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企 기술탈취 방지 시행에 업계 '환영'… 대기업 이행은 '글쎄'

2022-02-08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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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탈취 땐 3배 배상… 중소기업 기술보호 위한 상생협력법 시행

중소기업계 "기술보호 실효성 높아졌다" 긍정 평가

일각에선 "대기업, 과태료 감수하고 법 미준수" 우려

대기업의 중소기업 기술 탈취를 막기 위한 상생협력법이 본격 시행된다. 중소기업계에서는 기술보호 실효성이 높아질 것으로 기대하는 가운데 일각에선 대기업의 적극적인 이행 의지가 뒷받침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사진=아주경제 DB]

# H조선사는 2012년부터 2016년까지 피스톤과 실린더를 납품해온 S중소기업에 기술자료를 넘길 것을 요구했다. 계속된 독촉에 S중소기업이 제조공정도와 작업표준서 등을 제공하자 H조선사는 해당 자료를 다른 업체로 유출했다. 이후 S중소기업에 단가 인하를 강요하고 점차 물량을 줄이다가 결국 발주를 중단했다. H조선사는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시정 조치와 과징금을 부과 받았지만 행정소송으로 대응했다.
 
앞으로는 이 같은 중소기업 기술탈취 문제가 해소될 전망이다. 비밀유지계약 의무화, 징벌적 손해배상 등의 내용을 담은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상생협력법)’ 시행령 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하면서다.
 
법이 시행되면 그동안 단편적인 법‧제도 개선에 머물렀던 기술 보호 대책의 한계를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점에서 중소기업계의 기대가 높다. 다만 대기업의 적극적인 이행 의지가 뒷받침 돼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중소기업 기술탈취 땐 3배 배상... 소송도 쉬워진다
 중소벤처기업부는 상생협력법 시행령 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했다고 8일 밝혔다. 주요 개정 내용은 △비밀유지계약 체결 의무화 △수탁 기업의 기술 침해 입증 부담 완화 △기술 탈취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3배 이내) 등이다.
 
오는 18일부터 법이 시행되면 수·위탁거래 관계에서 기술자료 제공 시 비밀유지계약 체결이 의무화된다. 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대기업은 500만원, 중소기업은 300만원의 과태료를 물어야 한다.

또한 수탁기업의 기술침해 입증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위탁기업 격인 대기업이 ‘기술침해를 하지 않았다’는 증거자료를 제시하도록 함으로써 수탁기업의 입증책임 부담이 줄었다.

기술자료 유용행위에 대한 행정조사 실효성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조사 거부에 대한 과태료 부과 금액도 높인다. 거부 횟수에 따라 과태료 부과 금액이 1회 1500만원에서 3회 5000만원까지 증액되도록 하는 규정을 신설했다.

수·위탁거래 관계에서 발생한 기술탈취 행위에 대해서는 피해액의 3배까지 배상하도록 하는 징벌적 손해배상 규정도 마련됐다. 이를 통해 고의적으로 기술자료를 유용하는 행위를 방지하고 피해기업에 대한 합리적인 보상이 가능하게 됐다.

이미 하도급법·특허법·부정경쟁방지법 등 유관 법률에는 징벌적 손해배상 규정이 도입돼 있으나, 수탁·위탁거래에서 발생한 중소기업의 기술자료 유용행위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는 개정 상생협력법 및 시행령을 통해 처음 실시된다.
 
중소기업계 “숙원 풀었다”… 대기업 이행은 과제

[사진=중기부]

그동안 산업 현장에서는 대기업이 납품업체인 중소기업에 기술 자료를 요구한 뒤 제공받은 기술 자료를 이용해 납품업체를 이원화하고, 기존에 납품하던 중소기업에 납품단가 인하를 요구하거나 발주 자체를 중단하는 사례가 빈번했다.

중기부에 따르면 2017년부터 2019년까지 기술 유출‧탈취를 경험한 중소기업은 1.7%이며, 평균 피해 금액은 5억8000만원에 달한다. 하지만 중소기업은 거래 단절 우려와 피해 입증의 어려움으로 법적 대응에 나서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중소기업계는 법 시행을 계기로 이런 문제가 해소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비밀유지계약 체결 의무화를 통해 기술 침해 가능성이 사전에 차단됐고, 소송 절차에서도 중소기업이 불이익을 받지 않을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특히 업계는 수탁 기업의 기술 침해 입증 부담이 완화된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기존엔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수탁 기업이 기술 탈취 사실을 입증해야 했지만 앞으로는 중소기업이 구체적인 위반 사실을 주장할 때는 위탁 기업은 이를 부정하는 증거자료를 제시해야 한다.

추문갑 중소기업중앙회 경제정책본부장은 “기술 탈취에 대한 입증 책임을 중소기업이 직접 지다 보니 법적 분쟁에서 불리했다. 앞으로는 대기업이 입증 책임을 지게 돼 중소기업계로선 숙원사업이 풀렸다”며 “법 개정을 통해 기술 보호의 실효성을 담보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이 마련됐다”고 말했다.
 
다만 기술탈취 근절은 대기업의 이행 여부가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대기업이 법을 이행하지 않을 경우 과태료를 부과하고 징벌적 손해배상을 하도록 했지만, 기술탈취로 인해 얻는 효용이 더 크다고 판단한다면 경제적 처벌을 감수할 가능성이 있어서다.
 
상생협력법 개정 과정에서 법률 자문을 맡은 장태관 재단법인 경청 이사장은 “징벌적 손해배상 규정이 마련되고 손해산정액이 달라졌다는 점, 중소기업의 손해배상 입증부담이 완화됐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면서도 “과태료나 손해배상액이 대기업에 경각심을 줄 수 있을지는 여전히 의문”이라고 평가했다.

노민선 중소벤처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법 개정안에는 기술탈취에 대한 진일보한 내용이 담겼다”며 “법안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공정위 등 부처 간 협력 체계를 강화하고 대기업에서도 전향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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