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여성 과학기술인 육성·지원 정책이 과학기술 전공 여학생 비율의 확대, 여성 대학(원) 전공자의 취업·경력 발전을 도왔지만, 기존 방식의 한계도 뚜렷해졌다. '노벨상 씨앗' 시기라고도 불리는 경력개발 중추 기간인 30대 전후에 출산과 육아로 발생하는 경력단절이 여성 과학기술인의 경력 지속·복귀에 높은 장벽으로 작용하고 있다.
21일 한국여성과학기술인육성재단(WISET·위셋)에 따르면, 기존 '생애주기(연령대)별 지원' 정책을 넘어 전공 학과, 연계된 산업, 거주 지역 등 지원 대상 인재들이 처한 다양한 상황에 따라 최적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송곳 지원' 정책이 요구된다.
◆ 공공·산업계 육아휴직제 실상은
연구·산업 현장에서 저조한 출산·육아 휴직제도의 활용률을 높여야 한다. 과학기술분야 연구기관의 육아휴직제도는 점차 활성화되는 추세지만, 법적 기간(1년 이상)을 채우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70%)이다. 공공 연구기관을 제외하면 이용자 비율도 낮은 편(20% 미만)이다. 육아휴직을 고민하는 당사자가 '휴직 공백으로 생기는 인사평가 및 경력에 대한 우려', '동료들의 업무 가중', '동료·상사의 이해 부족', '비호의적인 조직문화'를 의식한 결과다.
2019년 기준 전체 공공 연구기관의 여성 재직비율은 26.1%로, 채용비율 대비 6.1%포인트 낮다. WISET은 정부의 정책적 의지가 개입하지 않으면 이 여성 재직비율이 30%에 도달하기까지 20년이 걸릴 것으로 추산한다.
권지혜 WISET 정책연구센터장은 "활동이 왕성할 30~40대 인력이 휴직 시 부서 안에서 업무를 분담하지 못하면 조직 차원에서도 손실이 크다"며 "정부의 강제성이 작용하는 공공부문보다 대학(학계)이나 민간에서 육아휴직제도를 활용하기가 더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육아휴직 예산에 비해 대체인력 채용 지원 규모는 미미하고 그나마 최근에야 지원 대상이 됐다"고 덧붙였다.
◆ 졸업 후 신규 정규직 채용 이어져야
정부의 채용목표제 등으로 최근 10년간 국·공립 연구기관이 양성평등 채용 수준을 달성했지만, 정부출연·공사 연구기관의 여성 채용 비율 개선은 미흡하다. 또 과기정통부의 '여성 과학기술인력활용 실태조사'에 따르면 2006년 이래로 정규직으로 신규 채용되는 과학기술인 가운데 여성 비율의 상승세가 2019년 꺾이고, 이공계 전공 졸업자의 여성 비율과의 격차가 지속되는 상황이다.
2018년 학사 기준 인문·사회계열 전공 졸업자 여성과 비슷한 자연계열 전공 졸업자 여성의 취업률이나, 같은 학과 남학생보다 10%포인트 낮은 화학공학·신소재공학·기계공학 등 공학계열 전공 졸업자 여성의 취업률은 '이공계가 취업에 유리하다'는 말이 무색하다.
권 센터장은 "여성 비율이 30% 이상인데 남·녀 취업률 격차가 큰 공학 전공 학과들이 있다"며 "화학·신소재·기계, 이런 전공은 12대 주력산업에서 계속 인력이 부족하다고 손꼽히는 영역"이라며 "한 통으로 뭉뚱그린 취업 지원보다는 산업별 수요에 맞는 정책, 인재의 전문성을 살리고 지역과 연계 가능한 지원·훈련 프로그램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 디지털 혁신 여성 공학도 추가 유입 기대
공학·자연계열 전공을 선택하는 전체 여학생 수가 2004년 3만8000명대에서 2017년까지 4만5000명대로 늘었지만 이후 더 늘지 않고 정체된 상황이다. 자연계열 입학생 감소 추세와 공학계열 입학생 증가 추세가 맞물린 결과다.
공학계열만 따로 보면 여성 학사 입학생 중 여성비율은 최근 4년(2016~2019년)간 25% 수준에 머물고 있고, 학사 대비 상위과정(석·박사) 진학 비율 격차(3~6%포인트 안팎)는 지난 15년(2005~2019년)간 줄어들지 않고 있다.
권 센터장은 "과학·공학계열 입학생 유입이 전체적으로 정체돼 있는 가운데, 학령 인구 감소세를 감안하면 공학계열의 여학생 유입은 상대적으로 증가세"라고 설명했다.
이어 "디지털 혁신 인재가 부족하다고 하는데 이공계 인력이 더 많이 들어와야 나라에서 필요한 인력 양성이 되지 않겠느냐"며 "대학 안에서 남학생은 이미 50%가 공대로 입학했고 여학생은 20%대에 불과해, (다른 전공을 선택할 수 있는) 여학생들을 이공계로 더 들어오게 할 지점이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