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남수 칼럼] ‘정부냐 시장이냐’ 낡은 이분법을 버려라

2021-12-13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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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남수 서정대 교수]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취임한 지 채 두 달이 되지 않은 지난 3월 12일, 세계적 여론조사 기관인 갤럽의 홈페이지에는 ‘새로운 큰 정부의 시대?’라는 제목의 칼럼이 실렸다. 이 글에서 갤럽은 여론조사 결과 미국인 54%가 팬데믹 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더 많은 일을 해야 한다고 응답했다고 밝혔다. 정부 개입을 부정적으로 보는 비율은 41%에 그쳤다. 정부의 역할 확대를 지지하는 비율은 갤럽이 조사를 시작한 지난 1992년 이래 가장 높은 수준이다. 시장과 정부가 엎치락뒤치락하며 주류의 자리를 교대해온 미국에서 정부가 전면에 나서는 게 정당화되는 때는 주로 대공황, 9·11테러, 금융위기처럼 경제가 크게 흔들리는 경우이다. 코로나19 사태로 본격화한 ‘정부의 귀환’도 이런 맥락에서 가시화한 것이다.
 
실제로 현재 미국에서는 ‘보이지 않는 손’인 시장 대신 ‘보이는 손’인 정부가 경제를 주도하고 있다. 진보 성향의 바이든 행정부가 들어선 영향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보수 진영의 트럼프 행정부가 재집권했더라도 경제가 불황의 수렁으로 빠져드는 것을 막기 위해 이는 불가피했을 것이다. 그동안 미국 정부가 경기 회생을 위해 써온 정책은 재정과 통화 정책의 ‘수문(水門)’을 활짝 열어 대규모 자금을 경제에 긴급 수혈하는 전통적인 케인지언 방식이었다. 특히 11월 초에는 1조2000억 달러 규모의 인프라 투자를 하는 것을 골자로 한 법안도 미 의회에서 통과됐다. 여기에다 최근에는 미 정부와 의회가 국가 주도 산업부흥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주목해서 봐야 할 것은 지난 6월 초 미 상원을 통과한 미국 혁신경쟁법안(USICA). 이 법안은 중국의 추격에 총력 대응하기 위한 미국의 종합판 산업정책을 담고 있다. 무엇보다 반도체 부문의 경쟁력 회복에 520억 달러를 배정했다. 또 국가과학기금을 통해 응용연구에 대한 자금 지원을 확대하고, 국내 ‘연구 허브’를 확충하며, STEM(과학, 기술, 공학, 수학) 교육과 연구 활동을 강화하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현재 이 법안은 하원에 계류돼있는데 지난달에 캘리포니아, 펜실베이니아, 미시간 등 11개 주의 주지사들은 하원이 반도체 산업에 대한 자금 지원 등 조치를 속도감 있게 진행해 줄 것을 촉구했다. 앞으로 하원이 이에 화답하면 미국은 민간 산업의 경쟁력 회복을 국가가 앞장서 밀고 가는 ‘신(新)산업정책’의 깃발을 올리게 된다.
 
이같이 국가가 경제를 주도하고 나선 것은 팬데믹 국면에 나타난 세계적 현상이다. 영국에서는 보리스 존슨 보수당 정부조차 국가 주도로 ‘녹색자본주의’를 착근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예컨대 영국 정부는 오는 2030년까지 휘발유 자동차 판매를 금지하겠다고 공언했다. 기후 변화 대응이 워낙 중요한 과제인 만큼 시장을 중시하는 보수당 정강을 역주행하는 것을 불사하고 있다. 상황은 일본도 마찬가지. 아베 정권의 바통을 이어받은 기시다 후미오 신임 총리는 일본형 ‘신자본주의’를 국정의 목표로 내걸었다. 기시다 내각은 전임 아베 내각이 규제 완화와 구조 개혁 등으로 경제성장의 새 동력을 확보한 것은 사실이지만 불평등과 사회 균열을 초래했다고 진단하고 있다. 이런 반성 아래 새 일본 정부는 분배 없이는 성장도 없다는 인식 아래 성장의 열매를 중산층이 더 누리도록 하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이를 위해 대표적으로 거론되고 있는 해법은 세제 개혁이다. 고소득층에 대한 소득세 부담을 높이고 최고 소득세율(55%)보다 훨씬 낮은 투자 소득세율(20%)을 상향 조정하겠다는 방안을 제시했다. 특히 근로자 급여 수준을 올리는 기업에는 세제 혜택을 부여하겠다는 점을 기시다 총리는 강조하고 있다.
 
한국 경제도 이 같은 세계적 흐름에서 예외가 아니다. 전례 없는 팬데믹 위기 국면에서 소비와 투자 등 민간의 경제 활동이 꽁꽁 얼어붙은 자리에 정부와 중앙은행이 돈을 풀어 온기를 공급해왔다. 더 큰 틀에서는 위기 극복을 넘어 경제와 사회구조의 대전환을 위해 디지털 뉴딜과 그린 뉴딜을 주축으로 한 한국판 뉴딜을 추진하고 있다. 미국의 외교전문지 포린 폴리시는 한국에 대해 “정부가 오랜 기간 개발주의를 실행하며 적극적인 산업과 무역정책으로 국내 기업을 측면 지원해온 국가”라고 평가하고 있다.
 
새 정부가 출범하는 내년 3월 이후 경제 정책의 방향타는 어떻게 될까? 대선 후보의 발언을 통해 이를 가늠해보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후보 수락 연설에서 “국가 주도의 강력한 경제부흥정책으로 경제성장 그래프를 우상향으로 바꾸겠다”며 “좌파 정책으로 대공황을 이겨낸 루스벨트에게 배우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유용하고 효율적이면 진보·보수, 좌파·우파, 박정희 정책·김대중 정책이 무슨 차이가 있겠냐”는 입장을 보였다. 기업인을 만난 자리에서 명확하게 해서는 안 될 것을 지정하는 것 외에 자유롭게 규제를 풀어주는 네거티브 방식을 강조한 게 이런 맥락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공정과 상식의 회복을 기치로 내건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는 후보 수락 연설에서 “대한민국 성장엔진을 다시 가동하겠다”며 “일자리를 만드는 것은 기업의 창의와 혁신이다. 불필요한 규제를 혁파하고 4차 산업혁명을 이끄는 기업에 자원을 집중하겠다”고 말했다. 윤 후보는 그러나 “시장은 만능이 아니다. 그렇다고 과거의 국가 주도 경제로 돌아갈 수는 없다” “성장과 분배는 한 몸”이라는 입장도 피력했다. 두 후보의 경제관은 엇비슷해 보이면서도 ‘경향성’ 면에서 차이점을 드러내고 있다. 이재명 후보가 정부가 경제 운용의 방향타를 강력하게 쥐는 국가 주도의 입장에 서 있는 데 비해 윤석열 후보는 상대적으로 시장 중시 입장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두 후보 모두 규제 개혁을 실행하고 필요할 경우 정부와 시장 모두를 유연하게 혼용하는 실용적 정책의 여지도 열어 놓고 있다.
 
여기에서 정부와 시장을 보는 관점에 대해 세 가지 점을 짚어보려 한다. 첫째, 팬데믹의 ‘여진’은 최소한 1~2년 이상 더 이어질 것이라는 게 지배적 전망이다. 그런 만큼 경제와 보건, 안보 위기를 안정화하기 위한 ‘큰 정부’의 역할은 당분간 계속될 것이다. 게다가 국가 간 산업정책의 경쟁이 가열되고 있는 상황에서 기후변화 대응, 공급체인 충격 완화, 양극화 해소 등 정부가 나서서 해결해야 하는 과제가 하나둘이 아니다. 그런 만큼 어느 진영이 새 정부로 들어서더라도 ‘글로벌 신국가주의’ 흐름에 올라타는 것은 불가피할 것이다.
 
둘째, 이를 감안하면 시장과 정부를 대치 관계로 보는 일부의 논쟁은 시의적절하지도 않고 생산적이지도 않다. 예컨대 밀턴 프리드먼의 적극적 시장중시론은 현실적이지 못하다. 프리드먼은 정부는 심판의 위치에 머물러야 하며 적극적 플레이어가 돼서는 안 된다며 정부의 경제 개입에 반대했다. 이런 순수 시장주의는 현재의 경제 위기에는 잘 먹히지 않을 잘못된 처방이다. 특히 한국 경제는 어느 진영이 정권을 잡든 친기업 대 친노조 등 성향에서 상대적 차별성을 보였을 뿐 기본적으로는 정부의 발언권이 압도적으로 강한 상태를 유지해왔다. 서구에서 얘기하는 원론적 시장경제를 제대로 운영해본 적이 한 번도 없다. 따라서 ‘시장이냐 정부냐’를 가르는 이분법적 사고는 어색하고 낡은 기준에 불과하다. 포트폴리오 짜듯 정부와 시장을 어떤 비중으로 섞어 혼합적 경제 운영을 할 것인지 정하는 실용적 방안이 솔직한 접근 방식이다.
 
셋째, 시장과 정부의 ‘분업’은 경제의 변화에 맞춰 유연하게 잘 조정해야 한다. 무엇보다 정부는 세계적 경제학자인 마리아나 마추카토가 역설한 것처럼 민간의 활력 제고를 선도하는 기업가형 마인드를 가져야 한다. 실리콘 밸리가 미국 정부의 대규모 연구개발 투자를 자양분으로 해 꽃을 피웠듯이 4차 산업혁명과 기후변화 대응 등 분야에서 정부 투자는 민간이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는 마중물 역할을 해야 한다. 하지만 위기 대응용 카드로 선택된 ‘큰 정부’는 영구불변의 조건일 수는 없다. 코로나19 상황이 안정되고 경제가 회복돼가면 큰 정부는 출구 전략을 구사하면서 민간의 활력이 되살아날 공간을 넓혀주는 게 필요하다. 국가 및 가계부채 증가, 자산 버블, 물가 상승 등 문제가 연착륙하도록 하는 정책을 펴면서 점차 시장의 영역을 키워줘야 한다. 그렇다고 시장이 만병통치약인 것은 아니다. 극심한 양극화를 가져온 신자유주의의 실패는 바로 시장의 실패를 의미한다. 시장은 성장의 과실이 골고루 공유되는 낙수효과 복원과 공정성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그래야 성장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도 다시 싹틀 수 있을 것이다.
 
통상 시장의 순기능을 강조할 때마다 약방에 감초처럼 나오는 얘기가 애덤 스미스가 얘기한 ‘보이지 않는 손’이다. 개인은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면 되며 그럴 때 ‘보이지 않는 손’에 이끌려 사회의 이익도 증진된다는 주장은 사실 ‘국부론’에서 단 한 번 언급됐다. 이 주장이 확장되며 시장의 실력을 맹신하는 신자유주의까지 이어졌다. 하지만 신자유주의는 심각한 양극화로 사회적 불신의 수위를 높인 상태에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우리가 간과한 것은 스미스가 또 다른 저서인 ‘도덕감정론’에서 균형을 잡아준 시각이다. 이 책에서 스미스는 상호 공감과 자애(慈愛)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이기심의 절제를 주문한다. “미덕의 완전성은 우리의 저급한 감정을 인류 공동의 행복을 추구하는 데 종속시키고, 우리 자신의 번영이 전체의 번영과 일치하거나 전체의 번영에 기여하는 범위 안에서만 우리 자신의 번영을 추구하는 것에 존재한다” 결국 스미스가 제시한 해답은 시장과 자애의 조화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경제가 성장하며 그 혜택을 많은 사람이 공유하는 ‘공동체 자본주의’의 실현이 한국 경제가 추구해야 할 목표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정부와 시장 사이에 금을 긋는 경직적 이분법이 아니라 유능하고 실용적인 정부와 공정하고 효율적인 시장을 유연하게 혼용하는 경제 운용일 것이다.
 
 
최남수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경제학과 ▷캘리포니아대 버클리캠퍼스 경영학 석사 ▷MTN 대표이사 사장 ▷YTN 대표이사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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