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에서 상영되어 전 세계적으로 선풍적 인기를 끈 드라마 '오징어 게임'은 한국에 기회와 한계를 동시에 보여준 현상이다. 이 드라마가 개봉 불과 한달 만에 전 세계 1억4000만 가구가 시청해 넷플릭스 사상 최고의 드라마가 된 점은 분명히 기회로 다가온다. 마찬가지로 세계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K팝과 K무비와 함께 K드라마는 이제 전 세계를 주름잡는 문화 콘텐츠로 자리매김했다. 반면에 이 드라마가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지만 이에 따른 대부분의 과실은 제작사가 아닌 플랫폼 사업자 넷플릭스에 돌아갔다. 자기들 기준으로는 푼돈에 지나지 않는 240억원을 투자해서 1조원의 수익을 얻었으니 무려 40배에 달하는 수익률을 올린 것이다. 쉽게 말해 재주는 곰이 부렸으나 그 과실은 다른 사람 몫이었다.
설립 20여년 만에 세계 최대 미디어 기업으로 성장한 넷플릭스는 사실 한국 시장에서 많은 기회를 얻어가고 있다. 한국 드라마 제작에 투자해 높은 수익을 올리는 것 말고도 매우 저렴하게 인터넷 망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넷플릭스 콘텐츠 시청이 늘어나면서 이를 실어 나르는 인터넷 망의 교통량이 폭증하고 이로 인해 인터넷 서비스 회사들의 부담이 증가하고 있지만 이 회사는 별도 부담 없이 무임승차를 즐기고 있다. SK브로드밴드는 넷플릭스에 추가 비용 부담을 요구하고 있으나 넷플릭스는 이에 불응하여 현재 이 사안은 법정 소송에 이르렀다.
그러나 한국 당국이나 기업의 불만이 아무리 커도 이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미국의 초대형 다국적 첨단 회사들은 이미 전 세계 시장을 장악했고 대부분 국가의 기업들은 이들에게 철저히 종속되어 있다. 특히 GAFA라고 불리는 네 플랫폼 회사, 즉 구글, 애플, 페이스북, 아마존은 전 세계에서 독점적 지위를 확고히 하고 있다. 대부분 기업과 소비자들이 이 플랫폼들을 통해야만 물건과 서비스를 거래할 수 있기 때문에 이들 기업이 요구하는 조건을 쫓아갈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이들 다국적 기업은 이와 같은 공격적이고 독점적인 확장 정책을 통해 전 세계 시장을 장악하며 엄청난 수익을 올리고 있다.
이 때문에 이들 디지털 플랫폼 회사들을 규제하려는 국제적 움직임이 가시화되고 있다. 얼마 전 이탈리아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에서 합의한 디지털세가 그 한 예이다. 전 세계 경제의 90%를 차지하고 있는 G20 정상들은 2023년부터 초대형 다국적 기업들에게 최소 15%의 세금을 부과하기로 합의했는데 여기에 해당될 기업들이 주로 앞서 언급된 GAFA, 넷플릭스 등 디지털 플랫폼 회사들이다.
이러한 대형 첨단 기술 기업들이 전 세계에서 엄청난 수익을 올리고 있지만 국제 과세 제도의 허점을 이용해 아주 소액의 세금만 내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아일랜드나 헝가리 등 법인세율이 낮은 국가에 본부나 지부를 세워 세금을 회피하는 것을 막자는 것이다. 한국의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같은 다국적 제조업 회사들도 디지털세를 내게 되지만 그 금액은 크지 않을 전망이다.
이러한 조치는 늦었지만 당연한 것으로 여겨진다. 초대형 다국적 기업들은 세계화의 엄청난 혜택을 입고 있지만 이들의 수익 독점 구조는 세계적 불균형을 심화시킨다. 주로 미국에 위치한 이러한 다국적 기업들은 전 세계 시장에서 막대한 수익을 올릴 뿐 아니라 그들의 압도적 지위와 영향력을 통해 현지 기업들을 옥죄고 시장에서 밀어내고 있는 상황이다. 팬데믹, 기후 변화 등 심화되는 세계적 이슈들을 해결하기 위해 현재 각국 정부는 더 많은 지출이 필요하나 이에 대한 추가적인 세수 확보가 어려운 상황이다. 이런 마당에 다국적 기업에 새로 부과되는 디지털세는 이러한 정부 지출 프로그램의 재원을 확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로 인해 각국 정부들은 매년 1500억 달러의 새로운 세금을 거둬들일 수 있게 된다. 연 매출이 200억 유로 이상이고 이익률이 10%가 넘는 다국적 기업들은 10%가 넘는 초과 이익의 4분의 1에 대해 수익이 발생하는 국가에 세금을 내게 된다. 그 국가에 물리적인 법인체를 갖고 있지 않더라도 과세는 피할 수 없다. 특히 개발도상국에 더 많은 이익이 돌아갈 것으로 OECD는 전망한다.
특기할 만한 사항은 한국도 다국적 플랫폼 기업들을 규제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우리나라 국회는 소위 ‘구글 갑질 방지법’을 제정했는데 이는 구글과 애플 같은 모바일 앱 서비스 플랫폼 회사들이 앱 콘텐츠 업체들에게 자신들 시스템 내에서만 결제를 하도록 강요해온 것을 방지하려는 것이다. 이들 플랫폼은 자신들의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높은 수수료가 따르는 자체 결제 시스템을 요구했고 이로 인한 부담은 앱 개발자와 소비자들의 몫으로 돌아갔다.
법안이 통과되었지만 양 플랫폼 회사들이 이 정책을 따를지는 미지수다. 구글은 지난주 본사 발표를 통해 한국의 정책을 따르겠다고 발표했고 방송통신위원회에 구체적인 내용도 전달했다. 즉 앞으로는 앱 콘텐츠 개발자들이 구글의 결제 시스템을 사용하지 않고 외부 시스템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나 외부 결제에 대해서도 여전히 높은 수수료를 고집하고 있어 법안의 실효성이 의문시 된다. 애플은 아직까지 특별하게 개선된 대책을 발표하지 않아 이 법안을 무력화시키려는 의도를 보인다. 이에 따라 양 회사는 한국 정부와 향후 갈등 관계를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
구글과 애플과 관련된 당국의 조처는 한국뿐 아니라 외국에서도 첨예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는데 그 이유는 이러한 법안이 세계 최초로 한국에서 제정되었기 때문이다. 다국적 기업이나 재벌 회사들의 독과점 및 시장 장악에 대해 한국에서 거부감이 유독 높은 것이 한 이유로 지목된다. 또한 미래 먹거리 중 하나로 여겨지는 콘텐츠 산업을 육성하기 위한 조치로도 여겨진다. 특히 디지털, 문화 콘텐츠는 한국이 승부를 걸어볼 수 있는 전망이 밝은 분야다.
그러나 이러한 규제에도 불구하고 대규모 플랫폼 회사들은 자신들의 영역을 끝없이 확장하여 몸집을 계속 불리는 추세다. 특히 이들은 콘텐츠 시장에 직접 뛰어들어 기존 업체들을 위협한다. 넷플릭스는 단순한 DVD 렌털로 시작해 비디오 스트리밍 회사로 성장했지만 현재는 막대한 금액을 콘텐츠에 투자하고 있다. 애플은 애플TV 플러스, 아마존은 아마존 프라임을 통해 자체 콘텐츠를 생산하고 있고 이를 통해 넷플릭스의 아성에 도전하고 있다. 반대로 월트 디즈니는 디즈니뿐 아니라 마블 영화, 폭스TV 등 풍부한 자체 콘텐츠를 무기로 디즈니 플러스라는 비디오 스트리밍 플랫폼을 출범시켰다. 쉽게 말해 콘텐츠와 플랫폼 사업 간의 경계가 무너지면서 무한 경쟁의 시대에 돌입한 것이다.
이에 반해 한국의 상황은 초라하다. 앞서 언급한 대로 콘텐츠 산업 경쟁력은 어느 정도 확보했으나 플랫폼 분야에서는 갈 길이 요원하다. 물론 미국을 제외한 어느 나라도 플랫폼은 쉽게 넘보기 힘든 분야다. 유럽의 선진국들조차도 힘을 쓰지 못한다. 그러나 한국의 플랫폼 기업들에게 희망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네이버나 카카오는 그런대로 국내에서 탄탄한 입지를 구축했다. 검색 부문에서 한국은 구글이 장악하지 못하는 전 세계 몇 안되는 나라 중 하나다. 그러나 이것이 계속 된다는 보장은 없다. 글로벌 플랫폼 기업의 엄청난 확장 속도를 보면 한국도 안전하지 않다. 그런 이유로 한국 플랫폼 기업들은 어렵더라도 해외 진출을 서둘러야 한다. 안일하게 국내에서 골목 상권이나 넘볼 때가 아닌 듯하다.
이병종 필자 주요 이력
▷연세대 언론정보학 박사 ▷AP통신 특파원 ▷뉴스위크 한국 지국장 ▷서울외신기자클럽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