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방 국가가 전례 없는 대러 경제제재를 통해 러시아의 숨통을 조이고 있다. 이번 제재안은 세계 경제 무대에서 러시아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데 더해 주요 경제 대국의 첨단 기술 수출도 막아, 미래 먹거리의 싹까지 도려내는 게 골자다.
28일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서방 국가들은 연일 대러 제재 수위를 높이며 러시아 경제를 벼랑 끝까지 내몰고 있다.
푸틴부터 일반 국민까지 돈줄 ‘꽁꽁’

2월 27일(현지시간)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의 한 우크라이나인 교회 앞에서 시위대가 참수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머리 모형을 들고 시위에 나서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먼저 푸틴 대통령과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유럽연합(EU), 미국, 영국 내 해외 보유자산이 동결된다. 다만 이들 지역으로의 이동은 허용된다. 이 같은 제재는 명예를 훼손하기 위한 상징적 의미가 크다. 푸틴 대통령의 재산은 확실치 않으나 1000억 달러(약 120조원)가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과 알렉산드로 보르트니코프 러시아 연방보안국(FSB) 국장, 발레리 게라시모프 군총참모장 등 군 고위 인사들에 대해서는 자산동결은 물론이고 EU와 미국으로의 이동도 금지된다.
이와 함께 EU는 러시아 두마(연방의회 하원) 의원 351명을 여행금지 및 자산 동결 명단에 포함시켰고, EU와 미국은 러시아의 군사공세를 적극 지원한다는 이유를 들어 벨라루스의 군·정부 인사들을 자산 동결 및 여행 금지 명단에 올렸다.
올리가르히에 대한 제재도 포함됐다. 영국은 러시아 최연소 억만장자이자 푸틴의 전 사위인 키릴 샤말로프 등 재벌에 대한 자산 동결과 입국 금지 제재를 내렸다. 또 다른 제재 대상자인 페트르 프래드코프는 러시아 군(軍) 은행으로 알려진 프롬스비야즈뱅크의 최고경영자(CEO)로 재직하고 있다. 그는 전 총리이자 러시아 대외정보국(SVR) 국장을 지낸 미하일 프래드코프의 아들로, 아버지 프래드코프는 지난 2018년 미국 제재의 표적이 됐다.
또한 러시아 6위 재벌이자 푸틴의 사금고지기로 알려진 게나디 팀첸코와 함께 푸틴의 이너서클 멤버인 보리스 로텐베르그, 푸틴의 죽마고우인 아르카디 로텐베르그의 아들 이고르 로텐베르그 등이 영국에 보유하고 있는 모든 자산은 동결된다.
미국은 세르게이 보리소비치 이바노프 러시아 연방 대통령 환경보호교통 전권 특별대표와 그 아들, 니콜라이 플라토노비치 파트루셰프 러시아 연방안보회의 서기 및 그 아들, 러시아 반(半)국영 통합 에너지 회사인 로스네프트 최고경영자인 이고르 이바노비치 세친과 그 아들 등을 제재 명단에 올렸다.
일반인들에 대한 제재 카드도 꺼냈다. 영국은 러시아인의 은행 예금액을 5만 파운드(약 8000만원)로, EU는 10만 유로(약 1억4000만원)로 묶었다. 이를 통해 러시아 부유층의 해외 은행 접근을 제한하겠다는 셈법이다.
글로벌 금융거래 차단…돈맥경화 유도

독일 프랑크푸르트 시내에서 2월 26일(현지시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규탄하는 시위가 벌어진 가운데 한 시위 참가자가 러시아 은행들을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스위프트) 결제망에서 배제할 것을 촉구하는 팻말을 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SWIFT에서 배제되면 러시아는 국제 금융시장에 대한 접근이 가로막혀, 돈맥경화에 신음할 가능성이 높다. 다만 아직 구체적인 은행은 공개되지 않았다.
러시아에서 가장 큰 스베르방크와 VTB 등 두 은행을 포함한 90여개 금융기관은 미국 금융시스템을 통해 거래할 수 없다. 이들 은행은 미국 금융 시스템에서 완전히 차단되며 미국 관리 당국의 승인 없이 미국의 기업이나 개인이 이들과 진행하는 모든 거래는 완전히 금지된다. 사실상 미국 내 모든 자산이 동결된다는 의미이다.
미국은 러시아의 우방인 벨라루스의 주요 은행인 벨린베스트뱅크와 뱅크다브라비트도 제재 대상으로 지목했다.
이와 함께 일정한 금액을 투자한 외국인에게 시민권을 발행하는 이른바 '황금 여권'(골든 패스포트) 판매 역시 러시아인에게는 제한된다.
러, 하늘길 막고 미래 먹거리도 싹둑
러시아의 EU 하늘길도 차단된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러시아에 EU 하늘길 전체를 차단하기로 했다.영국은 국영 군수 업체인 로스텍, 탱크 제조업체 우랄바곤자보드 등 방산업체를 제재 대상에 올렸다. 이들 기업들의 자산동결 조처를 통해 러시아 군사사업과 기술 역량은 몇 년에 걸쳐 뒤처질 것으로 예상된다.
EU에 본사를 둔 기업들은 칼라시니코프 등 러시아 무기 제조업체, 제약회사 등에 기술을 수출하는 것이 금지되며 카마즈 등 트럭 제조사와 거래해서도 안 된다.
미국은 가즈프롬을 비롯해 러시아 최대 석유생산·정제업체 중 하나인 가즈프롬 네프트, 송유관 기업 트랜스네프트 등 러시아 주요 기업의 외화 자금 조달을 제한했다.
아울러 미국과 EU 등은 첨단제품의 핵심인 반도체나 소프트웨어 등에 수출규제를 가해 러시아의 미래 먹거리까지 옥죄기로 했다.
미국은 국방, 항공우주, 해양 분야의 고급 기술 수출을 제한키로 했고, 영국은 전자, 통신 및 항공우주 등 분야의 주요 기술 장비 및 부품 수출을 금지한다. EU는 반도체, 항공기, 석유 정제기술 등에 대한 수출 금지도 포함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