영화와의 차별점이기도 하다. 

한국의 변두리 마을에서 신원을 알 수 없는 변사체가 발견된다. 심하게 훼손된 시신은 사건을 더욱더 미궁에 빠트리고 담당 형사 '진호'(유연석 분)는 '지문 복원 기술'로 저명한 프랑스 법의학자 '알리스'(올가 쿠릴렌코 분)에게 도움을 청한다. 그는 시신의 신원을 파악하는 데 큰 도움을 주고 한국에서 강연하는 동안 해당 사건을 적극 돕기로 한다. '진호'는 해당 사건이 국제 장기 밀매 조직과 깊이 연관되어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사건의 실마리를 잡기 위해 애쓴다.

한편 서울의 한 성형외과에서 근무하는 외과의 '닥터 리'(이승준 분)는 성공을 위해 거대 범죄 조직과 돌이킬 수 없는 거래를 한다. 의사로서 포기할 수 없는 양심과 자신의 목숨이 위협받는 상황 속 끊임없이 갈등하고 범죄 조직은 '닥터 리'와 아내까지 압박하며 더 큰 범죄에 가담하기를 요구한다.

'진호'와 '알리스'는 점점 사건의 실체에 다가서고 이 과정에서 사적인 이야기를 나눌 정도로 가까워진다. 두 사람은 서로의 큰 상처를 발견하고 이를 나누기 위해 노력한다. 두 사람은 특별한 감정을 쌓아가고 이를 지켜보는 통역사 '미숙'(예지원 분)은 알 수 없는 불안감에 사로잡힌다.

'배니싱: 미제사건' 3월 30일 개봉[사진=㈜스튜디오산타클로스]


영화 '배니싱: 미제사건'은 국내외 대표 필름메이커들이 총출동하여 공동 제작한 '글로벌 프로젝트'다. 칸 국제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에 두 차례 후보지명 된 이력이 있는 드니 데르쿠르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그는 범죄 스릴러 장르를 섬세하게 더듬어가며 특유의 서스펜스를 완성한다. 미제 사건을 '낯설게' 접근하며 예측할 수 없는 재미와 긴장감을 끌어낸다.

그간 스크린에서 잘 다뤄지지 않았던 '법의학'이라는 소재로 관객들의 흥미를 끈다. '진호'와 '알리스'가 새로운 법의학 기술로 사건의 단서를 찾아가는 모습은 관전 포인트 중 하나. 인상 깊은 점은 극 중 인물의 시선에 따라 사건을 보여주며 관객의 오감을 예민하게 깨워나가는 점이다. 데르쿠르 감독의 섬세한 연출력은 영화의 몰입감을 높인다. 데르쿠르 감독은 "스릴러 장르는 리듬감이 중요하다"라며 긴장감이 고조되고 해소되는 부분, 긴장감이 해소될 때 새로운 긴장감이 시작되는 리듬감을 강조한 바 있다. 그는 사건의 진실이 수면 위로 드러날수록 드러나는 거대 범죄 조직의 실체와 인물들의 불안한 내면과 갈등을 긴장감 있게 그린다. 

특히 주인공 '알리스'의 내면을 정치(精緻)하게 묘사하며 그가 느끼는 공포와 두려움을 시각적으로 훌륭히 펼쳐낸다. 감독은 인물들이 느끼는 감정을 예민하게 정밀하게 그리고 관객들이 동화될 수 있도록 한다. 그러나 인물들의 감정 묘사가 뛰어난데 반해 장르적 쾌감이나 스릴러적인 구성은 다소 허술하다. 범죄 조직이 벌이는 거대한 사건과 치밀한 인물 심리 묘사에 반해 해결책이나 결말은 다소 성기다.

데르쿠르 감독의 눈으로 본 한국의 풍경도 흥미롭다. 전달책이 사는 오래된 주택, 인천항, 남대문 시장, 차이나타운을 낯설게 담아내며 영화의 기묘한 분위기를 완성한다. 스코틀랜드 작가 피터 메이의 스릴러 소설 '더 킬링 룸'이 원작이며 2021년 제26회 부산국제영화제 월드 시네마 섹션 초청작이다. 3월 30일 개봉이며 관람 등급은 15세 이상, 상영 시간은 88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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