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마고지 일등병에게 - 이빈섬
이제 총을
그 총을 내려놓으라
참호 속의 일등병이여
중공군은 물러갔다네
백마고지
철원 비무장지대
69년만에 보는 햇살
그대 삶이란 무엇인가
그대 죽음이란 무엇인가
이토록 놓지못한 총으로 지킨
국가는 무엇인가
비오듯 쏟아지던 포성 속에서
그대가 사랑한 것은 무엇인가
떨어져나간 일등병 계급장 하나
화염에 타버린 가슴 속의 가족사진
두고온 소녀와 약속한 반지
그리고 마지막 편지를 쓴 만년필
어제 몇 술 뜬 밥과 국물
그대 어머니는 어디 가셨는가
그대 미래는 또한 어디로
날아가버렸는가 지킨 건
무엇이고 잃은 건 무엇이었는가
숨이 끊어져도 거두지 못한
사격자세로 그대는 아직
더 쏘아야할 것이 있는가
이제 전쟁은 끝났다네
아니 그대 삶이 전쟁이었고
그대 죽음이 전쟁이었다네
내 아버지
내 외삼촌
그대 이제 철모를 벗고
거기서 나오게
깊이 미안하고 깊이 어두워
사진 하나를 들여다 보며
지각한 미래가 이렇게 눈물을 쏟네
그저 미안하고 일없이 그리워서
그대를 생각하고 다시금 입술 깨물고
그 생각을 해보네 절망도 분노도
이토록 고요한 것을 때마침
비춘 햇살은 이렇게 따스한 것을
올라와 내 손을 잡아주게
백마고지 바람부는 산정에서
우리 뭔가 다시 시작하세
철모를 벗고 이제
땀을 닦으라
<빈섬 이상국 논설실장.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