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레이 간담회 진행한 고승범 금융위원장
4일 금융권에 따르면 고승범 금융위원장은 지난 8월 첫 취임한 이후 '소통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앞서 고 위원장은 금융위원장에 내정된 당시 "금융회사의 창의성과 자율성이 최대한 발휘되도록 시장친화적으로 정책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며 "이를 위해 금융회사 CEO 등과 자주 소통하고 협력할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가장 먼저 만난 건 정은보 금감원장이다. 고승범 금융위원장은 지난 9월 2일 정은보 금감원장과 첫 회동을 갖고 '소통과 협력'을 강조했다. 고 위원장은 금감원이 과중한 업무를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조직 및 예산 차원에서 전폭적 지원을 약속하기도 했다. 고 위원장은 "금융위, 금감원이 금융권 및 이해관계자들과 적극 소통해 금융분야의 자율성과 창의력이 발휘되도록 하고 그 과정에서 법상 규정된 공정하고 투명한 업무수행이 이뤄질 수 있도록 힘을 쏟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민간 금융회사와의 소통도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
간담회에서 공통적으로 언급되는 건 '가계부채 관리'다. 앞서 고 금융위원장은 지난 9월 금융지주 회장들과 회동을 갖고 "실물경제 성장세를 넘는 부채 증가는 경제위기 발생 확률을 높이는 리스크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며 "가계부채 증가가 자산시장 과열과 상호 상승작용을 유발해, 이미 그 부작용이 위험수준에 가까워졌다"고 우려했다.
이어 그는 "기준금리 인상, 미국의 연내 테이퍼링 가능성 등 향후 경제·금융환경 불확실성까지 고려한다면 가계부채 관리 강화는 선택이 아닌 필수적인 최우선 과제"라며 "5대 금융지주의 가계대출은 국내 금융권 가계대출 총액의 절반(47%)을 차지할 정도로 5대 금융지주의 역할이 중요하다. 실수요와 무관하거나 과도하게 지원되는 가계대출은 없는지, 제2금융권 가계대출 관리에 잠재위험은 없는지도 신경써달라"고 요청했다. 이어서 진행된 시중은행장과의 간담회에서도 고 위원장은 가계부채 문제에 대해 여러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업권별 ‘당근책’도 적극 제시
주목할 만한 점은 고승범 금융위원장이 잇단 간담회를 통해 금융사들이 수년간 요청해왔던 규제를 일부 완화해주는 등 '당근책'을 제시했다는 점이다.
시중은행의 경우 디지털 전환을 위한 지원을 약속했다.
그는 "금융그룹이 하나의 슈퍼 앱을 통해 은행·보험·증권 등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디지털 유니버설 뱅크'가 가능하도록 제도적 여건을 조성하고, 망분리 합리화 및 금융·비금융 정보공유 활성화를 검토하는 한편, 은행의 디지털 신사업 투자를 적극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은행의 겸영·부수업무 확대도 언급했다.
고 위원장은 "은행이 '종합재산관리자'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신탁업 제도를 개선하고 부동산에 제한되어 있던 투자자문업을 개방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며 "현재 혁신금융서비스로 운영 중인 플랫폼 사업 등에 대해 사업 성과와 환경변화 등을 살펴보고, 은행의 부수업무를 합리적인 수준으로 확대하겠다"고 언급했다. 이를 위해 금융위는 부동산에 제한돼 있던 은행의 투자자문업을 전 상품으로 확대해 다양한 투자자문 서비스 제공이 가능하도록 제도를 개선할 계획도 밝혔다.
보험업계에는 '1사 1라이선스' 정책 유연화를 언급했다. 고 위원장은 11월 초 진행된 보험업계 CEO 간담회에서 "상품별·채널별·고객별로 충분히 차별화되는 사업모델을 위해 1사 1라이선스 원칙을 완화할 수 있도록 구체적 기준을 만들 것"이라며 "생활밀착형인 보험서비스의 출현을 위해 소액단기보험 인가도 차질 없이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고 위원장은 디지털 금융혁신을 통한 헬스케어 종합금융플랫폼으로서의 성장 지원도 약속했다. 플랫폼 기반의 토털 헬스케어 서비스 제공에 필요한 선불전자지급 업무 등 보험사의 신사업과 관련 있는 겸영·부수업무를 폭넓게 인정하고 상품 설명에 모바일을 활용하는 혁신금융서비스도 운영 성과를 보아가며 규제 완화에 반영한다는 계획이다.
카드업계에는 전자금융거래법 개정 시 도입되는 마이페이먼트(지급지시전달업) 사업을 카드사에 허용할 방침을 전달했다. 고 위원장은 “기존 신용·체크카드 서비스에 더해 계좌 이해에 기반한 송금·결제 서비스를 결합함으로써 종합페이먼트 서비스가 가능할 것으로 기대된다”며 “카드사 지급·결제 서비스 등으로 축적된 데이터를 더 잘 활용하고 유통할 수 있도록 마이데이터(본인신용정보관리업), 개인사업자 신용평가업, 빅데이터 분석·가공·판매 및 컨설팅 업무 등 여신전문금융사의 데이터 관련 부수·겸영업무도 더욱 확대하겠다”고 강조했다.
금융권은 고 위원장의 이 같은 '시장친화적 행보'에 환영하는 모습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그간 금융 업권별로 수년간 요청해왔던 사안을 허용해 주는 등 당근책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이라며 “대출규제 강화 등으로 금융시장의 자율성이 일부 훼손된 데 따른 당근책으로도 해석할 수 있으며, 각종 규제 완화가 어느 시점에 이뤄질지는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