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네덜란드 로테르담항에서 화물을 선적하는 HMM 그단스크호. [사진=HMM]
무차별적인 공정위의 과징금에 업계의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 기간산업인 해운업을 비롯해 대기업의 기업결합 과정에서도 상위법과 부딪히며 갈등을 키우는 모양새다. 업계에서는 현장의 특성을 모르는 탁상행정이라고 주장했다.
지난 2018년 한국목재합판유통협회의 신고를 받고 조사에 착수한 해운업계 동남아 항로 운임 담합 의혹의 결과가 종착역을 향하고 있다. 공정위는 이 건에 대해 내년 1월 12일 전원회의를 열고 결론을 내릴 예정이다.
공정위는 직전 15년간(2003~2018년) 동남아 항로에서 이뤄진 운임 공동행위를 전수조사하며 심사 결론을 담합으로 내렸다. 조사 대상은 국내 최대 해운사인 HMM을 비롯해 고려해운, SM상선, 장금상선, 팬오션 등 국적선사 12곳과 머스크, 에버그린, 완하이, 양밍 등 외국 선사 11곳 등 총 23곳이다. 이들 23개 선사가 15년 동안 563차례 카르텔 회의를 열고 122건의 운임 협의 신고를 누락하는 등 의도적 담합을 했다는 게 공정위의 판단 근거다.
반면 해수부는 지난 7월 122건의 세부 협의에 관해 신고할 필요가 없었다는 유권해석을 내렸다. 해운업계의 특수성을 감안해 불법이 아니라는 것이다. 엄기두 해양수산부 차관은 올해 9월 28일 열린 농해수위 법안소위에서 "해운시장은 절대적으로 화주 우위의 시장이기 때문에 공동행위가 법에서 인정돼 왔다"며 해운시장의 특수성을 설명했다. 공정위 조사 기간 내 누적된 선사의 적자만 2조원에 달한다.
김영무 한국해운협회 부회장도 지난달 3일 기자간담회를 통해 "해운법 29조에서 공동행위를 허용하고 있다. 또한 유럽연합(EU)을 제외한 전 세계 각국은 그 나라 상황에 맞춰 공동행위를 허용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과징금이 부과되면 공동행위가 막혀 외국 초대형 선사와 경쟁에 몰리게 되고 그렇게 되면 우리나라 중소형 선사들이 고사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공정위는 15년간 한국~동남아 항로에서 발생한 매출의 8.5~10%를 이번 사건의 과징금으로 매겼다. 비율을 적용해서 산출해보면 과징금은 약 8000억원에 달한다. 이는 법으로 허용하는 선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과징금이다. 다만 관가에서는 이보다 과징금이 조금 줄어들 수 있다는 추측도 나온다. 업계의 관행과 감당 가능한 해운사들의 재무구조 등도 참조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국회도 해운법 일부개정안을 발의하는 등 공정위의 태도 변화를 유도하고 있다.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게 되면 공정위가 문제 삼은 담합행위에 대한 과징금을 부과할 수 없다.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은 해운법 일부 개정안과 관련해 협상의 여지를 남기면서도 현재 원칙주의적 태도를 보인다. 조 위원장은 지난 10월 국정감사에서 "위법성이 인정되면 피심 기업의 재무 상태, 이익을 본 정도, 산업 특성 등을 종합 고려해 과징금 부과를 결정한다"고 밝힌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