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이하 현지시간) 푸틴 대통령은 TV 연설을 통해 "핵 억지력 부대가 특별 전투임무에 돌입할 수 있도록 국방부 장관과 총참모장에게 지시했다"라고 밝혔다. 핵 억지력 부대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운용하는 러시아 전략로켓군 등 핵무기를 관장하는 부대를 포함하고 있다. 이에 CNN·AP 등 외신들은 푸틴 대통령의 이번 발언으로 현재의 지정학적 긴장 상황이 핵전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졌다고 지적했다.
푸틴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서방 국가들의 제재에 대해 비난에 나섰다. 그는 "서방 국가들이 경제 분야에서 러시아에 대해 비우호적인 행동을 이어나가고 있으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고위 인사들 역시 러시아에 공격적인 발언을 이어가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미국과 EU 등 서방 국가들이 러시아 은행들을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스위프트) 결제망에서 배제하고 푸틴 대통령과 측근들을 직접 제재하겠다고 밝힌 가운데 대러 제재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실제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가 핵전쟁으로 비화할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리고 있다. 우크라이나 침공 초기까지만 해도 핵무기 사용 가능성은 희박했지만 푸틴 대통령이 직접 핵무기를 언급한 가운데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설명이다. 러시아의 핵탄두 수는 약 6000개 수준으로 미국에 이어 가장 많은 핵무기를 가진 국가다.
미국 내 핵무기 전문가들은 푸틴 대통령이 이미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유럽에서 가장 큰 규모의 군사 작전을 도입한 가운데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고 밝혔다. 미국 과학자연맹의 한스 크리스텐슨 미국 핵무기 전문가는 NATO가 모든 비상 사태에 대비해 준비했다면서도, 양측이 병력을 증강하고 있는 가운데 불확실성 역시 커지고 있다고 미국 뉴스사이트 복스에 지적했다.
한편, 일각에서는 푸틴 대통령의 이번 발언이 서방 국가들이 군사적으로 개입하지 못하도록 엄포를 둔 것이라는 시각을 제시하기도 했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 시절 과학기술정책실 고문을 맡았던 매튜 번 하버드대학교 케네디스쿨 교수는 "푸틴 행정부 내 핵심 인물들 외에 푸틴 대통령이 왜 이러한 조치를 취했는지 확실히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라며 "개인적인 추측으로는 우크라이나를 돕기 위해 서방 국가들이 군사적으로 개입하지 못하도록 한 것"이라고 말했다. 폴 헤어 보스턴대학 강사 역시 푸틴 대통령의 목표는 우크라이나를 삼켜 다시 러시아가 제국의 위치를 차지하도록 하는 것이지 "세계를 핵전쟁으로 몰아가는 것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사진=스푸트니크·연합뉴스]
한편, 푸틴 대통령의 발언에 미국과 NATO 등 서방 국가들은 강력하게 반발했다. 특히 미국은 러시아에 대한 에너지 제재 가능성을 언급하기도 했다.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이날 ABC 방송에 출연해 푸틴 대통령의 발언이 위협에 불과하다며 긴장을 고조시키기 위해 이러한 발언을 했다고 해석했다. 그러나 사키 대변인은 "모든 선택지가 열려 있다"며 현재까지 미국이 사용하지 않은 에너지 제재를 도입할 수 있다고 시사했다. 린다-토머스 그린필드 주유엔 미국 대사 역시 CBS 인터뷰를 통해 "푸틴 대통령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방식으로 전쟁을 격화시키고 있다"라며 비판했다. 그는 "가장 강력한 방법으로 푸틴 대통령의 행동을 저지해야 한다"라고 밝혔다.
옌스 스톨텐베르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사무총장은 CNN과의 인터뷰에서 핵무기 운용부대의 태세를 강화하라는 푸틴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비판했다. 그는 이번 발언이 "위험한 언사이고, 무책임한 행동"이라고 언급했다. 앞서 스톨텐베르그 사무총장은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뿐만 아니라 NATO 동맹국들 역시 위협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