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분석] 먹느냐 먹히느냐…역대 후보 단일화 잔혹사

2022-01-10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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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자구도는 필패, 단일화 통한 양자구도는 상수

1987년 직선제 개헌 이후 역대 대선에서 1위 후보에 맞서는 2, 3위 후보의 '3자 구도'는 필패였고, '후보 단일화'는 일종의 상수가 됐다. 이번 대선 역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에 맞서는 윤석열 국민의힘·안철수 국민의당 후보 간 단일화가 유력하다.
 
다만 후보 단일화 과정은 결코 녹록지 않다. 특히 후보 단일화를 통한 승리가 눈앞에 보일 때 더더욱 그렇다. 
 
단일화의 가장 주요한 수단인 여론조사를 둘러싼 양측의 입장은 첨예하게 맞붙을 수밖에 없다. 조사 기관에 따라 유불리가 갈리며, 문구 하나하나에 지지율은 요동친다. 조사 시점, 조사 방법, 조사 대상 등도 각 후보 진영이 촉각을 곤두세울 이슈다.
 

[사진=인터넷]

◆양김 분열과 노태우 승리
 
한국 정치사에서 ‘3자 구도’ 필패의 가장 유명한 사례는 13대 대선에서 민주정의당 노태우 후보(36.64%)가 2위 통일민주당 김영삼 후보(28.03%)와 3위 평화민주당 김대중 후보(27.04%)를 제치고 승리한 것이다.
 
당시 대선은 1987년 6월 항쟁과 그에 따른 6·29 선언으로 이루어진 16년 만에 치러진 대통령 직접 선거로, 시민들의 뜨거운 ‘민주화 열망’에 민주진영의 무난한 승리가 전망됐었다.
 
그러나 민주진영의 두 거목 양김(김영삼, 김대중)이 후보 단일화에 끝내 실패하고, 선거를 약 2주 앞둔 1987년 11월 29일 북한에 의한 대한항공 858편 폭파 사건(KAL기 폭파 사건)이 발생하면서 보수진영이 집결, 노태우 후보의 ‘어부지리’ 승리가 현실화됐다.
 
다만 정치권 일각에선 만에 하나 당시 야권 후보 단일화가 성공했더라도, 전두환 군부세력의 친위쿠데타 위험이 있었다면서 ‘보통사람’ 노태우 후보의 승리가 결과적으로 ‘민주주의 연착륙’에 바람직했다는 의견도 있다.
 
◆DJT 연합과 이회창·이인제 분열
 
1997년 15대 대선은 새정치국민회의 김대중 후보(40.27%)가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38.74%)와 국민신당 이인제 후보(19.20%)에게 승리했다.
 
당시 김대중(DJ) 대통령의 승리는 김종필(JP) 자유민주연합 총재와 민주정의당 대표최고위원을 역임한 박태준(TJ) 전 포철 회장과 손을 잡은 것이 결정적이었다. 호남을 대표하는 DJ는 JP의 충청표를 얻고, TJ를 통해 보수세력의 반감을 누그러뜨릴 수 있었다.
 
반면 신한국당에서는 이회창 후보가 됐지만, 이 후보 아들의 ‘병역비리 의혹’이 커지면서 이 후보의 지지율은 10%대로 급락한다. 이에 경선에서 2위를 차지한 이인제 후보를 중심으로 후보교체론이 대두됐지만 바뀌지 않았고, 이인제 후보는 신한국당을 탈당하고 국민신당을 창당해 출마에 나섰다.
 
결국 DJ는 DJT 연합으로 자신이 확보할 수 있는 표를 모두 긁어모았고, 이회창 후보는 이인제 독자출마로 인한 보수진영 분열로 패배의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1, 2위의 차이는 불과 39만여표(1.6%차)에 불과했다. 당시 IMF 사태로 신한국당 책임론이 큰 상황에서 나온 결과로, 한국 정치권의 보수우위 구조가 재확인된 사례다.
 
◆노무현-정몽준 단일화, 이회창의 패배
 
2002년 16대 대선에서는 새천년민주당 노무현 후보가 48.91%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46.58%)를 제쳤다. 당시 ‘이회창 대세론’이 지배적이었지만, 민주당 경선 전 2% 지지율에 불과했던 노무현 후보가 기적과 같은 막판 역전에 성공했다.
 
당시 대선 구도는 1강 이회창, 2중 정몽준·노무현 후보였다. 그러나 2002 한·일 월드컵의 성공으로 국민통합 21 정몽준 후보의 기세가 무서웠고, 6·13 지방선거 참패로 노 후보는 흔들렸다. 민주당 내부에서 정 후보로 교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소위 ‘후보 단일화 협의회’(후단협)의 출현이다.
 
후단협의 요구로 노무현 후보는 단일화를 수용했고, 여론조사를 통해 노무현 후보로 단일화에 성공했다. 선거 전날 ‘명동유세’를 문제삼아 정 후보가 지지를 철회했지만, 그 과정에서 노 후보 지지층이 결집해 승리할 수 있었다.
 
◆18~20대 대선을 관통하는 안철수 변수
 
2012년 18대 대선부터 2022년 20대 대선까지 ‘후보단일화’ 이슈는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가 중심에 서 있다. 그의 선택에 따라 오는 3월 9일 대선 역시 크게 좌우될 것으로 보인다.
 
18대 대선은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가 51.55%를 확보해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48.02%)에 앞섰다. 두 후보의 지지율을 합치면 99.57%로 제3지대가 허용되지 않은 보수와 진보의 ‘진검승부’였다.
 
당시 대선 과정에서 박근혜, 문재인과 함께 국민의 주목을 받았던 이가 안철수 후보였다. ‘새정치’를 들고나온 그는 소위 ‘안철수 현상’이라는 신드롬을 불러일으켰고, 일부 여론조사에서 ‘박근혜를 꺾을 수 있는 야권 후보’로 주목받기도 했다.
 
다만 그는 문재인 후보와의 야권후보 단일화 과정에서 중도사퇴하고 문 후보 지지를 선언했다. 정치에 만약(if)은 없다고 하지만, 당시 안 후보가 중도사퇴가 아닌 후보단일화에 끝까지 임하고 선거운동에 적극 나섰다면 승부는 알 수 없었다는 주장도 있다.
 
‘박근혜 탄핵사태’로 조기 실시된 19대 대선은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41.08%),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24.03%),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21.41%)로 문재인 대통령이 승리했다.
 
‘현직 대통령 탄핵’이라는 헌정사 초유의 사태를 배경으로 치러지는 대선이었기에 야당 대표였던 ‘문재인 대세론’은 막강했지만, 안철수 후보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오차범위 내로 따라붙으며 문 후보를 위협했다.
 
그렇지만 안 후보는 ‘MB아바타’ 등 토론에서 자폭하며 중도층 지지율이 크게 떨어졌고, 지리멸렬하던 보수진영을 홍준표 후보가 잘 추스르면서 보수진영의 지지율도 끌어내지 못했다. 안 후보와 홍 후보가 ‘반문텐트’ 결집에 성공했다면 대선 결과도 달라졌을 것이라는 주장이 나온다.  
 
오는 3월 9일 예정된 20대 대선 역시 ‘안철수 변수’가 살아있다. 최근 제1야당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가 ‘본부장(본인, 부인, 장모)’ 리스크와 당 내홍 사태 등으로 지지율이 30% 초반으로 급락한 가운데, 안 후보는 그 반사효과를 얻어 15%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30% 후반에서 40% 초반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지만, 지난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가 확보한 41% 득표율을 감안하면, 민주당 진영이 단독으로 얻을 수 있는 최대치인 것 아니냐는 분석도 있다.
 
결국 산술적으로 따지면 윤 후보와 안 후보가 후보단일화에 성공할 경우, 50%를 넘나드는 정권교체 여론을 바탕으로 충분히 승리할 수 있는 셈이다. 국민의힘과 국민의당은 지난해 지방선거 재보궐 서울시장 선거에서 합당 직전까지 갔다. 대선이 60일도 안 남았지만 양당의 합당 혹은 후보단일화에 관심이 모이는 이유다.   
 

국민의당 안철수 대선후보가 9일 청주시 성안길에서 열린 '국민 곁으로 안철수의 talk박스 - 청주 성안길편'에서 시민들과 인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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