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맹점 수수료' 인하 사실상 확실시…벼랑 끝에 선 카드사들

2021-11-12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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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게티이미지뱅크]

금융당국이 내년부터 적용될 카드 가맹점 수수료율 재산정 결과를 발표하기로 하자 카드업계가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사실상 인하가 확실시되는 상황에, 더 이상 낮아지면 생존권 위협이 불가피하다는 주장이다. 급기야 노동조합은 강도 높은 총파업까지 예고하고 나섰다. 최근에는 금융당국에서도 적격비용(수수료율의 근거가 되는 원가) 재산정 작업을 지속하는 게 맞는지 고민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가맹점 수수료 12년간 13번 인하…더 내릴 곳 없다

금융당국은 이달 중 원가 분석을 마친 후 당정 협의를 거쳐 카드 수수료율 인하 폭을 공식적으로 발표할 예정이다. 그간 3년 주기로 수수료율을 조정해왔고 올해도 인하가 사실상 확실시된다. 코로나19에 따라 자영업자 등 실물경제가 악화했고, 무엇보다 내년 3월 대통령선거가 예정돼 있기 때문이다. 여당 입장에서는 정치적 판단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가맹점 수수료는 지난 12년간 총 13차례의 인하 과정을 겪었다. 2007년 4.5%에 달하던 일반 가맹점 카드 수수료율은 1.97~2.04%로 반토막 났다. 영세가맹점은 0.8% 수준이다. 카드사 입장에선 수익에 직접적인 타격이 불가피한 셈이다. 이로 인해 카드사의 수수료 관련 수익은 급격한 내리막길을 걸었다. 업계에서는 현재의 수수료율은 수익 창출이 가능한 최저수준에도 못 미친다는 의견이 많다. 이들이 제시하는 적정 가맹점 수수료율은 1.5% 수준이다.

그렇다고 현 수수료 체제가 영세가맹점에 손해를 주는 구조도 아니다. 영세·중소가맹점이 내는 카드 가맹점 수수료는 이미 0%다. 연 매출 30억원 이하 가맹점은 우대수수료율을 적용받고, 부가가치세법에 따른 세액공제 제도로 카드수수료를 환급받고 있어서다. 이는 전체 가맹점 중 92%의 비중을 차지한다.

그럼에도 당정은 수수료를 다시 한번 낮추려고 시도 중이다. 가장 직접적인 원인은 정치적 논리다. 이를 거스를 경우, 대선을 앞두고 자칫 '영세자영업자를 저버린 결정‘이라는 비난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0.2% 인하 땐 카드사 1.3조 손실

그 사이 카드사들의 관련 수익은 급격히 악화됐다. 8개 전 업계 카드사(신한·삼성·KB국민·현대·롯데·우리·하나·BC카드)의 가맹점수수료 수익은 2013~2015년 5000억원에서 2016~2018년에는 245억원으로 감소했다. 이후 2019~2020년에는 가맹점수수료에서 1317억원의 손실을 낸 것으로 집계됐다. 이를 메우기 위해 대출사업과 리스, 할부금융 등 이자이익사업으로 눈을 돌렸다. 그 결과 8개 카드사의 당기순이익은 2019년 말 1조6462억원에서 지난해 말 2조263억원으로 늘어났다.

이 과정에서는 뼈를 깎는 비용 절감 노력도 동반됐다. 카드영업점 및 모집인 감소가 대표적이다. 금융감독원 금융통계시스템에 따르면 8개 카드사의 국내 점포 수는 2018년 말 58개에서 올 6월 32개까지 줄었다. 카드모집인 수 역시 2015년 말 2만289명에서 지난해 말 9217명으로 1만명 선이 붕괴됐다. 올 10월 말 기준으로는 8439명까지 줄었다.

이로 인한 피해는 소비자에게도 전이됐다. 비용 절감 차원에서 이른바 '혜자카드'(혜택이 많은 카드)로 불리던 상품들의 정리 작업도 병행했기 때문이다. BC를 제외한 7개사가 2017년 단종한 신용카드와 체크카드는 각각 73개, 20개에서 지난해 157개, 45개로 2배 이상 늘었다. 올해 들어선 지난 9월 말까지 신용카드 119개, 체크카드 46개가 사라졌다.

카드업계에선 가맹점 수수료가 또 한 차례 낮아지면 내년 영업이익이 올해보다 3분의1가량 줄어들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최근 나이스신용평가는 관련 수수료율이 0.1~0.2%포인트 낮아질 경우, 내년 카드사 합산 영업이익이 적게는 5000억원에서 많게는 1조3000억원가량 줄어들 수 있다고 전망했다.

◇카드사 노조 "적격비용 재산정 유지 시 총파업…카드결제 중단될 수도"

상황이 이렇자, 국내 카드사 노동조합이 가맹점수수료 인하와 적격비용 재산정제도 폐지를 촉구하고 나섰다. 적격비용에는 자금조달 비용, 마케팅 비용, 위험관리 비용, 밴 수수료, 일반관리 비용 등이 포함된다. 이는 사실상 수수료 인하를 유도할 수밖에 없는 수단으로, 대신 새로운 카드수수료율 협의기구를 만들 것을 제안했다.

실제로 미국이나 유럽연합(EU), 일본, 호주 등 대다수 금융선진국들은 카드사와 가맹점이 자유롭게 계약을 해 수수료율을 책정하는 방식을 차용하고 있다.

만약 요구조건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총파업을 통해 카드 결제가 불가능한 '카드대란'도 불사하겠단 입장이다.

김준영 사무금융서비스노조 신한카드지부장은 "대고객서비스 중단이라는 것은 수준에 따라 지불결제 프로세스상 단계가 일정 부분 중단되는 것을 의미한다"며 "만약 전산을 셧다운한다면 지난번 KT 사태와 마찬가지로 결제가 안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금융당국 안에서도 현 적격비용 재산정 작업을 지속하는 것이 맞는지 고민해야 한다는 자조적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김종훈 금융위원회 중소금융과장은 최근 한국금융연구원 주최로 열린 '2021년 금융동향과 2022년 전망 세미나'에 참석해 현 카드수수료 개편 체제 자체에 대해 의문을 표했다.

그는 "(재산정 작업이 이뤄진) 지난 10년간 카드 수수료율이 굉장히 많이 낮아졌다"면서 "과거 일반가맹점 수수료율은 4%대였는데 지금은 절반 수준"이라고 언급했다. 이어 "이 작업을 통해 국내 카드수수료 비율이 다른 나라와 비교해도 크게 낮아진 상태"라고 말했다.

그는 "(현재 카드수수료는) 정치적 이슈와 연계돼 있고 카드사의 장기적 성장 가능성에도 영향을 미친다"며 "향후 계속해서 적격비용에 기초한 카드수수료체계 재조정을 지속하는 게 바람직한지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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