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 게임’에 관해서라면 너무나 많은 말들이 오고 갔지만 어쩔 수 없이 ‘오징어 게임’으로 글을 시작해 보려고 한다. ‘오징어 게임’이 산업적으로 남긴 가장 큰 교훈은 IP가 가진 중요성이다. 콘텐츠 산업은 타 산업에 비해 리스크가 매우 큰 산업이고 국내 콘텐츠 제작 관련 기업들에서는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인지도 높은 작가와 스타급 출연진 등 특정 생산요소에 제작비를 집중하는 전략을 취해 왔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도 하지만 이로 인한 부작용도 존재했던 것이 사실이다.
‘오징어 게임’은 산업적으로나 비평적으로나 지금까지도 대단한 성취를 거두고 있지만 국내 미디어 산업 관점에서 보면 IP를 전적으로 넷플릭스가 가지고 있어서 전체 제작비의 일정 부분만이 국내 콘텐츠 산업으로 돌아왔다. 제작사 입장에서 실패에 대한 부담 없이 제작비와 이윤까지 보장해 주는 넷플릭스와의 협업은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국내 미디어 산업 입장에서 ‘오징어 게임’과 같이 큰 성공을 거둔 콘텐츠의 성과 중 극히 일부 외에 모든 것을 넷플릭스에 내어 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은 아쉬움을 남길 수밖에 없다.
국내 OTT 플랫폼들은 오리지널 투자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고, IP의 다각적인 활용을 위한 전략도 수립하고 있다. 웨이브의 ‘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로 간다’는 좋은 반응을 얻었고, 티빙의 ‘술꾼도시여자들’도 많은 주목을 받았다. 3월달에 티빙에서 오픈된 ‘돼지의 왕’은 콘텐츠가 가진 서사적 특징과 더불어 IP와 관련해서도 생각해 볼 거리를 주는 작품이다.
한겨레의 서정민 기자는 『오징어 게임과 콘텐츠 혁명』에 실린 「‘오징어 게임’신드롬 취재기」에서 IP 측면에서 ‘오징어 게임’과 차별되는 사례로 ‘지옥’을 꼽는다. ‘오징어 게임’의 IP는 넷플릭스가 가지고 있지만 ‘지옥’의 IP는 연상호 감독과 최규석 작가가 가지고 있기 때문에 IP 활용을 국내 창작자 혹은 제작사가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이 ‘오징어 게임’과 ‘지옥’이 가진 차별성이다.
‘돼지의 왕’은 이미 2011년에 개봉된 연상호 감독이 연출한 애니메이션을 원작으로 삼고 있다. 좀비 아포칼립스 장르는 아니지만 연상호 감독 특유의 세계관이 투영된 작품이라는 점에서 연니버스의 초기작으로 봐도 무방할 것 같다. 11년 전에 개봉되었던‘돼지의 왕’은 이제 티빙을 통해 드라마로 볼 수 있게 되었다. 좋은 서사의 힘은 다양한 형태로 변주되어 활용될 수 있다는 것에 있다.
OTT를 통한 콘텐츠 소비가 늘어날수록 IP는 중요해질 수밖에 없고, 좋은 서사가 다양한 형태로 변주되는 일은 더욱 많아질 것이다. 서사의 변주는 단순히 서사 장르에 국한되지 않는다. 웹툰이나 소설이 영상화 되기도 하고 굿즈 등을 통해 다른 상품이 되기도 한다. IP의 힘은 서사를 다양한 형태로 변주하고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 있으며 디즈니가 수년간 해온 일이 바로 IP를 확보하는 것이었다. IP 확보를 통한 포트폴리오 다변화는 수익 다각화를 통해 리스크를 줄이는 방식이기도 하다.
대한민국 콘텐츠가 가진 힘은 ‘기생충’, ‘오징어 게임’을 비롯해서 많은 콘텐츠를 통해 입증되었다, 좋은 콘텐츠와 서사를 발굴하기 위한 노력은 계속되어야 하겠지만 이제는 콘텐츠를 어떻게 활용할지에 대한 고민도 좋은 콘텐츠를 제작하는 일만큼 중요해졌다. 대한민국 콘텐츠의 경쟁력이 높아진 만큼 그에 부합하는 활용 방안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1990년대 한류가 조명받은 이후 대한민국 콘텐츠 산업은 지속적으로 성장해 왔으며, 놀라운 성취를 이뤄왔다. 콘텐츠 산업은 무형의 가치가 큰 만큼 내실을 다지기 쉽지 않으며, 국내와 같이 내수시장이 협소한 국가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콘텐츠에 꾸준히 투자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넷플릭스와 같은 글로벌 플랫폼 사업자들에 대한 제작비 의존도가 높아져 온 이유도 국내 시장이 갖는 특수성에 기인했다. 하지만 ‘오징어 게임’의 사례에서 확인되는 것처럼 IP 확보를 통한 종합적인 콘텐츠 활용이 이뤄지지 못한다면 지속가능한 콘텐츠 산업의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 경쟁이 치열해지고 위험 부담이 커질수록 콘텐츠가 가진 산업적 가치를 극대화할 수 있는 IP 확보의 중요성은 더욱 높아질 것이다. 콘텐츠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고 가치가 높아질수록 그에 수반되는 고민도 깊어질 수밖에 없다. 국내 OTT 시장 내의 경쟁이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는 2022년 콘텐츠에 관한 서사 전략과 활용 방안에 대한 창의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노창희 필자 주요 이력
▷중앙대 신문방송학 박사 ▷경희대 경영대학원 문화예술경영학과 겸임교수 ▷디지털산업정책연구소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