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영 칼럼] 한·중 수교 30주년, 향후 30년을 위해

2022-02-03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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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영 한국외대교수, HK+국가전략사업단


올해는 한·중 양국이 1992년 8월 24일 상호 반목 40년의 역사를 청산하고 정식 국교를 맺은 30주년이다. 당시 한국 정부는 장기적인 한반도 평화통일 환경 조성을 위해 북한을 국제사회의 정상적 일원으로 기능하도록 ‘북방정책’(北方政策)을 추진했고, 북한의 최대 후견국인 중국과의 수교가 통일 한반도의 초석이 되기를 희망했다. 또, 거대 시장 중국과의 경제 교류 확대 역시 한국의 지속 가능한 경제발전의 핵심 사안이었다. 중국 역시 개혁·개방의 적극적 추진을 위해 안정적인 한반도 환경 조성과 한국의 중간 기술력과 자본이 필요했으며, 한국과의 수교가 장기적으로 한·미·일 안보협력 구조의 약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을 기대했다.

한·중 관계는 1992년 수교 당시의 ‘우호 관계’를 거쳐 1998년 ‘협력 동반자관계’, 2003년에는 ‘전면적 협력 동반자관계’로 발전했다. 2008년에는 양자 관계 이외의 다양한 의제도 논의할 수 있는 ‘전략적’ 협력 동반자관계로 격상됐고, 2013년 ‘성숙한’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 2017년 ‘실질적’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에 합의해 수사적으로는 최고의 단계를 구가하고 있다. 그러나 수교 당시의 목표를 반추해보면 한·중 관계는 경제 교류 등은 ‘최대주의’에 의해 괄목할 발전을 했지만, 수교 목표 중의 하나였던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유지는 북핵 문제로 인해 상대적으로 협력이 불투명한 ‘최소주의’적 관계가 유지되는 반쪽짜리 성적표를 남겼다.
한·중 관계는 양자 관계를 넘어서는 다양한 복합 요소를 가지고 있다. 여기에는 역사적 맥락에서 수천 년에 걸친 주도적 지위를 강조하는 중국의 한국에 대한 주종(主從) 관계 의식과 거대 중국의 대외전략 변화 양상, 1954년부터 이어진 한·미 동맹관계와 1992년 이후 형성된 한·중 협력 관계의 차별성 그리고 혈맹과 다름없는 중·북의 특수 관계 및 북핵 인식, 남·북한 관계 등이 얽혀있다. 이는 양국 양자 교류 원칙인 ‘서로 다른 점을 인정하면서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는’ 구동존이(求同存異), 민감한 정치·안보 이슈는 이견(異見)으로 두고 쉬운 것부터 교류를 확대해 어려운 문제에 접근하자는 선이후난(先易後難)적 사고의 범위를 초월한다.

이러한 다층 구조의 대표적 불협화음이 바로 과거 30년 한·중 관계의 최대 전환점인 사드 (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제) 갈등이다. 2016년 7월 이후 양국은 사드의 후유증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중국은 2017년 10월 31일의 양국 사드 합의에도 불구하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사드 문제의 적절한 처리를 원한다’는 주장을 반복하면서 사드의 추가배치와 미사일 방어체제(MD) 편입, 그리고 한·미·일 3국이 군사 동맹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3NO’ 문제에 대한 약속을 지키라며 한국을 압박한다. 한국 정부는 한반도 평화 체제 구축을 위해 북한에 대한 중국의 역할을 기대하면서 대중 저자세 외교라는 비판을 듣는 중이다.

양국 관계의 지나온 30년을 살펴보면 몇 가지 특징이 발견된다.

우선, 한중 관계의 아킬레스건인 북한과 북핵에 대한 인식이 우리와 매우 다르다. 중국에게 북한과 북핵은 별개 문제다. 북한의 존재는 미국 견제와 일본 압박, 중국의 한반도 영향력 유지의 중요한 전략적 자산이며, 관리 가능한 ‘북핵’을 통한 대미 견제가 우선이기 때문이다. 또, 미중 갈등이나 북핵 등 정치⸱외교적 문제가 전방위적으로 확산되면서 민간이나 비(非)정치분야로 갈등이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 동북공정(東北工程)에 이은 6.25 항미원조(抗美援朝) 전쟁 주장과 김치·한복 등에 대한 문화 침탈로 한국의 부정적 대중 인식이 고착화되었다. 경제력의 무기화가 집단 역량 과시로 패턴화된 점도 문제다. 중국도 한국이 중국에 협조하지 않는 나라라는 이미지를 부각시켜 민간의 애국주의를 자극하는 갈등 증폭 조장도 우려된다.

중요한 것은 향후 30년의 한·중 관계다. 양국이 봉착한 최대의 난제는 문제의 발생에 있는 것이 아니라 문제가 생겼을 때 이를 해결할 수 있는 기제가 제대로 역할을 발휘하고 있지 못하다는 점이다. 양자 관계 외에도 이미 말 그대로 뉴노멀이 된 미·중 간 전략경쟁은 국제정치를 규정하는 최대 요인이 되었고 긴장과 이완을 반복하는 대립의 패턴을 형성하고 있다.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 정책과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 간의 갈등을 둘러싸고 한국의 입장이 미묘하며, 이어도 문제 역시 양국 간에 해양경계획정이 매듭지어지기 전까지는 영토 문제화 가능성이 상존한다. 중국 공군기의 한국 방공식별구역 진입 문제와 또 한·미 정상회담에서 언급된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 문제, 한국전쟁 정전협정 당사국으로서 중국이 빠질 수 없다는 종전선언 문제 등도 언제든지 양국 간 불협화음을 생성시킬 수 있다.

이제 양국은 좀 더 겸허해질 필요가 있다. 한국에게 중국은 중요한 국가다. 자유·민주에 바탕을 둔 한국과 작금 중국의 ‘사회주의’ 정체성은 구별돼야 하지만 전략적 모호성(strategic ambiguity)과 전략적 유연성(strategic flexibility)을 혼동해 원칙 없는 친중(親中)·반중(反中) 프레임으로 중국을 재단해서는 안 된다. 어설픈 선택이나 편승보다는 원칙을 천명하고 실행에 있어 사안별로 강약을 조절하는 최소한의 경제적·군사적 ‘능력’으로 유연성을 발휘해야 한다. 중국 역시 독불장군 중국이 아닌 ‘세계 속의 중국’으로 거듭나야 한다. 한국에 대한 일방적이고 막연한 ‘우려’를 자의적으로 전달하기보다는 중국이 그토록 강조하는 ‘건설적 역할’에 대한 실질적 조치 통해 상호 신뢰 구축에 적극적인 행보를 보여야 한다.

양국의 향후 30년이 외화내빈(外華內貧)이 되지 않기 위한 새로운 출발점이 여기에 있다.
 

 




 
 
강준영 필자 주요 이력

▷대만국립정치대 동아연구소 중국 정치경제학 박사 ▷한중사회과학학회 명예회장 ▷HK+국가전략사업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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