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이 얇아 비난 앞에 쉽게 휘둘리고, 본심을 숨기지 못한 자는 홀로 스러져 분을 삼키며 슬피 울리라!”
윤석열·이재명 후보의 극명하게 엇갈린 운명을 상징하는 대목이다. “감옥가야 할 중대 범죄자” “비리 덮은 진짜 몸통”이라며 상대후보를 ‘대장동 몸통’으로 비난하는 네거티브가 넘쳐난 선거에서 국가를 위해 소리(小利)보다 대의(大義)를 위해 후안흑심(厚顔黑心)의 내공을 유감없이 발휘한 ‘후흑 대결의 결정판’이었다. 이후보가 허경영 후보의 “나라에 돈이 없는 것이 아니라 도둑이 많다”는 말로 윤후보를 공격하자 “‘도둑이 제 발 저리다’는 속담마저 무색하게 하는 이재명, 괴벨스도 울고 갈 ‘후안무치(厚顔無恥)’한 ‘선전선동의 대가’”라고 맹비난했다.
서로 후안무치한 ‘거짓말의 달인’이라고 공격해 유권자는 선거 막판에 누가 ‘진짜 거짓말쟁이’ 인지 헷갈리게 한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하게 역전에 반전을 거듭한 선거에서 제20대 대한민국 대통령에 윤석열 후보가 당선됐다. 5월 10일 공식 취임해 2027년 5월 9일까지 ‘제왕적 대통령’이라는 절대적 권력을 행사하게 된다. 총 3,406만 명이 투표에 참여, 윤석열 후보(48.56%, 16,394,815표)는 이재명 후보(47.83% 16,147,738표)보다 24만7,077표를 더 얻어 0.73%포인트 차로 신승(辛勝)했다. 24만 표는 무효표 30만2,478표 수보다도 적었다.
역사상 최고의 배신자는 부처님이다. 부처님은 출가해 부모에게 효를 다하지 못했으니 불효자요, 사랑하는 여인과 자식을 버렸으니 파렴치범이었다. 세자로서 왕권을 잇지 못했으니 국가에 불충했다. 그런데도 부처님이 존경받는 이유는 대의(大義)를 위해 배신하고 큰 뜻을 이뤄 성인이 됐기 때문이다. 여권의 배신자 윤 당선인은 검찰총장에서 변신해 제1야당 대선후보로 본인의 첫 공직선거에 도전해 바로 대통령에 당선되는 기록을 세웠다. 대한민국 헌정사에서 박정희(5대 대선), 전두환(11대 대선) 이후 세 번째이며, 비군인 출신으로는 최초다. 보수의 화신이었던 박근혜 이명박 대통령을 감옥 보낸 보수진영의 원흉(元兇)으로 치부되던 진보정권의 윤석열 검찰총장이 사직 8개월만에 보수진영 후보가 되어 당선되니 세상사 연극보다 더 극적이다. “죽고 사는 것은 명(命)에 있고, 부하고 귀한 것은 하늘에 달려 있다. 모든 일은 분수가 이미 정해져 있거늘, 생각 없는 사람들이 저 혼자 부질없이 스스로 허둥지둥 바쁘게 사느니라.”{死生有命, 富貴在天. 萬事分已定, 浮生空自忙, 『명심보감(明心寶鑑)』순명편 (順命篇)}를 되새기게 된다. 윤 당선인에게 천명(天命)이 돌아간 것은 천운(天運)이 따른 결과로 밖에 설명할 길이 없다. 인간의 모든 뜻도 결국 하늘을 벗어나지 못 한다는 잠언을 실감케 한다.
‘윤석열 드라마’는 한 개인의 승리라기보다 정권교체를 바라는 거대한 시대정신의 구현이라며 보수진영에서는 환호작약했다. 문재인 정부의 암울한 주사파 그늘이 걷히고, 좌파 이익집단의 몰락으로 대한민국이 새롭게 만들어지고 있다고 열광한다. 거짓은 진실을 이길 수 없으며, 정의가 살아있고 공의(公義)가 집행되는 정부가 들어서는 것은 사필귀정이라고 반긴다.
‘각본 없는 드라마’였던 20대 대통령 선거는 온갖 통속적인 스토리로 잘 짜인 캠페인 머신이 작동됐다. 국가의 앞날을 위한 정책 비전과 미래 구상 등은 아예 실종 상태로 범죄 스릴러와 블랙 코미디가 뒤섞여 매일매일 예측불허의 이벤트가 속출했다. 복마전이 된 이른바 대장동 사건의 천문학적인 부동산 개발수익, 여배우 스캔들, 욕설파문, 대장동 사건관계자들의 잇단 자살, 무속인 스캔들, 법인카드 유용, 초밥도시락 사건 등등, 후보자들을 둘러싼 부끄러운 민낯들이 종횡으로 엮이면서 한 치 앞을 예측할 수 없는 드라마가 전개됐다. 이들 가운데 한 사람을 지도자로 선택해야 하는 국민만 고통스러웠던, 후안흑심의 결정판 선거였다.
지난 5년간 나라의 앞날보다 지지 세력과 진보 진영의 이익을 앞세웠고, 협치보다는 독선으로 밀어붙였으며, 야당과 국민의 분노를 모르쇠로 무시했던 문재인 정권은 결국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2021년 4·7 재·보궐선거에서 참패로 경고등이 이미 켜졌으나 역대 지도자 중 가장 무능하다는 평가를 받는 문 대통령은 내로남불이었다. 분노한 대중을 당해내기 어려우니, 공분 살 일을 경계하라는 <춘추좌씨전>의 ‘중노난범(衆怒難犯)’의 경고를 망각한 자업자득이었다.
대망을 품고 치밀하게 준비해 온 인물
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당시 윤석열 검찰총장이 검찰총장직에서 사퇴하고, 야당 대통령 후보로 나서고, 마침내 20대 대통령으로 당선되리라고 예측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그의 삶의 궤적을 살펴보면 대망을 품고 대권을 치밀하게 준비한 흔적이 여기저기 묻어있다. 나름대로 뜻을 세워 준비했고, 맹호출림(猛虎出林) 격으로 기회를 포착해 단숨에 대권 장악에 성공한 것이다. 삶은 우연처럼 보이지만 우연이 겹치면 필연이 되는 인연법(因緣法)을 벗어날 수 없기때문이다.
윤 당선인은 1960년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에서 경제학자 윤기중 연세대 명예교수 맏아들로 태어났다. 충암중-고를 거쳐 1979년 서울대 법대에 진학했다. 1980년 법대 선배들이 대학 축제를 맞아 모의재판을 기획했는데, 이때 재판장을 맡았던 법대 2학년생 윤석열은 전두환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이 일로 그는 3개월 동안 강원도 친척 집으로, 신흥사 백담사 등 여러 사찰을 전전했다고 한다. 낙산사를 갔다가 ‘걸레 스님’으로 알려진 기인(奇人)으로 “나는 걸레” “내 생활 전부가 똥이요, 사기”라고 외치며 파격 행보를 일삼았던 중광(重光·1935~2002)스님과 조우, 술친구로 가까이 지냈다는 게 그의 주변 인사들 증언이다.
“중광스님이 관상(觀相)도 봤는데 석열이더러 ‘장차 크게 될 놈’이란 식으로 말했다고 해요. 나도 사석에서 석열에게 ‘우리 중에 대통령이 나온다면 너밖에 없어’라는 식으로 농담한 적이 많아요. 그때마다 석열이는 손사래를 쳤죠.”
도망자가 된 청년 시절 ‘권력의 칼날’을 체감했던 그는 스님의 덕담을 빌미 삼아 막연하지만, 유지경성(有志竟成) 즉 “뜻이 있으면 반드시 이룰 수 있다.”며 대망(大望)을 품고 숱한 시련과 권력의 압박에 인내했을 것이다. 호방한 성격의 소유자로 사람 사귀는 것과 술자리를 좋아하고 오지랖도 넓었다. 수년째 낙방 거사이면서도 상가는 반드시 문상하는 의리파(義利派)로 고시촌에서 ‘신림동 신선’이란 별명으로 불렸다. 윤 당선인은 사법시험 9수 끝에 1991년 합격했다. ‘그림자가 바위에 새겨졌다는’ 달마대사의 ‘면벽(面壁) 9년’을 연상시키는 그의 인내심은 녹록지 않은 내공이다. 지난해 문재인정권의 전 방위 압력에도 버틸 수 있었던 것도 오랜 세월에 걸쳐 다져온 남다른 신념과 인내심이 없었다면 견뎌낼 수 없는 일이다. 윤석열의 26년 검찰인생은 ‘살아 있는 권력’과의 싸움으로 요약된다. 그는 2013년 정부의 수사 외압을 폭로하며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 며 ‘강골 검사’로 이름을 알렸으나 이어진 인사에서 좌천당하며 변방으로 밀려났다. 전직 대통령 두 명을 구속기소, 보수층에게 보수 궤멸의 원흉으로 지목됐지만 문재인 정부 들어 두 명의 법무부 장관과 맞서며 여권과 대립각을 세웠다. ‘정치는 투쟁’이라는 권력의 본질을 체득한 그는 중국 공산당 총서기로 당내 서열 2위 지도자였으나 모택동의 미움을 세 차례에 걸쳐 실각과 복권을 거듭하면서 인생의 부침과 고뇌를 신음(呻吟)하며 견뎌내고 복권돼 74세의 나이로 온전한 중국의 통치자가 된 등소평의 유소작위(有所作爲: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은 한다)할 때를 기다리며 도광양회(韜光養晦:칼날의 빛을 감추고 어둠 속에서 힘을 기른다)를 벤치마킹 했음직하다. 후안흑심의 단련을 한 것이다.
“경계심을 늦추지 말라. 그렇다고 해서 누구를 두려워하지도 말라. 누구에게든 죄를 짓지 말고, 친구를 사귀되 나름의 계산을 하고 사귀라. 도광양회하면서 머리를 절대로 들지 말라. 그러다 보면 언젠가 해야 할 일이 생길 것이다.”
검사 생활을 하면서도 윤석열 당선인은 나름대로 국가경영에 관심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그가 가장 감명 깊게 읽은 책은 미국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Milton Friedman·1912~ 2006년)이 쓴 《선택할 자유(Free to choose)》라고 소개했다.
“《선택할 자유》는 신자유주의 경제 이론서이기도 하지만, 규제를 가할 때 발생하는 문제점을 고발하는 책이기도 합니다. 규제로 인해 발생하는 시장의 왜곡을 잘 분석했죠. 검사로 있으면서 무엇인가 단속을 하라거나 혹은 수사권을 행사할 때, 그게 과연 국가적으로나 경제적으로 필요한 것인지 항상 의문을 가졌어요. 검찰 상부에서는 늘 어떤 지시를 내리잖아요. 저는 그 지시를 이행하기에 앞서 ‘이게 과연 국가 공권력이 할 일인지 해선 안 될 일인지’ 생각했어요. 그런 의문에 논리적 근거와 이론을 제공해준 책이 바로 《선택할 자유》입니다. 이 책 덕분에 검찰의 가장 강력한 공권력인 ‘수사권(搜査權)’ ‘소추권(訴追權)’을 남용해선 안 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제가 검사 생활할 때 그 책을 항상 들고 다니며 읽었어요. 심지어 노랗게 될 때까지요.” 《월간조선》(2021년 12월호)
대선 드라마의 출발점은 파격적인 검찰총장 발탁
2022년 대선 드라마 출발점은 문재인 정권의 파격 인사에서 시작된다. 문재인 대통령은 1년 새 보수 정권의 두 전직 대통령을 구속한 윤을 서울중앙지검장으로 발탁했고, 이어 2019년 7월 검찰총장으로 임명한다. 전임 총장에서 무려 다섯 기수를 뛰어넘은 파격적인 인사로 야당의 반대가 거셌지만, 임명을 강행했다. 대통령은 ‘살아있는 권력도 수사’하라며 ‘우리 총장님’ 운운하며 동지의식을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내가 내린 닻, 덫이었구나’(황지우 <길>)일줄 까맣게 몰랐다. 윤 검찰총장이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한 조국과 함께 ‘검찰개혁’의 ‘충견’(忠犬)이 돼주기를 내심 기대했을 것이다. 하지만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을 기점으로 대통령과 검찰총장 두 사람이 갈등을 빚는다.
청와대의 기대와 달리 조국 전 장관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동시다발적 압수수색이 벌어지고, 조 장관 인사청문회가 열리던 날 검찰은 조 전 장관의 부인인 정경심 동양대 교수를 전격 기소하면서 대중들은 흥미진진한 반전에 주목했다. 조 장관은 취임 한 달 만인 2019년 10월 14일 사퇴했다. 여권은 이를 대통령 인사권에 대한 검찰의 도전으로 규정했다. 대표자인 윤석열총장이 공적(公敵)으로 낙인찍혔다. 이런 상황에서도 윤 당선인은 유재수 전 부산경제부시장 감찰 무마 의혹, 송철호 울산시장 관련 선거 개입 의혹, 월성 원전 경제성 조작 의혹 등 청와대와 정권 핵심 인사에 대한 수사를 밀어붙였다. ‘살아있는 권력’도 가차 없이 수사하라는 레토릭을 ‘진심’으로 알고 수사하는 검찰총장에 문재인 정권은 무척 당황했을 것이다.
윤 총장은 물실호기(勿失好機)로 기회를 놓치지 않고 각(角)을 확실하게 세웠다. 전직 대통령을 두 명씩이나 구속한 그에게는 문 대통령도 중대 범죄 의혹이 있는 ‘피의자’에 불과했다. 급기야 청와대가 임명한 검찰총장을 여당이 비난하고 야당이 옹호하는 희극적 장면이 연출됐다.
드라마는 점점 더 흥미진진해졌다. 조국이 물러나고 두 번째 조연으로 당 대표를 지낸 야심만만한 추미애 의원이 법무부 장관으로 등장한다. 추 장관이 2020년 1월 취임 직후, 윤 검찰총장의 측근 인사를 대거 교체한 ‘1·8 대학살’ 인사를 단행한다. 윤 총장의 복심(腹心)으로 “권력이 물라면 물고, 덮으라면 덮는 사냥개 같은 검찰을 만드는 것을 검찰개혁이라고 사기 치고 거짓말하고 국민을 속였다”라고 유시민과 문재인 정부를 강하게 비판해 네 차례 좌천당하면서도 굴하지 않는 한동훈 반부패강력부장을 포함해 대검 요직에 있던 윤 당선인의 측근 전원을 비수사부서나 지방으로 하방(下放)시켰다. 중간간부급 인사에서도 윤 당선인이 등용한 특수통 검사들을 좌천시키며 검찰총장을 ‘갈 길은 많은데 퇴로(退路)가 없는’ 막장으로 몰아붙였다.
오관육참(五關六斬)의 신산한 여정
‘윤석열 내쫓기’ 선봉에 선 추 장관은 헌정 사상 초유의 총장 징계와 수사지휘권 박탈 등으로 압박했고, 마침내 2020년 11월, 직무집행 정지 처분을 내리는 등 온갖 ‘인격살인’에 가까운 모욕을 안겼다. ‘적은 내부에 있다’라는 말처럼 동족상잔(同族相殘)이 더 치열했다. 두 사람의 갈등은 결국 법정 다툼으로 번졌다. 윤석열 검찰총장은 직무집행 정지와 징계가 절차를 준수하지 않았고 징계 사유도 사실과 달라 부당하다며 행정소송 및 처분 집행정지를 신청했다. 사실상 대통령을 상대로 소송을 건 것이다. 이때 대중들의 뇌리에는 대통령의 카운트 파트는 ‘윤석열’이라는 사실이 확실하게 각인(刻印)된다. 관료사회의 권위주의적 구조가 극심한 우리나라에서 장관급이 대통령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것은 상식 밖의 일이다. 윤 당선인은 ‘잘못된 것을 그냥 넘길 수 없다는 원칙’, ‘법치에 어긋난 것을 정치로 덮을 수 없다’라는 원리, ‘권력으로 불법을 호도하려는 권력 남용을 그냥 넘어갈 수 없다’라는 정의감을 드러냈다.
당시 필부(匹夫)를 자처하는 한 네티즌이 비겁한 죄를 자수한다면서 우파를 통렬하게 비판했다.
“윤석열에게 국민의 지지가 결집한 연유는 윤석열이란 한 한국인이 자신의 목숨과 전 생애를 포함한 모든 것을 걸고 검사 신분의 시야에 포착된 범죄를 상대로, 그 범죄의 배경과 권력과 표독한 생리를 환히 꿰뚫어 보면서도, 그들에게 굴하거나 후퇴하거나 타협하지 않고, 오히려 그들에게 직선으로 부딪혀간 그 정신력과 가치관과 의지와 행동력을 매우 긴 시간 동안 지켜보았기 때문입니다. 이 나라 국민은 좌파건 우파건 간에 이 나라의 모든 권력을 장악한 좌파들이 전 방위로, 하루 24시간 일순의 틈도 주지 않고 윤석열 검찰총장을 겁박하고 몰아대며 탄핵을 시도했던 그 장면 들을 목도했습니다. 그러나 이 곰 같은 사내는 묵묵히 그 공격들을 다 버텨냈고, 결국 장렬한 전투 과정을 보여주며 승리했습니다.”
윤 총장의 용기와 배짱은 그를 괄목상대(刮目相對)하게 했다. 처절하게 버티던 윤 총장은 임기 5개월을 남기고 지난해 3월 4일 검찰총장에서 사퇴했다. 퇴임식에서 그는 “상식과 정의가 무너지는 걸 더는 지켜보기 어렵다”라며 “이 나라를 지탱해 온 헌법 정신과 법치 시스템이 파괴되고 있다”라며 현 정부를 직격했다. 대권을 향한 비장한 각오 없이 토할 수 없는 분노한 대중의 마음을 뒤흔든 치밀하게 고려된 수사(修辭)였다.
윤석열은 검찰총장 사퇴 117일 만인 지난해 6월29일, “부패와 싸우고 정의를 세우겠다”라고 다짐하며 야당인 ‘국민의 힘’에 입당, 대권 레이스에 뛰어든다. 윤후보는 ‘반(反)부패’의 상징으로 자신을 포지셔닝했다. 줄기차게 ‘압도적 정권교체’ 적임자가 자신임을 강조했다. 그는 정치판의 새내기였지만 경선 결과, 그는 홍준표 유승민 원희룡 등 정치판에서 잔뼈가 굵은 기라성(綺羅星)같은 정치선배들을 꺾고 제1야당 ‘국민의 힘’ 대선후보로 최종 선출된다. 하지만 대선 레이스 초반, 선거대책위원회 구성과 인재영입 문제가 불거지며 이준석 대표가 윤 후보를 흔들기 시작한다. 또 여야를 넘나들며 당대의 ‘킹메이커’임을 즐기는 노회(老獪)한 김종인 선대위원장이 돌아섰고, 배우자인 김건희 씨가 허위 경력 논란으로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을 하면서 ‘후보교체론’까지 등장하는 등 위기의 순간이 왔다.
그는 검사 시절 폭탄주로 단련된 ‘건달 기질‘을 발휘, 응석부리는 이준석 대표와 극적으로 화해, 내부 분열을 수습하면서 ‘맏형 리더십’과 포용력을 보였고 상황은 다시 반전됐다. 2월 들어서는 문재인 정부에 대한 ‘적폐 수사’ 입장을 밝히고 부패 척결을 강조하며 ‘강골 검사’의 이미지를 살려냈다. 선거를 불과 6일 남긴 시점에 “1년만 지나면 (윤석열을 찍은) 내 손가락 자르고 싶어질 것”이라며 결렬을 선언한 안철수와의 단일화 선언으로 ‘정권교체’ 열기에 쐐기를 박았다. 완주를 줄곧 선언해온 안 후보의 표변은 ‘후안흑심’을 여과 없이 보여준 장면이었으나 윤 당선자의 신공에는 상대가 안 되었다. 대선은 검찰총장 사퇴 후, 불과 1년 동안 윤 당선인이 극복해야 했던 신산(辛酸)한 여정이었다. ‘오직 국민만 바라보겠다’라는 윤 당선인의 굳건한 의지와 남다른 돌파력이 이뤄낸 결과물이다. <삼국지>에서 관우가 주군인 유비를 찾아 ‘다섯 관문을 지나며 여섯 장수를 벤’ 오관육참(五關六斬)의 고사가 연상되는 대목이다.
절묘한 민심, 환지본처(還至本處)하라
“무릇 최선의 승리는 5할의 승리를 거두는 신승(辛勝)이며 그다음은 7할의 승리, 즉 낙승(樂勝)이다. 10할의 승리라는 완승(完勝)은 패배보다도 못한 승리다. 신승은 용기를 낳고 낙승은 게으름을 낳으며 완승은 교만을 낳기 때문이다. 10할의 승리에는 10할의 패배가 뒤따를 수 있지만, 5할의 승리 뒤에는 패배하더라도 5할선에서 수습할 수 있는 희망이 있다.”
일본 전국시대의 무장, 다케다 신겐(武田信玄, 1521~1573)의 경구다. 5할의 지지를 안 보낸 이번 선거는 당선자는 있지만, 실제론 승자가 없다. 흔히 승리는 칼날 끝에서 느끼는 위태로운 쾌감에 불과한 것이다. 공수가 뒤바뀐 양당이 생존을 위해서는 가차 없이 불필요한 것들을 잘라버리는 취모검(吹毛劍)의 지혜가 발휘돼야 한다. 취모검이란 칼날 위에 솜털을 올려놓고 입으로 불면 끊어지는 예리하고 날카로운 칼로 고대의 명검이다. 여야 누구 편에도 찬성하지 않은 민심은 정치권의 환골탈태(換骨奪胎)를 주문하고 있다. 따라서 정권을 잡은 국민의 힘은 ‘상대를 존중하는’ 겸손을 보여야 하고, 정권을 놓친 더불어민주당은 ‘자신을 낮추는’ 겸허의 태도를 보여야 한다.
윤 당선인이 외친 대한민국의 ‘정상화’는 환지본처(還至本處) 즉 “본래의 자리로 돌아간다”는 말이지만 단순히 원위치나 제자리걸음이 아니라 모든 것이 본래의 자리를 깨닫고 제 역할을 해야 한다는 뜻일 것이다. 현명한 이가 있다면 초야에 묻혀 있게 하지 말라는 야무유헌(野無遺賢)을 명심해야 한다. 최근 청와대 이전 논란을 보면서 공자(孔子)가 가르친 욕속부달 욕교반졸(欲速不達 欲巧反拙)을 생각하게 한다. 급하게 서두르면 일이 성사되기 어렵고, 너무 잘하려고 하다간 오히려 망쳐 놓는다는 뜻이다. 임기 안에 자신의 치적을 남기고 싶어 하는 정치가의 잘못된 마음가짐을 지적하고 있다.
건국 70여 년 된 대한민국은 이승만의 창업과 박정희로 상징되는 산업화 시대를 성공적으로 거쳤다. 이제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도약의 시기를 맞고 있다. ’디지털 시대’라는 대전환기를 맞아 경장(更張)을 늦추면 도태되는 단계에 이르렀다. 모든 분야에서 개혁이 필요한 시대다. 윤석열 정부는 2022년, 역사적 문명사적으로 정치 경제 사회 등 전 분야에 걸쳐 국가 대개조라는 ‘임인경장(壬寅更張)’에 착수할 일이다. 조선 근대화 출발점이었던 1894년 갑오경장(甲午更張) 때 200여 가지를 새롭게 바꿨던 것처럼.
박종렬 필자 주요 이력
▷고려대 철학과 ▷중앙대 정치학 박사 ▷동아방송·신동아 기자 ▷EBS/연합통신 이사 ▷가천대 신방과 명예교수 ▷가천대 CEO아카데미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