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준석, 과학의 시선] 16년 독일 부흥의 역사를 쓴 '과학자' 메르켈 총리

2021-12-24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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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겔라 메르켈이 지난 9월 16일 뮌헨 인근 가칭에 있는 막스플랑크 양자광하견구소를 찾아, 장비를 보고 있다./사진 막스플랑크연구소]



독일 총리였던 앙겔라 메르켈은 과학자 출신 정치인이다. 그는 정치 영역에서 큰 성공을 거뒀고, 그 성공의 비결이 무엇인가를 사람들은 찾았다. 그리고 메르켈이 훈련된 과학자라는 것과, 과학자이기에 갖고 있을 과학적 사고가 그 이유인가를 추적해보곤 했다.
메르켈이 과학자 출신이라는 정도로만 나도 알고 있었다. 헌데 자료를 찾아보니, 그는 시시껄렁한 과학자가 아니었다. 그는 물리화학자이고, 미국 화학회지(JACS)에 논문을 낸 사람이었다. 미국화학회가 발행하는 JACS(‘잭스’라고 읽는다)는 최상위 화학 학술지다. 독일 화학회가 발행하는 앙게반테 케미(Angewandte Chemie)와 양대 봉우리이다. JACS와 앙게반테 케미는 화학자에게는 ‘네이처’요, ‘사이언스’다. 젊은 화학자가 JACS에 논문을 출판했다면 서울대, 카이스트와 같은 1급 대학에 취업할 수도 있다.
내가 찾아 본 메르켈 논문이 JACS에 나온 건 1988년이다. 메르켈은 이론 연구자이고, 연구 분야는 양자 화학이라고 알려져 있다. 논문 제목을 봐서는 무슨 연구인지 알기 어렵다. 부정확함을 감수하고 한글로 옮겨보면 ‘기체 상(相)에서 CH₃F + H⁻ → CH₄ + F⁻ SN2 반응 속도 상수 구하기’ 쯤 된다. 논문 발표 시기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 바로 전해다. 베를린 장벽은 1989년 11월에 무너졌다. 
앙겔라 메르켈은 ‘소수자’ 출신 정치인이다. 그것도 하나가 아니라 여성, 동독, 과학자란 삼중 핸드캡을 갖고 있다. 독일은 여왕이 즉위해본 적이 없다고 한다. 동독 출신이라고 하면 또 약점이 될 수 있다. 예컨대 통일된 한반도에서 북한 출신 정치인이 국가 리더가 되겠다고 나서면, 남한 유권자로부터 지지를 받을 수 있을까를 생각해 보면 된다. 그가 국가 리더가 되기는 쉽지 않다고 본다. 그런데 메르켈은 하원의원이 되고 15년 만에 동독 출신으로 중앙정부의 권력을 잡았다.
이와 관련한 유력한 설명은 핸디캡이 장점으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미국 언론인이 쓴 책 ‘메르켈 리더십’(2021년)에 따르면, 메르켈은 ‘동독 출신’이고 ‘여성’이라서 혜택을 받았다. 통일 된 후에 당시 헬무트 콜 총리는 내각에 ‘여성’과 ‘동독 출신’이라는 두 그룹을 대표하는 사람을 찾았고, 이때 콜의 눈에 띈 게 메르켈이었다. 이와 관련 메르켈은 ”내가 동일한 능력을 갖고 서독에서 자랐다면 이런 일은 내게 일어나지 않았을 겁니다“라고 말한 바 있다.
그렇다고 그가 동독 태생인 건 아니다. 서독 함부르크에서 1954년에 태어났다. 루터교회 목사인 아버지를 따라 간난 아이일 때 메르켈은 동독으로 이사 갔고, 이후 동서독 장벽이 생기면서 메르켈 가족은 서독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서독 태생이나, 정서적 뿌리는 동독이라는 독특한 배경을 갖고 있다.
메르켈은 동독의 라이프치히 소재 칼 마르크스 대학교(현 라이프치히 대학)에 진학, 물리학을 공부했다. 그리고 1978년 대학 졸업한 후에는 수도인 동 베를린으로 갔다. 과학원 산하의 중앙 물리화학연구소에서 물리화학을 공부했고, 1986년 박사학위를 받았다.
메르켈은 두 번째 남편 요아힘 자우어(Joachim Sauer)를 중앙 물리화학 연구소에서 만났다.(첫 남편과는 결혼한 지 5년만인 1982년에 이혼했다) 자우어도 메르켈과 마찬가지로 양자 화학 연구자다. 동서독 통일 이후 독일 정부는 동독 출신 연구자의 연구 능력을 검증했다. 많은 사람은 기준을 통과하지 못해 일자리를 읽었으나, 요아힘 자우어는 연구 실적을 인정받아, 베를린의 최고 명문대학인 훔볼트 대학 교수로 일하게 되었다.
메르켈은 이때 화학자로의 길이 아니라 정치를 선택했다. JACS에 논문이 나오고 2년 후인 1990년 독일 연방 하원의원이 되었고, 1994년에는 헬무트 콜에 의해 환경 장관에 임명됐다. 그리고 2005년 연방정부의 총리가 되었다.
특히 ‘동독 출신’이라는 점은 러시아와의 외교에서 메르켈의 존재를 돋보이게 했다. 블라디미르 푸틴이라는, 서구와는 다른 배경을 가진 상대와 협상할 때 유리하게 작용했다. 메르켈은 동독에서 성장했기에 영어가 아니라, 러시아어를 익혔다. 어려서는 러시아어 경진 대회에 나가 좋은 성적을 거둬, 모스크바로 포상 여행을 간 적도 있다. 그러기에 그는 러시아 문화와 사람을 잘 이해하고 있다. 푸틴을 만나면 러시아어로 얘기할 수 있다.
메르켈과 푸틴은 동독이라는 공간에서 같은 시기에 머문 공통점을 갖고 있다. 푸틴은 러시아 정보기관(KGB) 간부로 드레스덴에서 일했다. 동독이 붕괴될 때 그는 드레스덴 KGB 지부장으로 있었다. 푸틴의 독일어는 완벽하다고 전해진다. 독일 국방장관으로 일한 K. T. 폰 구텐베르크는 “그들은 서로를 완벽하게 이해한다”라고 말한다. 메르켈의 러시아어 실력은 예전 같지 않고 푸틴의 독일어는 여전히 유창하기에, 시간이 갈수록 두 사람은 독일어로 얘기를 나눴다는 말이 있다.
메르켈이 푸틴이 사고를 칠 때마다 “내가 그를 조금 구워 삶겠다”는 말을 측근들에게 했다. 서방과 러시아가 대결 국면으로 갈 때 서방을 대표해 푸틴과 대화한 건 언제나 메르켈이었다. 버락 오바마는 푸틴의 뻔뻔한 거짓말에 질려서, 푸틴과 얘기하길 마다했기 때문이다. 푸틴이 2014년 우크라이나를 침략해 크림 반도를 불법으로 합병했을 때도 메르켈이 나섰다. 푸틴의 정적인 알렉세이 나발니가 2020년 독살될 뻔한 사건이 일어났을 때도 푸틴을 설득해서 그를 독일로 보내 치료받을 수 있도록 한 것은 메르켈이었다.
과학자 메르켈이 정치인 메르켈에 어떻게 투영됐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메르켈의 정치적 상상력과, 행동, 결정 과정에 과학적인 백그라운드가 바탕을 이룬 건 분명하다. 메르켈은 “나는 과학자입니다”라는 말을 측근에게 이따금씩 했다. “과학자는 문제들을 가장 작은, 가장 잘 관리할 수 있는 부분들로 쪼개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 과정에 감정이 끼어 들 여지는 없어요. 중요한 것은 해법을 찾아내는 것입니다.” 세상사도 그렇지만, 자연 현상도 기술하기에 간단하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럴 때 과학자가 쓰는 방법은 단순한 모델 찾기이다. 현상을 단순화해 놓고 본다. 그러면 현상을 이해할 수 있다. 과학자는 “문제를 가장 작은 부분까지 해체하도록 훈련된 사람”이라는 말이 있는 게 그 때문이다.
메르켈의 1990년 정치 입문을 도왔던 옛 동독 총리 로타어 드 메지에르가 메르켈에 대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메르켈은 형용사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상황을 과장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전달한다. 게다가 그는 동료에 비해 두 배나 많은 정보를 제공했다.” 언론을 상대로 과학적인 느낌을 풍기는, 정밀하면서도 이해하기 쉬운 문장을 구사한다는 칭찬의 말이다.
과학자로 훈련받았기에 메르켈은 데이터에 근거해 사고하고, 따진다. 과학자 메르켈이 빛났던 대목이 두 개 있다. 기후 변화와 코로나 19 대유행 대처 관련이다. 이때 과학적인 사고의 소유자 메르켈에 대비된 건 미국의 당시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였다. 트럼프는 비과학적인 사고의 전형이다. 그는 “기후변화는 사기”라는 트윗을 날리는 등 근거 없는 주장을 하더니, 2019년  파리 기후 변화협정에서 미국이 탈퇴하는 결정을 내렸다. 코로나 19 바이러스 관련해서도 트럼프의 악명은 높았다. 트럼프는 “나는 코로나에 걸리지 않는다”라며 마스크를 쓰고 다니지 않았고, 마스크를 쓰고 유세하는 조 바이든 당시 민주당 대통령 후보를 조롱하기도 했다.
메르켈은 언젠가 이런 말을 했다. “나는 좋은 물리학자였다. 그러나 노벨상을 수상하게 될 정도로 걸출한 과학자는 아니었다.” 그가 과학자의 길을 갔으면 어떤 성과를 냈을지 모른다. 하지만 세계는 과학자로 훈련받은 정치인이 있었기에 혜택을 보았다. 그는 합리적이고 실용적인 접근으로 문제를 풀었다. 노벨상을 받을 연구도 중요하나, 과학자로 훈련받은 사람은 정치의 영역에서도 중요했다.


최준석 필자 주요 이력

▷연세대 신문방송학과 ▷조선일보 정치부 차장 ▷뉴델리 특파원 ▷카이로특파원 ▷주간조선 편집장



과학엔 무관심한 리더 우리 대통령 

앙겔라 메르켈 독일 전 총리는 과학자들을 가까이 했다. 과학학술지 네이처에 따르면, 그는 몇 달 마다 과학자들을 불러 비공식적인 모임을 가졌다. 이 모임은 ‘멋진 저녁 파티’(soiree)였고, ‘혁신 대화’(innovation talk)라고도 불리었다. 모임에 초청받은 과학자와 연구 기관의 관리자들은 발표 주제와 관련해 준비를 잘 해오라는 얘기를 들었다. 메르켈은 물리화학자이기에, 과학자처럼 얘기하고 과학자처럼 따져 묻기 때문이다.

메르켈은 호기심과 새로운 것에 대한 열정으로 인해 다른 분야의 과학자들을 돌아가며 만났다. 수소 기술, 양자 컴퓨팅, 인공지능이 ‘혁신 대화’의 테이블에 오른 주제 중 일부다. 그렇게 해서 나온 결과 중의 하나가 양자컴퓨팅과 관련 기술 프로그램에 대한 20억 달러 규모 투자라고 한다.

독일 과학은 메르켈 집권기에 대단히 국제적인 위상을 끌어올렸다. “독일 연구자들에게 독일 과학의 기반이 꽃피고 있는 이유를 물어보라, 그러면 그들은 앙겔라 메르켈 총리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여성은 동독 출신 물리학자로서 그의 뿌리를 잊지 않았다라고 그들은 말한다.”(네이처 2017년 9월 7일자 글 ‘독일의 과학적 우수함의 비밀’)

독일 과학의 높은 존재감 한 가운데는 막스플랑크연구소가 있다. 독일 전국에 고루 들어선  86개의 막스플랑크 연구소 중 압도적인 다수가 자연과학 분야 연구소다. 한국은 막스플랑크연구소를 참고로 해서, 그리고 일본의 이화학연구소를 모델로 해서 기초과학연구원(IBS)를 만든 바 있다. 기초과학연구원이 지난 11월 19일 문을 연지 10주년을 맞았다. IBS는 한국의 기초과학 수준을 끌어올린 중요한 기여를 하고 있음에도 이날 행사에 문재인 대통령의 참석을 기대할 수 없었다. 문 대통령은 IBS와 거리를 둬왔고, 또 과학에 무관심한 리더이기 때문이다. 내가 만난 과학자들은 변호사 출신 문 대통령은 과학자를 만나 격려하거나 하는 데 별 관심이 없다고들 말했다. 실제 그런지 모르겠으나, 과학자들은 그렇게 느끼고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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