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준의 지피지기] 종적 감춘 시진핑의 '8일' ···그날 무슨일이

2022-02-22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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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우크라이나, 그리고 전인대.. 중국공산당 핵심 7인의 집중 토론

[올림픽] 폐회식 중국 오성홍기 (베이징=연합뉴스) 한종찬 기자 = 지난 20일 중국 베이징 국립경기장에서 열린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폐회식에서 중국 오성홍기가 게양돼 있다. 



 
2022 베이징 겨울올림픽이 20일 폐막됐다. 베이징(北京) 시각으로 오후 8시에 시작한 폐막식에는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과 부인 펑리위안(彭麗媛)이 참석했다. 총리 리커창(李克强), 전국인민대표대회 위원장 리잔수(栗戰書),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 주석 왕양(汪洋)을 비롯한 중국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 7명 전원이 참석했다.
91개국 선수단이 폐막을 위해 입장한 베이징 정북쪽의 냐오차오(鳥巢·Bird Nest) 메인 스타디움에는 베토벤 교향곡 9번 ‘환희의 합창(중국명 歡樂頌)’이 울려퍼졌다. 개·폐막식 연출을 맡은 중국 최고의 영화감독 장이머우(張藝謨)는 합창 교향곡을 작곡한 베토벤이 동시대에 살았던 나폴레옹과 애증의 관계였던 사실을 알고 있었을까. 나폴레옹이 프랑스 시민혁명 시기에 영웅에서 출발해서 황제가 되는 과욕을 부리다가 실패한 혁명가가 되는 과정에서 베토벤에게 숭배도 받고, 증오의 대상도 됐다는 사실을 장이머우 정도면 알고 있지 않았을까.

‘모두 함께 미래로(一起向未來)’라는 슬로건 아래 16일간 벌어졌던 겨울올림픽 제전에서 중국은 금메달 9개, 은메달 4개, 동메달 2개를 따내 메달 순위 3위라는 사상 최고의 겨울올림픽 성적을 거두었다. 국가 순위에서 미국을 제치고 3위를 기록했다. 환희의 합창이 울려퍼지는 스타디움에서 시진핑 주석이 펑리위안 여사와 함께 미소 짓는 모습을 중국 관영 중앙TV는 폐막식 틈틈이 보여주었다.

베이징 겨울올림픽이 진행되는 동안 온 세계의 눈은 우크라이나에 쏠려 있었다. NATO에 가입해서 러시아의 영향력에서 벗어나려는 우크라이나를 붙들어 두기 위해 푸틴 대통령이 이끄는 러시아군이 언제 공격할지를 놓고 푸틴은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치열한 수 싸움을 벌였다. 푸틴은 베이징 겨울올림픽이 개막한 4일 베이징에 나타났다. 올림픽 개막일 저녁 7시(베이징 시각) 관영 중앙TV의 전국 연결 네크워크 뉴스의 톱뉴스는 올림픽이 아니라 시진핑과 푸틴의 정상회담이었다.

이날 발표된 정상회담 공동성명에서 시진핑과 푸틴은 우크라이나와 대만 문제에서 상대방의 입장을 지지한다는 내용을 서로 주고받았다. 시진핑은 푸틴에게 “나토의 계속적인 확장에 반대하며, 나토가 냉전시대의 사고방식을 버리고 다른 나라의 주권을 존중할 것을 촉구한다”는 조항을 선물했고, 푸틴은 시진핑에게 “하나의 중국 원칙을 존중하며, 대만은 중국 영토의 분할할 수 없는 일부분이고, 어떤 형태의 대만 분리 독립에도 반대한다”는 조항을 선물로 주었다. 푸틴은 우크라이나 일이 급한지 다음날 시진핑이 인민대회당에서 마련한 거대한 용 모양의 푸른 강이 거대한 식탁 위에 흐르는 황제 오찬에 참석하지 않았다. 푸틴은 시진핑과 지난 10년간 39번째 정상회담을 마치고, 체류 9시간 만에 전세기편으로 베이징을 떠났다. 원래 푸틴을 위해 마련해 두었던 자리는 공석이 됐다.
 
괴상한 일은 올림픽 개막 사흘 뒤인 8일부터 벌어졌다. 시진핑을 비롯한 중국공산당 최고 수뇌부인 정치국 상무위원 7명 모습이 관영매체에서 일제히 사라졌다. 매일 저녁 전국 연결 네트워크 뉴스 ‘신원롄보(新聞連播)’에 나오던 시진핑의 모습 대신 과거에 지방을 시찰하던 녹화 테이프가 돌아갔다. 나머지 상무위원 여섯 명도 관영 중앙TV와 중국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에 보이지 않았다. 대만발 유튜브 TV들은 “대륙 정권 수뇌부에서 심각한 권력투쟁이 벌어졌고 시진핑이 위기를 맞은 것 같다”는 믿거나 말거나식 보도를 했다.

5일 올림픽 개막을 선언하고 6일까지 올림픽 개막식 참석 외국 정상들을 접견한 시진핑은 8일부터 관영 중앙TV 화면에 보이지 않았다. 일주일 만인 15일 정치국 상무위원 7인 가운데 총리 리커창(李克强)이 국무원 회의를 주재하기 위해 공개 석상에 나왔다. 시진핑이 공개 석상에 나타난 것은 8일 만인 16일 오후였다. 이날 오후 7시 전국 연결 네트워크 뉴스 신원롄보는 시진핑이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전화 회담을 했다는 뉴스를 내보냈다. 시진핑은 마크롱과 전화 통화에서 “우크라이나 관련 당사국들은 정치적 해결이라는 큰 방향 아래에서 노르망디(Normandy) 체제를 포함하는 다자(多者) 회담의 플랫폼을 이용해서 대화와 협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올림픽 개막식 날 발표된 푸틴과의 공동성명에서 “나토가 냉전적 사고를 버려야 한다”고 러시아를 편들던 입장과 사뭇 달라진 자세를 보여주었다. 노르망디 체제란 우크라이나 전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14년 독일, 러시아, 우크라이나, 프랑스 4개국이 만든 4자 회담 체제다.

중국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 7인이 왜 올림픽 개막 후 8일부터 일주일간 공개 석상에서 사라진 이유에 대해서는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이 16일 특종 보도를 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중국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 7인은 푸틴이 시진핑과 정상회담을 한 직후 베이징을 떠나자 베이징 중심부의 고위지도자 집단 거주지 중난하이(中南海)에서 문을 닫아걸고 우크라이나 문제에 대한 집중 토론을 벌였다”고 전했다. 중국공산당은 과거부터 국내에는 알리지 않고 국제사회에 해명해야 할 이유가 있을 때 국제적으로 신뢰도가 높은 미디어를 선택해서 뉴스를 흘려주는 방식을 활용하곤 해왔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정치국 상무위원 7인은 3월 초로 예정된 전국인민대표대회에 앞서 2월 말 개최 예정인 25인의 정치국 회의에 제시할 중국의 우크라이나 외교전략에 관한 정치국 상무위원회의 결정을 위해 일주일간 중난하이에서 비공개 집중 토론을 벌였다. 이 자리에서 정치국 상무위원회는 우크라이나가 시진핑의 간판 국가전략인 일대일로(一帶一路) 정책의 계약 체결국이라는 점, 중국이 우크라이나를 포함한 동유럽에 많은 인프라 투자를 해놓았다는 점, 그렇다고 우크라이나를 놓고 러시아에 등을 돌릴 경우 러시아에서 수입해야 할 석유와 가스 조달 문제가 발생한다는 점 등을 놓고 열띤 토론을 벌였다. 이와 함께 최근 들어 중국이 미국과는 멀어지고, 러시아와 가까워지고 있는 현 정부의 외교전략이 과연 중국 국익에 맞는지에 대한 토론도 격렬하게 벌였다. 만약 우크라이나 문제로 미국과의 거리가 지금보다 더 멀어질 경우 중국의 기본 금융 체제가 미국 중심의 국제적 금융 네트워크에 연결돼 있는 구조에 심각한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하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왔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은 전했다.

3월 5일 개막 예정인 전국인민대표대회를 어떻게 치를 것인지에 대해서도 정치국 상무위원들은 이런저런 논쟁을 벌였다. 시진핑 국가주석과 리커창 총리가 각각 10년 임기의 마지막으로 참석하는 전인대에서 내년에 개막하는 새로운 5년 임기의 행정부 인사를 어떻게 짤 것인지에 대해서도 심사숙고가 진행됐다. 올해 늦가을 11월까지는 개최해야 할 제20차 당대회에서 발표할 새로운 5년 임기의 제20기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인선 문제도 깊이 다루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미국 뉴욕타임스는 지난 14일 “올해 말 제20차 당대회에서 최종 결정될 시진핑의 3연임 시대를 끌고갈 새로운 정치국 상무위원회와 정치국원들 인사를 정리하는 문제도 아직까지 알려진 것이 없다”고 보도했다. 뉴욕타임스는 “시진핑 당 총서기 겸 국가주석이 올가을에 개최해야 할 20차 당대회를 위한 후계 인물 인선에 대해서도 아직 특별한 속내를 드러내지 않고 있다”면서 “현재 알려진 것은 시진핑 후임으로 천민얼(陳敏尒·62) 충칭(重慶)시 당 서기와 후춘화(胡春華‧59) 부총리, 딩쉐샹(丁薛祥‧60) 당 중앙서기처 서기 이외에는 새로운 인물이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이들 예비 후계자 3명 역시 25인의 정치국원 위치에 머물고 있으며, 올가을 당대회에서 어떤 인물들이 정치국과 정치국 상무위원회에 진입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아무런 발표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고도 뉴욕타임스는 보도했다.

뉴욕타임스는 중국공산당 권력 내부에 대한 다양한 취재 결과를 담은 기사에 “중국 스타일의 후계 드라마, 주연은 시진핑(A Succession Drama, Chinese Style, Starring Xi Jinping)”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뉴욕타임스는 인터넷 신문 중국어판에 '시진핑 주연의 중국 지도자 권력 승계, 한 마당의 베이징오페라(一场以习近平为主角的中国领导人接班大戏)'라는 제목을 달았다. 과연 중국공산당 최고 권력 변동에 관한 시진핑의 속내는 언제쯤 알 수 있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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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푸틴과 신냉전(New Cold War)
 
시진핑은 1953년생으로, 59세 때인 2012년 11월 중국공산당 총서기로 선출된 이후 국가주석과 중앙군사위 주석 등 당·정·군 최고지도자 직위를 10년째 유지하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은 1952년생으로, 47세 때인 1999년부터 대통령과 총리직을 번갈아 해오며 24년째 러시아 최고 권력자로 군림해왔다. 시진핑과 푸틴은 그동안 모두 38차례 정상회담을 했으며, 지난 4일 베이징 회담이 39번째 정상회담이었다. 시진핑은 2013년 3월 국가수반인 국가주석에 선출된 이후 첫 외국 방문국으로 러시아를 선택했고, 2019년까지 모두 8차례 러시아를 방문했다. 시진핑은 2013년 러시아 방문 기간에 푸틴에게 “내가 가장 감명 깊게 읽은 소설은 니콜라이 체르니솁스키(1828~1889)가 쓴 <무엇을 할 것인가>였다”고 말했다. 시진핑은 1949년 10월 중화인민공화국 정부 수립 4년 후에 출생해서 초·중등 교육을 받던 시절 소련은 마오쩌둥(毛澤東)이 이끄는 중국에 많은 경제원조를 했고, 그 시절 중국 사람들은 소련을 ‘라오 다거(老大哥·큰형님)’라고 불렀다. 그런 상황에서 22일 푸틴이 러시아군에 우크라이나 진입 명령을 내림으로써 중·러와 미·유럽 간 ‘신냉전’은 ‘새로운 열전(New Hot War)’으로 비화하는 국면을 맞게 됐다.

박승준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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