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철의 100투더퓨처] 지난 세모에 학계의 H교수 모친상 부고가 떴다. 연이어 새해 원단에 대학의 C교수 모친상 부고가 왔다. 연말연시 그리고 코로나 사태하에서 가까이 지내던 동료교수들이 장례 모시기도 쉽지 않으려니와 한파마저 몰려와 안타까운 마음으로 문상을 갔다. 고인에 대해 들어보니 돌아가신 분들의 연세가 100세, 101세로 백세를 넘게 사셨으며 건강하게 지내시다가 두분 모두 단 며칠 사이에 갑자기 돌아가셨다고 하였다. 전형적인 호상이라 상주들에게 위로를 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 백세시대의 도래를 준비하여야 한다고 주장해온 나에게 가까운 지인의 가족이 백살 넘어 돌아가셨다는 사실은 더욱 실감나는 일이었다. 영국의 저명한 학자가 2030년이 되면 대한민국이 세계 최장수국이 될 것이라는 연구결과를 발표하였다. 여성의 평균수명이 인류 최초로 평균수명 90세를 돌파하여 91세에 이른다는 보고였다. 평균수명이란 모든 연령층의 사망자들을 합산한 것이기 때문에 실제로 사람들이 가장 많이 사망하는 연령인 최빈사망연령(最頻死亡年齡)은 보통 평균수명보다 열살 정도 더 높다. 따라서 평균연령 90세 시대의 최빈사망연령은 바로 100세가 될 수밖에 없다. 이제 누구나 모두 100세에 이르는 진정한 백세시대가 열리고 있다는 사실이 명백해지고 있다. 그러나 백세시대가 된다고 해서 마냥 기쁠 수만은 없다. 초고령이 되면 으레 건강이 부실해지고 활동력이 저하되리라고 예상하고 있기 때문에 단순한 수명연장만으로는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유지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백살이 되어도 건강하고 온전한 삶을 영위할 수 있을까? 그리고 백세인의 양적 증가와 더불어 질적 개선도 이루어지고 있을까? 이러한 질문에 답하기 위하여 우리나라 백세인들의 건강과 삶의 변화를 추적해 보고자 하였다. 우선 20년 전 우리나라 대표장수지역으로 지정한 구례군, 곡성군, 순창군, 담양군으로 구성된 구곡순담 장수벨트지역의 백세인을 대상으로 2001년과 2018년에 조사한 결과를 비교해보았다(한국의 백세인 이십년의 변화. 전남대학교 노화과학연구소. 2021). 우선 1차백세인(2001년도)과 2차백세인(2018년)의 한글독해력은 13%에서 49%로 개선되었으며, 생활수준 자기만족도는 중상 이상이 33%에서 50%로 증가하였다. 현재 흡연 여부는 13%에서 3%로, 현재 음주 여부는 16%에서 2%로 격감하였다. 특히 남성백세인의 생활습관 개선이 현저하게 이루어져서 백세인의 남녀비도 1: 8에서 1: 5로 그 차이가 감소하였다. 백세인의 주관적 건강상태는 60% 이상이 좋음의 상태를 유지하였으며, 인지능력은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일상생활능력은 독거 또는 재가 백세인의 경우는 크게 향상되어 있었다. 백세인의 일상 활동 범주가 방안이나 집안에 갇혀있지 않고 집 밖으로 활동이 확대된 경우가 36%에서 45%로 늘었다. 거주 환경은 가족 동거비율이 약 90%에서 50%로, 독거가 6%에서 25%로 변하여 가족동거 비율이 줄어들고 독거비율이 증가하였으며 20% 정도는 요양기관에 거주하게 되었다. 가족동거의 경우 큰아들과 며느리가 모시는 경우가 70%에서 30%로 줄어들고 장자가 아닌 다른 자식들이 부양하는 비율이 크게 증가하였다. 요약해보면 백세인의 이동성과 활동성이 증가하였고 거주환경은 가족동거, 독거, 요양원의 다양한 형태로 발전하였으며 장기요양보호와 건강보험과 같은 공적 지원체계의 강화로 삶의 안전성과 편리성이 크게 증대되었으며 노인 또는 장수수당과 복지서비스 등의 혜택으로 생활이 보다 윤택해졌다. 특히 1차 백세인의 경우 상당수가 한국전쟁의 상처가 남아 평생 한(恨)을 품고 있었지만 2차 백세인에게는 이러한 한이 없었다. 무엇보다도 큰 변화는 백세인에 대한 부양 책임 소재가 크게 달라졌다. 노인 스스로 어디에서 생활할 것인가 선택하게 되었고, 자녀의 노인부양도 과거 장자의 의무에서 벗어나 자녀들 간의 자발성과 공평성 기반으로 바뀌고 있다. 또한 사회적 지원체계에 의한 공적 서비스의 확대는 시설 요양도 수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을 뿐 아니라 백세인의 독거생활도 가능하게 하고 있다. 이러한 결과는 장수인에게 독립 생활을 가능하게 해주고 자신의 삶을 선택할 수 있게 해주었다는 점에서 주목하고 있다.
백세시대를 맞이하면서 가장 조바심을 가졌던 질문은 오키나와 백세인 연구자 스즈키 마고토 박사가 “백세인이 보석(寶石)에서 화석(化石)으로 변했다”라고 언급한 경구(警句)였다. 그가 70년대 중반에 만난 오키나와 백세인들은 대부분 건강하고 활동적이었는데 2000년대가 되어서는 백세인의 전체적인 숫자는 크게 증가하였지만 그중 50% 이상이 요양원에 칩거하고 있음을 한탄하면서 던진 말이었다. 백세인의 양적 증가와 질적 증가가 병행하기 어렵다는 장수의 패러독스를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구곡순담 장수지역 백세인의 20년 동안의 변화를 정리하면서 우리나라의 백세인들은 “보석에서 다이아몬드(金剛石)로”의 변화를 이루었다고 표현할 수 있어서 마음이 가벼워졌다. 전반적으로 초고령사회에 대한 대응방안이 원만하게 추진되고 있으며 적어도 우리나라의 경우는 명실상부한 건강장수의 세상으로 진입할 수 있을 것 같아 다행으로 생각하였다. 장수의 충분조건은 건강이어야 하고 필요조건은 행복이어야만 그 의미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개인적 준비와 가족, 지역사회, 국가의 역할분담이 미래사회에 맞게 계속 변화하면서 초고령노인이 오랫동안 당당하고 독립적으로 생활할 수 있는 바람직한 방향으로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질 것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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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철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노화고령사회연구소장 ▷국제백신연구소한국후원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