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정근 칼럼] 국가부채 문제없다? 진실은요

2021-12-19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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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정근 자유시장연구원장]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는 지난 6일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전국민 선대위’ 회의 모두 발언에서 “국가 부채비율을 50%도 안 되게 낮게 유지하는 지출로 국민이 어떻게 살겠나”라고 정부를 정조준하며 이로 인해 가계부채가 증가하고 있다고 비판하면서 정부의 보다 파격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GDP 대비 국가부채비율 국제비교 (2021년 1분기 기준)’ 라는 그래프 판을 들고 나와서 ‘이거 숫자 낮다고 칭찬받지 않습니다. 아무 문제 없어요’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그래프판에는 일본 237.0 이탈리아 179.4 스페인 141.7 프랑스 133.7 영국 132.0 미국 127.7 캐나다 110.7 독일 76.4 한국 45.7로 나타나 있다. 이 그래프만 보면 웬만한 전문가가 아니고서는 마치 한국은 재정건전성에 아무 문제가 없는 것처럼 오인하기 쉽다.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해 5월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유사한 주장을 한 바 있다. 당시 경제가 전시상황이므로 재정을 총동원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GDP대비 국가채무비율이 40%를 넘어도 OECD 평균보다 낮다고 평가하며 전례 없이 팽창하고 있는 재정지출에 따른 재정건전성 악화 우려에 선을 긋기도 했다. 오히려 문 대통령은 국가재정이 매우 건전한 편이므로 긴 호흡으로 바라보고 재정의 적극적인 역할을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재명 후보와 문 대통령은 한국의 국가채무비율이 선진국에서 사용하고 있는 국가부채비율과 포괄범위가 다르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넓은 의미의 국가부채는 필자의 추정으로는 2014년에 이미 100%를 넘어서고 내년 말에는 132%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국가부채가 과도하면 재정정책의 여지가 없어져 경기가 어려워지는 경우에도 대책이 없어 장기침체를 초래하게 된다. 때문에 재정을 위기의 방파제라고 한다. 일본이 전형적인 예다. 일본의 경우 1986년 12월~1991년 2월 중의 장기호황을 배경으로 자산가격이 급등하는 과정에서 기업대출이 급증했다. 1987~92년 5년 중 일본은행들의 기업대출이 GDP의 73%에서 97%로 급증했는데 대개 부동산담보대출이었다. 그러나 증가하던 부동산가격은 1991년 4월을 정점으로 하락으로 반전했다. 그 후 부동산가격은 10여 년 동안 하락, 투자위축과 금융부실을 가속화시켰다. 부채디플레이션 문제가 불거진 것이다. 부채는 있는데 자산가격이 하락하면 소비 투자가 위축되면서 경기가 장기 하락한다는 어빙 피셔의 유명한 주장이다.

그러자 일본정부는 경기부양을 위해 재정지출을 증가시켰다. 특히 1993~1996년까지 경기부진으로 자민당이 물러나고 무소속과 사회민주당이 집권해 어려워진 계층을 대상으로 포퓰리즘적인 복지지출도 확대했다. 자연히 그런 과정에서 국가부채도 증가했다, GDP에 대한 국가부채비율이 1991년 66%였으나 1992년에 73.7%로 증가한 후 드디어 1997년에 106%로 100%를 돌파했다. 국가부채가 일정수준을 넘어서면 이자상환을 위해 다시 국채를 발행해야 하는 부채의 함정에 빠지면서 국가부채는 지속적으로 증가하게 된다. 드디어 2009년에는 200%를 돌파하고 현재는 240% 내외를 유지하고 있다. 그나마 아베가 집권해 재정을 더는 악화시키지 않는 정책을 추진해서 2013년 이후에는 240% 내외를 유지하고 있는 중이다.

일본의 국가부채 급증 결과는 경기침체였다. 1973년까지의 고성장기를 마감하고 1974년부터 중성장기에 들어간 일본경제의 1974~91년 평균 성장률이 4.1%였으나 1992년에 0.8%로 주저앉은 후 2011년까지 평균 0.75%의 장기저성장을 지속하고 아베 들어 경기가 살아나기는 했지만 1% 수준으로 기약 없는 잃어버린 23년을 맞이하고 있다. 이만큼 재정악화가 무서운 것이다. 재정 무서운 줄 모르고 포퓰리즘을 남발하면 결국 국민들에게 참담한 결과를 가져오고 만다는 교훈을 남겨주고 있다. 일본은 기축통화국이고 미·일간에 무제한 상시 통화스와프가 체결되어 있어 외환위기는 없지만 장기 경기침체는 일본열도를 가라앉히고 있다.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재정을 마구 쓰는 바람에 곧바로 더욱 엄청난 재정위기를 겪은 지역이 2011년 재정위기를 겪은 남유럽이다. 남유럽은 2007년만 하더라도 국가부채/GDP 비율이 그리스 이탈리아만 100%를 소폭 상회하는 수준이고 포르투갈 60%대 스페인은 30%대로 건전한 편이었다. 그러나 2008년 글로벌 재정위기를 겪으면서 재정을 마구 쓴 결과 국가부채/GDP 비율이 2011년 그리스는 160%를 상회하고 이탈리아 120%, 포르투갈은 100%를 상회하면서 재정위기를 겪게 되었다.

국가부채가 많아지면 심할 경우 세수로 이자 갚기도 힘들어 신규국채발행이나 차환발행이 어려워지는 ‘부채의 함정’(debt trap)에 빠지게 되어 국가부도(sovereign debt crisis) 위험이 커진다. 2011년 남유럽 재정위기의 경험을 보면 국채이자부담이 GDP의 10~15% 수준에 이르면 부채의 함정에 빠질 수도 있다. 한국은 곧 이 수준에 육박하고 있다. 이재명 후보가 제시하고 있는 국가부채비율 100% 넘는 나라들을 보면 장기침체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일본과 남유럽 재정위기를 겪었던 나라들이 포진하고 있다. 한국도 글로벌 표준인 국가부채비율로 보면 이미 재정위기권에 진입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에만 사용하고 있는 국가채무비율을 다른 나라들의 국가부채비율과 비교하면서 대폭적인 재정지출만을 주장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포퓰리즘이 아닐 수 없다.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 실패와 코로나가 겹치면서 한국경제는 거의 붕괴수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소상공인 자영업자는 연일 문을 닫고 있고 청년들은 정규직이 16~17% 수준에 불과하고 사실상 실업자가 30% 수준이며 나머지 대부분은 단기알바로 투잡 스리잡으로 고통받고 있다. 퇴직 노장년층의 빈곤은 이루 말할 수 없다. 80여 만명이 한달 25만원 내외 정부 허드렛일자리에 목을 매고 있는 실정이다. 빈곤층으로 주저앉는 서민들은 연평균 400% 고리사채로까지 손길을 뻗고 있을 정도다. 1000만원 급전 빌리면 이자만 4000만원이다. 어떻게 이 늪을 헤쳐나갈 수 있나.

그런데 이들을 구제해야 할 정부는 벌써 국가채무비율은 50% 국가부채비율은 132% 수준이다. 더 이상 재정을 사용하기도 빠듯한 실정이다. 이런데도 막무가내 더 많이 더 빨리 돈 뿌리자는 주장만 난무하고 있다. 이제 정부는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해야 할 정도다.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고 “국가비상재건계획”을 추진해야 한다. 재정위기를 모면할 수 있는 한도가 어느 정도인가, 다급하지 않은 재정지출을 어느 정도 유예해서 가용재원을 마련할 수 있는가를 국민에게 소상히 밝히고 조달가능한 재정한도 내에서 모든 국민들이 허리띠를 졸라매고 땀과 수고로 정책실패와 코로나가 겹친 이 고통의 터널을 함께 통과해 나가자고 국민들에게 호소해야 한다. 2차대전 중 독일의 폭격으로 절망에 빠졌던 영국 국민들에게 ‘국민에게 요구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피와 땀과 수고뿐“이라고 외치면서 협상파를 물리치고 2차대전을 승리로 이끈 처칠식 리더십이 필요한 때이다. 50조건 100조건 어떻게 조달하고 어디에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어떻게 해야 붕괴되고 있는 경제를 재건하고 서민들을 살릴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
   
한국에서 사용하고 있는 국가채무(government liability)는 한국의 ‘국가재정법’에 의해 국가가 직접적으로 상환의무를 지는 좁은 의미의 채무만을 포함하고 있다. 주로 국채발행잔액이 대부분이다. 반면 선진국에서 사용하고 있는 국가부채(government debt)는 국제통화기금(IMF) ‘재정통계매뉴얼’에서 권고하고 있는 넓은 의미의 국가부채로 국가채무에 국가보증채무, 공공기관부채 중 국가기능수행 과정에서 발생한 부채, 공무원 군인연금 장기충당부채와 중앙은행 부채를 포함하고 있다. 대부분의 OECD 국가는 이 기준을 따르고 있다. 따라서 두 지표를 단순 비교해 한국의 재정사정이 문제가 없다고 하는 주장은 언어도단이다.

한국의 국가채무는 얼마전 여당 단독으로 국회를 통과한 2022년 예산에 따르면 내년에 사상최대규모인 1064조원에 이르러 처음으로 1000조원을 돌파하면서 GDP대비 국가채무비율도 50.0%로 추정되고 있다. 그동안 마지노선으로 간주되어 온 40% 선을 10%포인트나 뛰어넘는 수준이다. 국가채무가 2016년 말에 627조원이었으므로 문재인 정부 들어서만 437조원이나 폭발적인 증가를 기록하고 있다. 넓은 의미의 국가부채는 필자의 추정으로는 2014년에 이미 100%를 넘어서고 내년 말에는 132%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유로존 수렴조건인 60%를 넘어선 것은 물론 미국에서 위험수위로 간주해 ‘예산통제법’으로 통제하고 있는 100%를 크게 넘어서고 있는 위험수준이다. 미국은 2011년 국가부채비율이 100%를 넘어서자 추가적인 재정지출은 상하양원의 동의가 있어야 가능하도록 한 예산통제법을 제정해 엄격히 통제하고 있다. 금년 재정지출은 연말까지만 한시적으로 승인해 놓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은 OECD 평균보다 4~50%포인트나 높은 수준이다. 기축통화국도 아닌 한국은 이 정도면 언제나 재정위기를 걱정해야 한다.



오정근 필자 주요 이력 
▷고려대 경제학과 ▷맨체스터대학교 경제학 박사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 ▷한국금융ICT융합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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