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4월 '기금형 퇴직연금' 제도가 도입되면 OCIO(외부위탁 운용관리자)와 결합된 퇴직연금 시장 판도가 바뀔 것으로 보인다. 안정성에만 치우쳤다는 지적을 받던 퇴직연금이 이제 수익성 추구에도 나설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시장 규모 자체도 대폭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7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현재 OCIO는 연기금 위주로 시장이 형성돼 있다. 고용노동부의 산배보험기금과 고용보험기금, 국토교통부의 주택도시기금, 기획재정부의 연기금투자풀 등이 OCIO의 주 무대다.
기금형 퇴직연금 제도가 도입되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수익률이다. 우리나라는 2005년부터 계약형 퇴직연금 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사용자(기업)가 직접 퇴직연금 사업자(금융회사)와 계약하고 투자 의사 결정을 사용자와 근로자가 주도하는 형태다.
계약형 퇴직연금은 주로 확정급여형(Defined Benefits·DB)이나 확정기여형(Defined Contribution·DC) 중 하나를 선택해 운용하게 된다. 어떤 상품이더라도 대부분이 임금 상승률 정도만 따라가고 있으며 코스피200 지수 등 수익률과는 무관하게 운용된다.
문제는 의사 결정 과정에서 자금 운용에 전문가가 참여하지 않다 보니 대부분이 원리금 보장상품으로 쏠렸다는 점이다. 회사가 한번 퇴직연금을 도입하면 가입자가 지속해서 우수한 금융기관을 탐색하거나 직접 선택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거의 없다.
높은 수익률을 바탕으로 한 실적 배당 상품 운용에 강점이 있는 증권업계가 그동안 퇴직연금 시장에 소홀했던 점도 이런 이유에서다.
하지만 기금형 퇴직연금 제도를 도입하면 회사와 별도로 독립된 비영리재단법인 형태의 수탁법인을 설립한 뒤 기금 운용을 노·사·외부 전문가 3자로 구성된 기금운용위원회를 통해 시행한다.
그동안 자산 운용에 전문성이 부족한 근로자와 회사가 운용 지시를 했지만 기금형 퇴직연금 체계에서는 외부 전문가가 참여함으로써 관리·운용의 전문성 강화가 가능하다.
특히 협회나 공단, 지역 등을 중심으로 한 중소기업들의 연합형 기금 도입이 가능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몇몇 기업이 모여 큰손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예를 들어 '여수산업단지 퇴직기금'이나 'LG 협력사 연합연금' 등이 출범할 수 있다.
기업 규모가 작을수록 퇴직연금을 도입할 여력이 부족한데, 기금 형태로 적립금을 조성하면 OCIO 제도를 통해 금융투자회사가 운용할 수 있게 된다.
금융투자회사 입장에서 OCIO 제도 확대가 반가운 이유는 또 있다. 현행법에 따른 OCIO는 투자일임업자여야 하는데 그동안 퇴직연금의 주도 사업자인 은행은 투자일임업이 허용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은행권에서 기금형 퇴직연금 제도 도입을 반대해온 이유다.
한편 OCIO 시장의 단점도 있다. 바로 낮은 운용보수다. 큰돈을 유치하더라도 금융투자회사에 당장 큰 수익이 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금융투자업계는 향후 개선될 수 있는 부분이라는 입장이다. 경쟁이랄 것이 없던 상황에서 형성된 현재 보수체계다 보니 향후 회사별 수익률 차이가 드러나면 운용보수도 따라서 올라갈 수 있을 것이라는 얘기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장기적으로 OCIO 시장과 퇴직연금 시장이 함께 성장하려면 수익률을 기반으로 한 합리적인 운용보수 체계가 도입될 필요가 있다"며 "이를 통해 근로자 입장에서 선택의 폭도 넓어질 것이며 시장 자금이 풍부해지면서 투자업계 전반적으로 유동성도 좋아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