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병식 칼럼] 이재명에게 필요한 포용과 화합의 리더십

2022-01-03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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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식 위원]


뉴욕 월스트리트와 브로드웨이가 만나는 지점에 트리니티 교회가 있다. 1697년 문을 연 트리니티는 뉴욕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이자 알렉산더 해밀턴이 잠들어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수년 전 이곳에 들러 해밀턴이 10달러짜리 지폐 속 인물임을 알게 됐다. 당시는 그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했지만 해밀턴은 미국인들에게 존경받는 인물이다. 그는 초대 재무장관을 지냈고 미국 금융과 경제제도 초석을 놓았다. 오늘날 미국 자본주의를 설계한 인물이다. 해밀턴의 위상은 달러 지폐 7종류 가운데 벤저민 프랭클린(100달러)과 함께 유일하게 대통령을 지내지 않은 인물이라는 데서도 알 수 있다. 그만큼 미국인들은 각별하게 아낀다.

230여 년 전 인물, 해밀턴이 바이든 대통령 취임 당시 재소환됐다. 바이든은 취임 직후 집무실에 3대 대통령 제퍼슨과 해밀턴 초상화를 나란히 걸었다. 제퍼슨과 해밀턴은 건국 초기 중앙은행(BoA) 설립을 둘러싸고 격렬하게 맞붙었다. 연방주의자 해밀턴은 강력한 정부를 앞세우며 중앙은행 설립을 주장했다. 독립전쟁 직후 재정난에 처한 연방정부 적자를 덜어주기 위한 방안으로 중앙은행 필요성을 강조했다. 반면 반(反)연방주의자였던 제퍼슨은 연방정부와 중앙은행이 군주제로 가는 징검다리가 아닌지 의심했다. 조지 워싱턴 대통령과 의회는 해밀턴을 초대 재무장관에 임명함으로써 해밀턴의 구상에 힘을 실어주었다.
증권거래소를 비롯해 세계 금융시장 심장인 월스트리트에 해밀턴 묘가 있는 건 이 같은 연유에서다. 바이든 대통령이 제퍼슨과 해밀턴 초상화를 나란히 걸어 놓은 건 국민 통합 의지를 천명한 것으로 보인다. 바이든은 선거 캠페인 기간은 물론 취임사에서도 국민 통합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연방주의자 해밀턴과 반연방주의자 제퍼슨은 정치적으론 앙숙이었다. 그럼에도 둘은 갈등을 극복하고 영국에서 독립해 안정적으로 나라를 세우는 데 일익을 담당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대척점에 있던 두 인물을 재소환한 건 서로 다른 정치적 견해를 배척하지 않고 조율함으로써 트럼프 시대 갈등을 극복하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해밀턴은 뮤지컬로도 제작돼 최고 인기를 누리고 있다. 2015년 초연 이후 7년째 브로드웨이를 장악하며 21세기 브로드웨이 역사상 가장 흥행한 뮤지컬 반열에 올랐다. 오바마는 재임 당시 출연진 전원을 백악관으로 초청해 해밀턴 야외 공연을 하기도 했다. 그는 퇴임 후에도 두 차례나 브로드웨이 극장을 찾았다. 오바마는 언젠가 자신의 정치철학 일부는 알렉산더 해밀턴에게서 이어받은 타협과 양보였음을 밝히기도 했다. 해밀턴은 도대체 어떤 인물일까. 어떤 정치인이기에 두 세기를 건너뛰어 미국인들에게 영감을 주는 것일까. 출생과 불우한 어린 시절, 독학생, 건국 주역, 죽음까지 해밀턴은 드라마와 같은 삶을 살았다.

그는 미국이 아닌 영국령 외딴 섬에서 사생아로 태어났다. 13세에는 어머니마저 잃고 어려운 시기를 보냈다. 지역 유지들은 영특한 그를 뉴욕으로 유학을 보냈다. 그는 훗날 초대 대통령이 된 워싱턴과 독립전쟁에서 상관과 부관으로 인연을 맺는다. 해밀턴은 비주류였지만 인내와 노력, 담대함을 바탕으로 숱한 난관을 이겨냈다. 워싱턴의 오른팔이 되어 주변과 불화하면서도 미국 자본주의 틀을 다졌다. 정적들의 견제가 끊이지 않았고 섹스 스캔들에도 휘말렸다. 끝내 정적과 결투에서 49세에 숨졌다. 전형적인 흙수저 삶이다. 그럼에도 국가와 공동체를 위한 희생과 타협, 양보를 내건 그의 정치는 지금까지 빛을 발한다.

알렉산더 해밀턴을 길게 인용한 이유가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해밀턴과 여러 면에서 겹쳐 보인다. 이재명 또한 어린 시절은 불우했다. 가난한 화전민 집에서 태어나 제때 정규 학교에 진학하지 못했다. 13세에는 소년공이 되어 쇳가루를 마셔가며 일했다. 다행히 공부는 잘해 고등학교 과정을 검정고시로 마치고 대학에 진학했으며 사법고시에도 합격했다. 돌아보면 변호사, 성남시장, 경기도지사 그리고 유력 대권 후보까지 순탄치 않은 삶이었다. 정치에 입문해서도 비주류로 맴돌았고 지금도 인터넷 연관 검색어로 ‘스캔들’과 ‘패륜’이 가장 먼저 올라온다. 흙수저에다 비주류까지 서사는 해밀턴을 빼닮았다.

새해 맞이 여론조사에서 이재명은 1위로 올라섰다. 방송 3사 여론조사 결과 그는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에 비해 8.5%포인트에서 12%포인트까지 오차범위 밖에서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기조가 계속될 경우 이재명은 20대 대선 고지에 오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이재명을 지지했든, 지지하지 않았든 국민들은 그를 대한민국 대통령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이쯤 해서 이재명에게 필요한 덕목은 무엇일까 생각해본다. 해밀턴은 마이너리티로서 주변과 불화했지만 공동체를 위한 희생과 타협, 양보를 실행에 옮겼다. 이재명에게도 국민 통합이란 과제가 주어졌다. 다음 대통령은 보복과 증오 대신 포용과 화합을 이뤄야 한다.

링컨은 포용과 화합을 행동으로 보였다. 그는 대통령 취임 이후 주변 반대를 무릅쓰고 정적들을 주요 자리에 앉혔다. 윌리엄 수어드와 윌리엄 스탠턴이 대표적이다. 1860년 공화당 대선에서 수어드는 가장 강력한 상대였다. 링컨은 자신을 켄터키 촌뜨기라고 조롱했던 수어드를 국무장관으로 발탁했다. 수어드는 러시아에서 알래스카를 720만 달러(당시 70억원)에 매입함으로써 믿음에 답했다. 또 링컨은 앙숙 스탠턴을 기용했는데, 그는 남북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역시 기대에 부응했다. 스탠턴은 1865년 링컨이 저격당한 그날 곁에서 지켰다. 그는 “시대는 변하고 세상은 바뀌지만 링컨의 이름은 오래도록 역사에 남을 것"이라며 눈물 흘렸다.

미국 대통령 44명 가운데 생일을 기념일로 정한 건 링컨이 유일하다. 미국인들은 링컨이 남긴 위대한 정치적 유산을 기렸다.<인문 여행자, 도시를 걷다, 113p> 해밀턴이 비주류라는 한계를 극복하고 타협과 양보의 정치를 펼쳤듯, 링컨이 정치적 앙숙을 품었듯 이재명에게도 타협과 양보, 포용과 관용은 필요한 가치다. 그가 국민 통합을 내건다면 존경받는 지도자로 평가받을 것이다. 해밀턴은 “우리가 원하는 건 독재가 아니라 정의롭고 절제된 연방정부”라는 말을 남겼다. 이를 우리 형편에 맞춰 각색하자면 “우리가 원하는 건 독단과 배제가 아니라 타협과 포용하는 정부”로 바꿀 수 있다. 반향실 밖에서 국가와 국민을 생각해야 한다. 

 
임병식 필자 주요 이력

▷국회의장실 부대변인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위원 ▷한양대학교 갈등연구소 전문위원 ▷서울시립대학 초빙교수 ▷전북대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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