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정보통신기획평가원(IITP) 기술정책단의 'ICT브리프 2022년 8월호'에 따르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동진 정책에 힘입어 우크라이나가 NATO에 가입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영향권 내에 두려는 갈등이 고조되는 가운데 러시아가 침공을 시작했다. 지난 2월 24일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키예프)를 비롯한 동부·북부·남부 등에서 러시아의 동시다발적 공격이 전개돼 주요 군사시설 파괴, 민간인까지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역사적으로 우크라이나는 구소련에 속해 러시아와 관계가 깊고 유럽연합(EU) 회원국과 러시아의 국경을 동시에 접하고 있는 국가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유럽 진출로이자 전략적 요충지로, 러시아는 NATO와 같은 서방 진영에 우크라이나가 편입되는 것을 경계해 왔다. 전통적인 구소련 영향권에 있던 다른 나라들(헝가리·체코·폴란드·라트비아·에스토니아)이 NATO에 가입한 데 이어 우크라이나까지 가입 추진에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인 것이 러시아를 압박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해석이다.
이번 ICT브리프는 하이투자증권·유안타증권·삼성증권 보고서를 종합 인용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상황에 따른 주요 ICT 업종별 원자재·공급망 상황과 전망을 제시하고 '중립', '제한적', '부정적', 세 등급으로 영향도를 진단했다.
IT플랫폼과 게임 등 인터넷·디지털콘텐츠 분야와 유·무선 통신 업종의 경우 일부 영향을 받을 수 있지만 그 수준은 제한적일 것으로 전망된다.
앞서 펄어비스가 2018년 11월부터 러시아 지역에 '검은사막'을 직접 서비스하기 시작했고, 엔씨소프트는 2021년 11월 19개국에 '리니지2M'을 출시하면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를 포함한 서유럽 지역 시장에 진출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서 네이버와 카카오 등 IT플랫폼 기업들이 한국에서처럼 큰 입지를 차지하고 있지는 않다. ICT브리프는 IT플랫폼·게임 업종에 대해 "지정학적 위기가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인 분야"라며 "우리 플랫폼 기업들과 게임회사들의 부정적 영향 우려는 없다"고 분석했다.
ICT브리프는 통신 분야에 대해서도 "지정학적 위기가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인 분야"라고 했다. 전통적으로 각국 유·무선 통신사의 핵심 사업을 요약하면 자국 내 유선망 인프라를 구축하고 유지·관리하는 것과 회선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 국가가 관리하는 주파수 사용권·사업권을 취득해 무선 이동통신 인프라를 구축하고 국내에 회선·응용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최근 한국 통신사들이 디지털인프라·디지털플랫폼 회사로의 변신을 선언하고 기존 업종을 넘어선 사업에 도전하면서 다른 지역·국가로의 진출 가능성을 넓히고 있지만 통신 업종이 내수시장 중심 사업이라는 특성 자체는 그대로다.
통신사·방송사와 플랫폼 기업 간의 경쟁이 활발한 OTT(온라인 동영상서비스) 등 미디어 업종에 대해 ICT브리프는 "최근 빠르게 시장을 넓히고 있으나 (우크라이나가 속한) 동유럽과 러시아 매출은 미미하다"면서 역시 침공의 영향이 제한적일 것으로 전망했다.
◆ 사이버전 위기 고조에 민관 대비 협력 필요…산업 영향은 '중립'
디지털 기반의 사회기반시설 침입과 네트워크 마비 등 공격을 수반하는 미국과 러시아 간의 '사이버전' 가능성이 제기됨에 따라 정보보안·사이버보안 업종의 중요성이 재조명되고 있다. 전쟁으로 인한 부정적 영향보다는 오히려 관련 기업들의 가치가 주목받는 상황이다. 러시아 군이나 국가의 지원을 받는 해커그룹이 우크라이나 침공과 함께 현지에서 디지털 기술을 활용하는 전산시스템과 이 전산시스템으로 작동하는 공장·제조 설비나 의료시설·통신망·전력망 등 핵심 인프라를 노린 악성코드 유포나 시스템 장애 유발 공격을 감행할 수 있다.
이런 배경에서 ICT브리프는 보안 업종에 대한 영향도는 '중립'이라고 진단하고 "미·러 사이버전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팔로알토, 포티넷, 사이버아크 등 보안 기업의 주가가 상승했다"는 점을 지적했다.
다만 국제사회의 러시아 제재에 동참한 한국 정부 차원에서는 사이버공격과 수출통제에 관련해 국내 위협과 피해를 줄이는 데 집중해야 하는 상황이다. 정부는 최근 국가·공공기관을 대상으로 보안권고문을 전파해 주요 시스템과 기반시설 대상 취약요인을 점검하도록 권고했다. 디도스공격 등 사이버침해사고가 발생할 경우를 대비해 통신사와 백신개발업체 등과 사이버위협정보를 공유하는 비상연락망 체계를 만들었다. 전략물자관리원 내에는 '러시아 데스크'를 가동하고 미국 측 경제 제재에 따른 대러시아 수출 지속가능성을 우리 기업에 컨설팅하고 있다.
◆ 원자재 수출입 등 공급망 영향에 반도체·스마트폰 '부정적'
부정적 영향이 큰 영역으로는 반도체, 스마트폰 등 업종이 꼽혔다. 모두 에너지·원자재 수출입 등 물리적인 공급망과 제품 소비시장의 영향을 크게 받는 분야다.
ICT브리프에 따르면 러시아는 미국에 이어 천연가스 세계 2위 생산국(수출은 1위), 원유생산량은 세계 3위, 석탄생산량은 세계 5위에 이르는 자원 대국이다. 러시아에서 시작하거나 러시아를 통과하는 천연가스 파이프가 거의 대부분 서쪽으로 향해 있고, 유럽은 러시아산 천연가스 의존도가 40% 수준이다. 러시아가 가스관 공급 중단 시 천연가스는 물론 전반적인 에너지 가격 상승을 견인하고, 원유도 주 수출국인 중국, 일본, 한국 등 다수 국가를 압박하는 수단으로 사용될 수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양국 모두 반도체 제조에 사용하는 원자재 네온, 크립톤, 크세논, 팔라듐 등의 주요 공급처로 글로벌 반도체 공급 부족과 가격 상승 가능성이 짙다.
반도체 업종의 수요는 동유럽 비중이 크지 않지만 에너지 가격이 상승함에 따라 스마트폰과 같은 전방산업의 연관 수요가 감소할 가능성 때문에 부정적일 수 있다. 또 우크라이나가 반도체 핵심공정 중 하나인 노광공정을 위한 장비용 네온가스를 공급하는 주요 국가로 한국 반도체 업종에 영향을 줄 수 있다. 다만 한국은 우크라이나산보다 중국산 네온을 더 많이 수입하고 있다는 점이 변수다.
우크라이나는 반도체 칩 제조용 네온의 90% 이상을 글로벌 시장에 공급하고 있다. 러시아는 센서용 메모리반도체의 재료인 팔라듐의 공급 물량 35%를 차지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미국의 경우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서 공급하는 팔라듐과 네온에 의존도가 높아 미국 내 시스템반도체 생산과 IT세트제품 생산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 앞서 지난 2014~2015년 우크라이나 전쟁 당시 반도체 생산용 네온 가격은 10배 이상 올랐다.
스마트폰 업종에서 러시아와 동유럽 지역 국가가 차지하는 비중이 작지 않은 편이다. 삼성전자 제품 기준으로 세계시장의 10% 안팎에 해당하는 규모로, 이 시장은 전쟁 상황이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그런데 ICT브리프는 같은 IT세트제품이라도 스마트폰과 달리 가전제품은 영향이 제한적일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 이유는 "우리 가전의 핵심 타깃은 서유럽"이라는 것이다. 일례로 LG전자의 매출 중 러시아 비중은 2.7% 수준으로 크지 않고, 이 회사의 러시아 소재 비유동자산도 0.84%로 미미한 수준이라고 평가됐다. 연관 산업인 디스플레이 업종 영향도는 '중립'이었는데, 삼성·LG의 TV 제조공장 일부가 러시아에 있지만 타 지역에서 대체 생산이 가능하다는 전망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