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연대를 비롯한 진보시민단체 등의 반발에 부딪혔던 일명 '삼성보호법' 개정안이 14개월여 만에 자취를 감췄다. 국회 상임위원회에서 논의 한번 못한 채 법안이 철회된 것이다.
국가핵심기술 유출 근절을 목적으로 한 '산업기술의 유출 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 개정안(산업기술보호법 개정안)'은 지난해 10월 문재인 정부에서 청와대 대변인을 지냈던 고민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했다. 이 법안에는 친문(친문재인)을 비롯한 17명의 의원이 공동 발의자로 이름을 올렸다.
15일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삼성보호법' 개정안은 이달 10일 철회됐다. 대표 발의한 고 의원을 포함해 총 10명의 의원이 철회를 요구했다.
고 의원은 이날 본지와 통화에서 "(시민단체 등) 문제 제기 이후 전문가 집단과 현장 목소리에 더욱 귀를 기울였지만, 종국에는 철회를 결정하게 됐다"며 "철회 시기는 정무적 사안은 아니고 실무적 판단에 따랐다"고 말했다.
개정안은 국가핵심기술 보호업무가 전담조직·임원 부재 등을 이유로 실질적으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현실을 보완하고자 마련됐다. 또 적법한 방법으로 산업기술을 취득했더라도 대상기관 동의 없이 그 기술을 사용·공개하는 행위를 금지하도록 했다. 기술 유출 방지를 위한 책임을 강화한 것이다. 당시 고 의원은 '삼성전자 국가핵심기술 유출 방지법'이라고 이름 붙였다.
그러나 개정안은 취지와 달리 발의 직후 역풍을 맞았다. 민변을 비롯해 반도체노동자 건강·인권지킴이 반올림 등으로 구성된 산업기술보호법 대책위원회는 기술 사용·공개 행위 금지(제14조제1호의2 신설)가 '독소조항'이라고 지적했다.
공장 노동자나 지역주민의 건강 등을 위협하는 문제는 당연히 외부에 공개해야 하는데, 이조차 삼성전자 동의를 받아야 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대책위는 2007년부터 불거진 삼성 반도체 노동자들의 집단 직업병 문제를 예로 들어 공익문제 제기, 산업재해 인정 등이 어려워질 것을 우려했다. 생명·건강권 같은 더 큰 가치를 보호하기 위한 예외규정이 없는 것도 나무랐다.
무엇보다 2019년 8월 국회 문턱을 넘은 직전 개정안도 삼성보호법이란 비판에 휩싸였던 바, 이를 더 악화하는 내용의 법안이 나온 데 시민단체들은 분개했다. 직전 개정안에 대해 의원들이 사과한 지 8개월여 만이었다.
개정안에 대한 반발 여론이 거세지자 발의에 참여하거나 찬성한 의원들은 자성의 목소리를 냈다. 고민정 의원 측은 법이 악용되지 않게 수정안 등 방법을 강구하겠다고 밝혔고, 같은 당 박주민 의원은 개정안 옹호 발언을 사과했다.
결국 개정안은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심사조차 거치지 못하고 표류했다. 고 의원 등은 수정안을 따로 내놓지 않았다. 고 의원은 "발의 전에 미처 고려하지 못한 부분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었다"며 "향후 재발의 할 가능성은 사실상 없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