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한국자동차연구원은 ‘전기차 보조금 정책, 숨겨진 실익에 주목해야’라는 보고서를 통해 전기차 보조금의 이면을 파악하고 우리 정부의 합리적인 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우선 전기차 보조금은 자국 완성차 기업의 전기차 생산단가를 절감해주면서 내수 판매 증가와 대외 경쟁력 제고, 부품·인프라 등 연관 산업의 동반성장 등의 효과를 가져다 준다. 이에 각국 정부는 전기차 보조금 지급 방식에 차이를 두며 자국산 전기차를 밀어주고 있다. 특정 국가의 제품을 명시적으로 차별하는 것은 세계무역기구(WTO)나 국가 간 자유무역협정(FTA) 등 국제규범에 저촉하지만, 자국 완성차 기업에 유리한 전기차 보조금 정책은 세계 곳곳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는 설명이다.
예컨대 중국과 일본은 자국산 자동차의 기술적 특성에 유리한 보조금 정책을 운용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배터리 교환서비스(BaaS) 기술이 적용된 차량은 보조금 기준(차량 가격 30만 위안(약 5700만원) 이하)에서 예외로 인정하며, 주행거리연장형전기차(EREV)도 전기차 보조금 대상에 넣었다. EREV는 외부 충전이 불가능하고 엔진이 상시 작동한다는 점에서 보조금을 주지 않는 국가가 많다. 그러나 중국은 자국 기업의 EREV 생산에 보조금을 책정하는 전략적 선택을 취했다.
독일은 자국 완성차 기업이 내연기관 기술에 강점을 보이면서 다른 유럽 국가보다 내연기관을 탑재한 PHEV에 상대적으로 높은 액수의 보조금을 지급한다. 지난해 독일 연방정부는 BEV에 최대 9000유로(약 1220만원), PHEV에 최대 6750유로(약 910만원)의 보조금을 지급했으며, 그 결과 내수 시장에서 자국 브랜드의 PHEV 판매량이 강세를 보이고 있다.
또한 이탈리아와 독일은 자국산 전기차 판매 시점에 맞춰 지급액을 조절하고 있다. 이탈리아는 지난해 자국산 전기차인 피아트의 ‘뉴 500 일렉트릭’ 판매 시작과 함께 전기차 1대당 최대 2000유로의 특별 보조금을 추가했다. 독일도 폭스바겐 전기차 ‘ID.’ 시리즈가 출시된 2020년부터 전기차 1대당 보조금을 최대 9000유로 증액했다. 지급 기한도 2025년까지 연장했다.
프랑스와 중국은 자국 완성차 기업이 소형 전기차 생산에 집중하자 보조금 지급 가격 상한선을 설정해 고가의 수입 전기차 판매를 억제하고 있다. 지난해 프랑스는 4만5000유로(약 6100만원) 이하의 전기차에 대해 최대 7000유로(약 950만원)의 구매보조금을 지급했다. 반면 4만5000유로 이상은 2000유로만 지급하고 있다.
중국은 테슬라 ‘모델3’가 큰 인기를 끌자 2020년부터 30만 위안 이상인 전기차는 보조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해 테슬라 판매를 억제하려 시도했다. 다만 해당 조치 직후에 테슬라는 모델3 기본 가격을 30만 위안 이하로 인하해 판매 억제효과는 없었다.
연구원은 전기차의 생산비용과 판매가격이 하락하는 시점이 오면 보조금은 자연스럽게 줄어들 것으로 봤다. 그러나 전기차 가격 하락 시점이 예상보다 지연되고 있어 당분간 시장에서 보조금 효과가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이호중 한국자동차연구원 책임연구원은 “글로벌 공급망 변화로 배터리를 포함해 전기차 생산에 필요한 광물 가격이 상승하면서 전기차와 내연기관차의 가격 동등화 시점은 기존 예상 시점인 2025년보다 늦어질 가능성이 있다”면서 “국내에서도 전기차 보조금의 실익을 높일 수 있는 합리적인 정책을 꾸준히 모색해야 하며, 특히 전기차 관련 기업의 기술 혁신을 촉진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전기차 배터리의 에너지 밀도 등 다양한 기술 요건을 구체화하면서 전기차와 배터리 산업 혁신을 동시에 추구한 중국의 정책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