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면 패배한 후보는 대선 과정에서 제기된 각종 의혹에 발목이 잡혀 종종 사법적 처벌까지 두려워해야 한다. 패배한 정당은 패배 책임을 둘러싸고 내부에서 서로 치고받는다. 상황에 따라 분당이나 해체 수순까지 밟는다. 대선승리에 대한민국 모든 정당이 말 그대로 목숨을 거는 이유다.
그래서일까. 역대 대선에서는 항상 유권자들의 상상력을 뛰어넘는 사건들이 종종 벌어지곤 했다. 어느 일방의 '무책임한 정치공세'로 일축됐던 의혹이 나중에 사실로 밝혀지는 일도 있었다.
13대 대선을 뒤흔든 'KAL기 폭파 사건'
승객 115명을 태우고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서울로 향하던 KAL 858기가 미얀마 상공에서 교신이 끊기고 실종됐다. 이틀 뒤 경유지였던 아부다비에서 내렸던 승객 15명 가운데 2명이 위조된 일본여권을 사용했다는 것이 확인됐고 이들은 바레인 공항에서 체포됐다. 두 사람은 조사과정에서 음독자살을 시도, 김승일은 사망하고 김현희는 살아남았다.
선거 막판에 터진 북한의 테러에 강력한 '북풍'이 불었다. 이는 보수여당인 민주자유당의 노태우 후보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다. 반면 김영삼, 김대중으로 대표되는 민주화 세력은 위축됐다.
이에 일각에선 북측이 아닌 남측의 자작극인 것 아니냐는 '음모론'도 있었지만 1988년 서울올림픽을 방해하기 위한 북한의 테러라는 것이 정설이다.
다만 당시 전두환 정부가 소위 '무지개 공작'을 통해 KAL기 폭파사건을 정략적으로 선거에 이용했다는 것은 사실로 드러났다.
공개된 외교문서 등에 따르면 전두환 정부는 대선 전날인 15일까지 김현희의 국내 송환을 위해 바레인 정부와 끈질기게 교섭했다. 김현희를 압송하는 장면은 대선 투표 당일 대다수 조간신문의 1면 헤드라인을 장식하면서 대선 이슈를 집어삼켰다.
14대 대선, 지역감정 위력 확인한 '초원복집 사건'
1992년 14대 대선 일주일 전에는 '초원복집 사건'이 터졌다. 당시 선거는 김영삼 민주자유당, 김대중 민주당, 정주영 통일국민당 후보의 3자 대결이 치열하게 펼쳐졌었다. 대선 기간 내내 양김은 20~30%대 지지율로 초박빙 대결을 벌였고, '현대그룹' 오너 정 후보도 만만치 않은 존재감을 보였다.
12월 11일, 김기춘 전 법무부 장관(박근혜 정부 청와대 비서실장)은 부산에 내려가 지역 정부기관장들과 초원복집에서 회동했다. 이들은 '우리가 남이가'라며 지역감정을 부추겨 김영삼 후보를 지원하자고 모의했다.
해당 내용은 통일국민당 관계자에 의해 녹음, 각 언론사에 전달됐다. 당초 '망국적 지역주의'를 조장하는 YS 측을 곤란하게 만들 것으로 예상됐지만, 언론보도 후 역설적으로 영남지역 민심이 똘똘 뭉쳐 김영삼 후보의 승리를 이끌었다.
16대 대선 전날, '노무현·정몽준 단일화 철회'
2002년 16대 대선 하루 전에는 정몽준 후보의 노무현 새천년민주당 후보에 대한 '지지철회'가 있었다. 대선 내내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에 밀리던 두 후보는 줄다리기 협상 끝에 여론조사 단일화에 합의했고, 노 후보가 단일 후보로 선출됐다.
결과에 승복한 정 후보는 노 후보 지지 유세에 나섰지만, 선거 전날 저녁 지지를 철회했다. 노 후보 측이 '공동 내각' 등 정 후보 측의 지분요구에 확실한 답변을 내놓지 않았고, 선거운동 마지막 날 서울 명동 유세에서 노 후보 측이 정 후보 측을 홀대하면서 지지 철회로 이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노 후보는 지지 철회에도 이회창 후보를 2.3%포인트 차로 제쳤다. 철회 소식을 들은 노 후보가 정 후보의 집을 급히 찾아갔다가 '문전박대'를 당하는 모습이 대대적으로 보도되면서 노 후보 지지층이 집결하고, 무당파의 동정여론이 커져 오히려 전화위복이 됐다는 분석이 많다.
17대 대선, 이명박의 'BBK 동영상'
17대 대선은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가 압승했다. 당시 정권교체 열망이 강했기에, 본선보다 한나라당 이명박·박근혜 후보의 내부 경선이 더 주목받았다.
대선 3일 전 이 후보가 BBK 논란과 관련해 "금년 1월 달에 BBK라는 투자 자문회사를 설립을 하고"라는 발언이 담긴 '광운대 동영상'이 공개됐다. 그러나 소위 '주어는 없다'는 말과 '설렁탕 특검'으로 끝났다.
BBK 주가조작 사건은 1999년 설립된 'BBK투자자문(대표이사 김경준)'이 옵셔널벤처스 사의 주가를 조작한 사건 등을 뜻한다. 5000여명의 소액투자자들에게 1000억원가량의 피해를 입힌 것으로 추산된다.
당시 정치권에서는 이명박 후보가 BBK 관계자들과 접점이 많았다는 점에서 이 후보가 BBK의 실소유주라는 의혹이 줄기차게 제기됐었다. 김경준이 "이명박이 BBK의 실 소유주"라고 증언을 하기도 했지만, 당시 검찰과 특검은 모두 무혐의로 발표했다. 10년 후 정권이 바뀌고 나서야 진상이 밝혀졌다.
18대 대선 '국정원·국방부 여론조작 사건'
18대 대선을 약 일주일 앞둔(2012년 12월 11일) '국가정보원 직원의 여론조작 사건'이 터졌다. 당시 이명박 대통령의 지시를 받아 국가기관인 국정원과 국군사이버사령부, 경찰청 등이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의 승리를 위해 여론조작에 나선 사건이다.
민주주의 자유투표의 근간을 뒤흔든 사건으로 박 후보에게 극히 불리한 이슈였지만, 선거 이틀 전 경찰은 이례적으로 중간수사 발표에 나서 "2012년 10월 1일부터 12월 13일까지 대선 후보에 대한 비방, 지지 게시글이나 댓글을 게재한 사실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했다.
당시 선거 막판 여론조사에서 문재인 후보가 박근혜 후보와의 골든크로스에 성공했지만, 경찰의 발표가 민주당 측에 역풍으로 작용했고 박 후보의 승리로 판세는 기울어졌다. 이 사건 역시 정권이 바뀌고 진상이 밝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