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POP은 내 인생을 어떻게 바꿨나?] ⑨“BTS 때문에 직장도 혼다 대신 LG 선택했죠”

2021-11-13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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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현지 팬 통해 바라본 케이팝의 현재...팬덤 발전과 주류음악으로 전환

“케이팝 사랑 15년...한류는 이제 내 삶의 원동력이자 긍정의 힘”

저는 케이팝(K-POP)과 함께 자랐어요. 케이팝을 만나면서 저의 세상은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이 커졌고, 이를 통해 제 자신도 더욱 성장할 수 있었죠.


베트남 하노이에서 '케이팝 왕언니'로 유명한 레빅하씨(Lê Bích Hà·이하 레빅하). 그는 자신의 인생 속 케이팝이 미친 영향에 대해 이렇게 정의했다. 1991년생으로 이제 막 30대에 접어든 그의 인생에서 케이팝은 수많은 선택과 인연의 고리가 돼줬다. 

레빅하는 현재 LG전자 베트남법인 영업관리부서에서 3년째 근무 중이다. 이전에는 일본 회사에서 2년간 일했다. 그러다 이직 기간에 우연히 베트남 LG전자 신입사원 모집 광고를 봤다. 이미 다른 일본 회사인 혼다에서 합격 통보를 받았던 때였지만, 레빅하는 과감히 LG전자에 지원해 보기로 했다. 결과는 합격. 결국 혼다 입사를 취소하고 LG 입사를 택했다. 왜 이런 도전을 했냐고 물었더니 간단한 대답이 돌아왔다.
 

BTS가 광고한 회사잖아요.

베트남 하노이에서 '케이팝 왕언니'로 유명한 레빅하(Lê Bích Hà)씨. [사진=김태언 기자]

◆2008년 이후 케이팝 성장세 두드러져...공연 보러 싱가포르·태국 원정도 감내
아주경제는 지난 5일 하노이 남뜨리엠구에 위치해 있는 미딩 한인타운에서 레빅하를 만났다. 케이팝 팬이 된 지 이제 15년이 넘었다는 그는 케이팝 커뮤니티의 현황과 현재 케이팝 상황에 대한 진단까지 다양한 주제를 말하는 데 거침없었다. 베트남 내 한류의 변화 양상에 대해서도 해박한 지식을 자랑했다. 1시간 남짓한 인터뷰 시간 내내 레빅하는 케이팝을 향한 뜨거운 열정을 유감 없이 보여줬다.

그렇다면 레빅하는 언제부터 케이팝과 사랑에 빠지게 된 것일까? 베트남에 케이팝이 서서히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말이다. 당시에는 베트남에서 정식앨범 원본이 없고 같은 장르로 된 노래들이 묶여 있는 CD를 통해 케이팝을 접할 수 있었다고 레빅하는 회상했다. 팝송과 베트남 음악 사이에 한국 노래가 몇 곡 삽입돼 있는 형태였는데, 그것으로 베트남인들은 한국 노래를 처음 들을 수 있었던 것이다. 

레빅하 역시 일부 노래 묶음집을 통해 한국 노래를 처음 접했다. 케이팝 가수들은 처음부터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고 그는 말했다. 레빅하는 “수려한 외모, 톡톡 튀는 리듬, 세련된 패션, 뮤직비디오 등 모든 것이 좋았어요. 이전의 베트남 음악이나 서구 음악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신선한 느낌이 있었어요"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10대 때부터 팬 생활을 이어온 그가 지금까지 사들인 케이팝 앨범과 관련 상품들은 1000여개가 넘는다. 1991년생인 그녀는 베트남의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딱 중간세대라고 할 수 있다. 2000년대 초중반, 당시에는 정식 케이팝 발매 앨범을 구하기가 힘들었다. 브로마이드, 사진, 앨범, 테이프까지 케이팝을 듣고 보기 위해서는 시장에서 파는 일명 해적판 CD를 사거나 팬클럽 교류를 통해 물물교환을 해야 했다. 특히 동방신기를 좋아했던 레빅하는 관련 상품들이 나오면 말 그대로 ‘묻지마’ 구매에 나서기도 했다며 웃었다. 
 

베트남 동방신기 현지팬들이 팬클럽인 '카시오페아' 행사에서 동방신기 관련 제작물을 전시하고 있다. [사진=레빅하씨 제공]

물론 청소년기에 케이팝에 빠지기 시작하자 부모님들의 걱정도 커졌다. 딸 아이의 방안을 가득 채운 이국 가수들의 포스터가 달가웠을 리 없다. 학교에서도 케이팝을 좋아하는 학생들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았다. 한 학생은 “네가 좋아하는 케이팝 남자가수들이 여자들을 닮았다”며 비아냥거리기도 했다. 선생들 또한 레빅하의 못 말리는 케이팝 사랑이 학교 성적에 지장을 줄 것이라고 주의를 주기도 했다. 

그러나 케이팝 팬을 자처했던 이들이 상위권의 성적을 휩쓸면서 주변의 시선은 달라졌다. 레빅하는 "반에서 10등 안에 있는 아이들 중 7명이 케이팝 팬이었다"면서 "결국 부모님도 공부를 많이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공연 보러 가는 것을 허락해주셨어요"라고 말했다. 

레빅하의 케이팝 사랑은 청소년이 지나 성인이 돼서도 사그라들지 않았다. 그는 “2007~2008년을 기점으로 (베트남에서) 케이팝을 대하는 분위기가 확 달라졌어요"라고 돌아봤다. 당시 디지털화가 가파르게 진행되면서 동방신기, 수퍼주니어, 소녀시대 등의 팬층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기도 했다.

인터넷 보급과 케이팝은 함께 속도를 맞추며 영향력을 키워갔다. 레빅하 역시 대학생이 되면서, 본격적으로 케이팝 유료공연도 보러 가고 팬클럽 활동을 시작했다. 2000년대 말이 되면서 베트남에서는 이제 커버송(Cover Song)과 커버댄스(Cover Dance)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물론 베트남만의 독특한 현상은 아니지만, 콘서트에 가면 무대 주변에서 각 팬클럽은 자신이 좋아하는 가수들을 위해 노래를 부르거나 춤을 추면서 행사 자체를 즐기기도 한다고 레빅하는 설명했다. 

그는 "커버송과 커버댄스는 케이팝을 사랑하는 또 하나의 방식이었어요"라면서 "매일같이 자신들이 좋아하는 가수들의 공연과 음악을 듣다 보니 케이팝 가수를 그대로 모방하는 커버송과 커버댄스 활동에도 참여했다는 것이다. 레빅하는 내성적인 성격이었지만, 대학 시절에는 틈만 나면 공연장에서 동방신기의 커버송을 추곤 했었다. 베트남에서 이제 커버댄스는 하나의 문화현상이 됐다. 유명 베트남 가수들도 케이팝 커버댄스를 하는가 하면 이를 보여주는 전문적인 유튜브까지 생겼다.
 

베트남 현지팬들이 케이팝 공연에 앞서 커버댄스를 추는 모습. [사진=레빅하씨 제공]

 
육아부터 사회봉사까지 삶을 나누는 공동체 '팬클럽' 

2010년이 넘어서면서 팬클럽 역시 거대해지고 체계화됐습니다. 수백 명의 팬클럽을 관리하는 주요 관리자들이 있고 이들이 정보와 소식, 그리고 모임을 공지합니다. 저 역시 대학생 시절에는 방탄소년단(BTS) 팬클럽 관리자로 활동했습니다. 베트남 음악전문방송에도 케이팝 팬클럽이 공지하는 소식이 자주 나왔어요.


최근에는 베트남의 새로운 팬덤(팬클럽) 문화도 주목받고 있다. 그간 베트남은 케이팝이 인기는 높았지만, 개별 팬들이 많아 이렇다 할 팬덤 문화가 없었고, 팬클럽 조직화도 이루어지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하지만 해를 거듭하면서 이런 분위기도 빠르게 바뀌기 시작해 지금은 한국의 팬클럽과 크게 다르지 않을 정도로 진화하고 있다.

현재 베트남에서 가장 많은 팬덤(회원수)을 거느린 케이팝 그룹은 BTS 팬클럽인 ‘ARMY(아미)’다. 페이스북 공개그룹인 ‘BTS&ARMY 베트남’에 가입한 회원만 100만여명에 이른다. 또 BTS 멤버의 별도 팬클럽인 ‘TAEHYUNG VIETNAM’에도 수만 명에 이르는 회원이 가입한 것으로 파악된다. 세분화된 팬페이지만 수백 곳이다. 레빅하도 이러한 BTS 팬페이지 중 하나에서 활동 중이다.

“팬클럽 활동이 오래되다 보니까 이제 케이팝에 대한 활동뿐만 아니라 헌혈, 나무심기, 함께 공부 도와주기, 재활용품 만들기, 불우이웃돕기, 자녀 서로 돌보기 등 다양한 봉사활동도 하고 있습니다.”

레빅하는 베트남 케이팝 팬클럽이 단순한 응원에서 벗어나 다양한 활동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케이팝의 팬층이 광범위하다 보니 10대 초반부터 오래된 팬의 경우에는 30·40대도 즐비하다. 이들의 경우 가정이 있고 구매력 또한 상당한 편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팬클럽에서 만나 육아정보를 교환하거나, 대학생이 중·고등학생들 과외를 하는 등 또 다른 활동이 벌어진다.

“코로나19 전에는 제가 좋아하는 BTS를 보기 위해 태국 방콕과 싱가포르에 간 적이 있어요. 동남아 지역 한류 팬들이 사실상 다 모였습니다. 정말 짜릿하고 벅찬 감동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케이팝 때문에 주변 국가로 여행을 간 사례도 소개했다. 보통 공연을 하면 베트남이나 한국에서 볼 것 같지만 속칭 ‘찐’ 팬들은 아세안 등 가까운 국가까지 원정을 가서 가수들을 응원한다. 물론 한국으로 가면 더없는 선택이지만, 비용이 아직 비싸다. 때문에 주요 한류가수들이 총집합하는 공연이 홍콩, 대만, 싱가포르 등지에서 열리면 베트남 팬들도 이쪽으로 이동한다고 한다.
 

방탄소년단 정국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베트남 현지 팬들이 같이 모여 기념 모임을 하고 있다. [사진=레빅하씨 제공]


좋아하는 케이팝 가수에 대한 팬심으로 입사한 한국 회사에서 근무하면서 레빅하의 한국 문화 이해도는 더욱 높아졌다. 그는 “한국 회사에서 일하는 덕택에 주변에도 케이팝을 좋아하는 직원들이 많아요"라면서 "음악을 같이 듣고 월급날이면 근처의 한식당에 가거나 한국문화원에서 함께 한류 관련 활동을 합니다”라고 밝혔다. 

그는 얼마 전부터 정식으로 한국어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요즘에는 전반적인 한국의 문화에도 관심이 이어지며 한국 음식, 한국 전통예절, 한국 역사 등을 배우고 있다고 전했다. 레빅하는 케이팝을 정의할 수 있는 하나의 단어를 꼽을 수 있냐는 질문에 '사랑'이라는 말을 꼽았다. 조건 없는 사랑을 퍼부을 수 있는 대상이라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코로나19 상황에 공연이 중단되고 많은 것이 어려워졌지만, 케이팝 팬들은 여전히 응원을 이어가고 있다는 것을 가수들이 알아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밝혔다.

이어 레빅하는 나이가 들어도 팬심은 영원할 것이라는 다짐을 남기며 인터뷰를 마무리 지었다.  
 

앞으로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아도 케이팝에 대한 사랑은 늘 처음처럼 변하지 않을 겁니다. 그들은 언제나 제 마음 속에 자리 잡고 있어요. 지금처럼 말이죠!

레빅하씨의 회사 사무실 책상은 방탄소년단 관련 물품으로 꾸며져 있다. [사진=레빅하씨 제공]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정부광고 수수료를 지원받아 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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