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문난 잔치엔 별 게 없다
3일 오후 8~10시, 많은 이들이 드디어 2022년 대통령선거 후보 토론회를 봤다.
20대 대통령 선거 후보자 4인, 이재명(민주당)-윤석열(국민의힘)-안철수(국민의당)-심상정(정의당) 후보가 참석한 1차 토론회 시청률은 엄청났다. 첫 TV 토론 효과, 40%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기록했다.
4일 시청률 집계 전문기관인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이번 토론회 시청률은 KBS 19.5%, MBC 11.1%, SBS 8.4%로, 전국 가구 기준 총 39%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4인이 만든 봉숭아학당
이재명 후보는 대장동 의혹에 대해 “청문회, 기자회견 등에서 수도 없이 얘기했다”며 ‘거리두기’를 시도했다. 적지 않은 시청자들은 이 후보가 ‘수도 없이 많이 한 얘기’를 기억하지 못한다. 많은 이들이 다시 듣고 싶었지만 이 후보는 그 바람을 뭉갰다. 말투와 태도로 이뤄지는 전반적인 이미지, 톤 앤 매너(tone and manner)가 상대적으로 우위에 있을 것이라 예상했지만 딱딱하기 그지없었다.
윤석열 후보는 무례-무지-무경험, ‘3무(無)’였다. 안철수 후보가 몸을 윤 후보 쪽으로 틀어 질문했지만 눈과 몸 모두 정면을 향했다. 의도적인 무시, 무례한 모습이었다. 주택청약 만점(84점), 재생에너지 확대(RE100)와 원전 녹색분류체계(EU택소노미) 등에서 무지를 드러냈다. 무경험은 목 관리에서 고스란히 드러났다. 첫 30초 모두 발언에서 다른 후보들이 발언하는 동안 여러 차례 큰 기침소리를 냈다. 잔기침은 내내 계속됐다. 글이 아닌 소리와 동영상 콘텐츠에서 비주얼만큼 중요한 게 오디오, 목소리다. 대선토론을 앞두고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목 관리다. 무경험에서 비롯됐다.
안철수 후보는 차분했지만 여전히 벌벌 떨었다. 윤석열·이재명 후보를 향해 거침없이 공격을 퍼부을 거라 예상했으나 아직은 창칼을 숨기고 있는 듯했다. 지지율 10% 안팎 3위 후보로서 갖는 첫 TV토론에서 너무 몸을 사리지 않았나 싶다. 더 세게 나가, ‘뽑을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는 중도 유권자들에게 강한 인상을 줬어야 하지 않을까. 2017년 대선에서 “내가 MB(이명박 전 대통령) 아바탑니까”라고 버럭, 스스로 표를 대거 깎아 먹었던 트라우마에서 헤어나지 못한 것처럼 보였다.
심상정 후보는 벌써 세 번째 대선TV토론, 가장 경험 많은 후보로서 여유만만한 모습을 보였다. 심 후보를 보면서 이번 토론회가 흡사 과거 큰 인기를 모았던 개그프로그램 ‘봉숭아학당’과 비슷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심 후보는 봉숭아학당에서 가장 차분했던 선생님 역할, 코미디언 김미화씨를 떠올리게 했다. 버릇없거나 무지하거나 소심한 학생들을 잘 인도하려고 하지만 결국 학생들이 주인공인 그 봉숭아학당 말이다.
지상파 방송3사 합동 초청 토론회는 오는 21일과 25일 두 차례 더 열린다. 또 선거를 일주일 남겨둔 3월 2일 중앙선거방송토론위원회 주관으로 열리는 토론도 방송을 통해 생중계될 예정이다.
앞으로 3회 더 예정된 대선TV토론회는 중앙선거방송토론위원회의 규정대로 이뤄진다. 이 규정 외에 세세한 사항은 방송사와 후보 측이 합의하면 가능하다. 1회와 다르게 앞으로 바꾸면 시청자, 유권자들에게 좋은 몇 가지가 있다.
먼저 자리 배치다. 네 후보는 모두 사회자와 카메라를 향해 서 있다. 토론자가 서로 마주볼 수 없는 자리배치는 전혀 토론스럽지 못하다. 사회자를 포함해 토론자들이 원형 테이블에 둘러앉으면 어떨까. MBC ‘100분토론’의 자리 배치를 참고하면 좋겠다.
또 진행의 묘를 발휘해 사실상의 일대일 토론을 가능케 하는 것도 아이디어다. 양자토론 시간을 넉넉히 주면 되지 않을까 싶다. 이를 위해서는 2시간인 전체 토론시간을 더 늘릴 필요가 있다.
▶양자, PT 등 더 다양한 토론 합의하라
대선후보 토론은 후보들끼리 합의하면 다양한 방식과 포맷으로 이뤄질 수 있다. 이재명-윤석열 후보의 설연휴 양자토론은 공중파였기 때문에 법원에서 불허한 것이지, 후보 간 합의만 하면 어떤 방식으로든 가능하다. 실제로 이재명 후보와 김동연 새로운물결 후보가 CBS 주최 양자토론을 하지 않았나. 후보들이 합의만 하면 누구든 토론회를 주최할 수 있다.
아래 중앙선거방송토론위원회의 규정도 꼭 지킬 필요가 없다.
제9조(참고자료의 사용)
①토론자는 토론회에 A3 용지 규격 이내의 서류·도표·그림·그 밖의 참고자료를 사용할 수 있다. 다만, 휴대전화, 노트북, 태블릿PC 등 전자기기는 사용할 수 없다.<개정 2017.1.23., 2018.1.12.>
②제1항 단서에도 불구하고 토론위원회가 토론회 진행에 필요하다고 결정하여 전자기기를 제공한 경우 토론자는 이를 사용할 수 있다. <개정 2019.12.24>
③제2항에 따라 제공하는 전자기기의 종류, 사용절차 등 필요한 사항은 토론위원회가 정한다. <신설 2019.12.24.>
후보가 합의하면 지상파 같은 '공공재'가 아닌 채널에서 다양한 포맷의 토론이 가능하다. 중앙선거방송토론위원회의 규정에서 벗어나도 별 문제될 게 없다.
이 경우 다른 무엇보다 디지털화된 대선 후보 토론을 보고 싶다. 후보들이 마음껏 자료를 지참하게 하고, 태블릿 PC, 스마트폰 등 디지털 디바이스도 필요한 만큼 가져오게 하는 거다. 후보들에게 대국민브리핑, 프레젠테이션(presentation·PT)을 시켜볼 필요가 있다. PT도 능력이다.
주최하는 기관도 다양화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경제전문 유튜브 채널인 ‘삼프로TV’ 등 유튜버 인플루언서들이 연합해 4자 토론 혹은 이재명-윤석열 후보 양자토론을 주최하는 것도 가능하다. 삼프로TV는 지난해 말 후보 개인별 초청 대담으로 대박을 터트렸다.
중앙선거방송토론위원회가 주최하는 '아날로그적' 토론회는 충분히 가치가 있고, 최대한 지금처럼 보수적인 입장을 유지하는 게 옳다. 여기에 추가해 더 긴, 더 다양한 방식의 대선토론이 필요하다. 후보들의 능력을 검증해야 하는 유권자 입장에서 다다익선(多多益善), 상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