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윤 칼럼] 종전선언을 종전선언답게

2021-12-02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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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윤 (사)남북물류포럼 대표] 



 

 
종전선언은 평화협정으로 가는 승차권이다. 정전 상태를 마무리하려는 정치적 의지이자, 지난 70여 년 동안 이어진 휴전 상태를 끝내고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 체제로 가려는 염원의 표시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에 이어 금년 9월의 유엔 총회에서도 '한반도 평화의 시작이 종전선언’에 있음을 역설하며 국제사회의 협력을 촉구했다. 한국 정부는 현재 미국과 종전선언에 담을 내용을 협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하지만 걱정이 덜컥 앞선다. 제대로 된 종전선언에 과연 이를 수 있을지 의문이기 때문이다. 적지 않은 시간 동안 노력해 왔음에도 합의는 아직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미국이 한반도 평화의 길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것이 지금 우리를 우려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워싱턴은 그야말로 종전선언에 대한 비난과 회의감으로 일관하고 있다. 이러다가 한국 정부마저 종전선언을 위한 종전선언에만 매달리지 않을까 걱정이다.
 
미국은 한국 정부의 정전선언을 탐탁잖게 여기고 있는 것이 확실하다. 문 대통령의 종전선언 제안이 나오자 입을 모아 비난을 마다하지 않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미국 외교가의 대표적 지한파 존 메릴은 “퇴임을 몇 달 앞둔 문재인 대통령이 종전선언을 서두르는 건 정치적 유산(legacy)을 남기려는 막판의 절박한 시도”라고 힐난부터 했다. 2008년부터 2011년까지 주한 미국대사를 역임한 캐슬린 스티븐스은 지레 너스레를 떤다. 북한이 종전선언을 빌미로 한미연합 군사훈련의 중단을 요구하고, 주한미군 주둔의 필요성을 문제 삼으면서 대북 제재 완화를 주장할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그래서 ”평화협정에 앞서 종전선언이 이뤄져서는 안 된다“는 순서가 뒤바뀐 이상한 주장마저 펴고 있다. 국무부 동아태담당 수석 부차관보 출신인 에번스 리비어 브루킹스연구소 선임연구원도 비핵화의 진전이 없는 상태에서 한·미 간 종전선언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밝혔다. 성 김 미국 국무부 대북 특별 대표는 종전선언의 개념에 대해 명확히 선을 그을 필요성이 있다고 하는가 하면, 크리스토퍼 힐 전 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 또한 종전선언의 효과가 확실치 않음을 강조하고 있다. 거기다가 현 한국 정부의 대북정책에 한국인들이 피로감을 느끼고 있다는 진단까지도 서슴지 않고 있다.
 
한반도 종전선언으로 미국이 주한미군을 철수할 수 있을까? 그러지 않을 것임을 미국은 우리보다 더 잘 알 것이다. 종전선언과 주한미군의 주둔은 전혀 별개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주한미군은 '한미상호방위협정'에 따라 주둔하고 있다. 주한미군은 북한뿐만이 아닌 중국, 러시아 등과의 관계에서 힘의 균형을 이루는 역할까지 담당하고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종전선언이 대북 제재를 완화하게 하는 힘을 발휘할 수 있을까? 유엔의 대북 제재는 안보리의 결의사항이다. 미국의 대북 제재는 의회의 동의를 거쳐야만 가능하다. 종전선언이 일거에 대북 제재를 완화하거나 해제할 수 없다. 이를 미국이 모를까? 그런데 왜 미국의 지도급 인사들은 종전선언에 비판적 입장을 견지할까. 그 이유는 들여다보면 종전선언에 따른 한국 사회 내의 움직임을 오히려 더 우려하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판단이 앞선다. 다시 말해 종전선언이 한국 사회에서의 대미 확장 억지력에 대한 비판 여론을 대두시키고, 한·미 합동군사훈련에 대한 비판적 여론을 등장시켜 지금까지 굳건하게 유지해온 한미동맹 관계가 약화하는 빌미를 제공하지 않을까 하는 심리적 부담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유엔군사령부의 향방도 논쟁거리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전쟁이 끝났다면 정전협정 관리를 위한 유엔사 주둔의 당위성을 퇴색시키는 여론이 조성될 수 있을 것이다. 조지 W. 부시 행정부에서 아시아 선임 국장을 지낸 마이클 그린 조지타운 대학 교수가 종전선언이 한국 내 진보파 등을 포함한 한·미 합동군사훈련 반대 측 인사들에게 변명거리와 기대감을 줄 수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을 보면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한마디로 말해 종전선언으로 인해 대두될 수 있는 한국 사회 내 대미 부정적 움직임이 염려되기 때문이다. 이 때문인지 종전선언 합의문에 대한 미국의 준비는 치밀하다. 우선 종전선언 문안에 “종전선언이 현 정전협정 체제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내용을 담는 방향으로 가려고 하고 있다. 종전선언이 주한미군의 주둔, 유엔군사령부 지위 등 한미동맹과 연결될 수 있는 정전체제 자체를 흔들지 않도록 쐐기를 박겠다는 것이다. 물론, 한반도 평화를 위한다는 수식어도 넣을 것임은 분명하다. 한국과 미국이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기 위해 노력한다” 등의 포장 문구 말이다. 이는 종전선언 이후 평화협정으로 가는 과정에서도 정전체제가 여전히 유지될 수 있게 하려는 사전 포석이다. 종전선언만으로 미군 휘하에 있는 유엔사의 존립이 퇴색되지 않도록 하는 근거다.
 
종전선언이 종전을 담보하지 않고 정전체제를 유지한다면 그런 종전선언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정전체제를 유지하는 종전선언, 평화협정 체결 과정에서 한반도의 비핵화, 북미 적대관계의 해소, 미국의 제재 완화가 이루어질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하지 못하는 종전선언이 한반도 평화를 위해 무슨 역할을 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격이다. 종전선언의 최종 합의 당사자인 북한이 과연 그와 같은 종전선언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문재인 대통령은 2018년 9월 미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종전선언은 정치적 선언일 뿐"이라며 언제든 취소할 수 있다는 언급을 한 바 있다. 그래서 미국이 원하는 종전선언의 내용에 아무 대안 없이 합의만 해 주는 것은 아닐까? 기회 있을 때마다 철통같은 한미동맹, 물 샐 틈 없는 한미공조를 강조해 온 한국 정부가 임기 반년도 채 남기지 않은 시점에서 종전선언에 대한 미국의 의도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을지 걱정이다. 그래서는 안 된다. 한반도의 평화를 확립해 갈 원칙을 가져가는 모습을 보고 싶다. 할 말은 해야 한다. 임기 초에 못했다면, 임기 말이 오히려 기회가 될 수 있다. 그래서는 안 된다고 말하라. 종전선언에 대한 대미 협상에서 미국을 넘어설 용기와 결단을 가지길 바란다. 




김영윤 필자 주요 이력 
▷독일 브레멘 대학 세계경제연구소 연구원 ▷통일연구원 북한경제연구센터 소장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상임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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