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유럽은 러시아의 자원 무기화가 항상 각국의 자원안보를 위협하고 있다. 러시아는 유럽 내 전체 액화천연가스(LNG) 수요의 40%를 공급하고 있어 이를 무기화할 가능성에 대한 각국의 우려가 크다. 지금까지 탄소중립의 핵심으로 추진했던 신재생에너지는 불규칙한 전력공급이 단점으로 꼽힌다. 태양광과 풍력 등 발전양식이 자연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이에 에너지안보 차원에서라도 원전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각국에서 커지고 있다.
영국은 앞서 '탄소 중립'(net zero)전략의 일환으로 신규 원자력 발전소에 대한 투자를 늘릴 계획이라고 로이터 통신 등을 통해 밝혔다. 영국의 넷제로 전략은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줄이고 흡수량을 늘려 2050년까지 이산화탄소 순 배출량을 '0'으로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10월 27일 파이낸셜타임스(FT) 등 영국언론에 따르면 영국 정부는 신규 원전 건설에 17억 파운드(약 2조7000억원)를 투입키로 했다. 영국 런던 북동부에 위치한 서포크 지역의 시즈웰C 원전 건설에 자금이 투입될 것으로 전망된다.
프랑스도 탄소중립을 위해 원전의 활용 범위를 넓힐 계획이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지난 12일 원자력 발전 연구개발에 10억 유로(약 1조4000억원)를 투입한다는 내용이 담긴 '프랑스 2030'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점진적으로 탈원전 기조에서 벗어나기 위한 움직임으로 풀이된다.
차세대 원전인 SMR은 원자로와 증기발생기, 냉각재 펌프, 가압기 등 주요 기기를 하나의 용기에 일체화시켜 300㎿(메가와트) 이하 출력을 내는 소형원전이다. 소형원전은 대형원전과 다르게 설치와 이동이 쉽다는 장점도 있다. 영국은 롤스로이스가 올해 초 SMR 1단계 개발을 마친 것으로 전해졌다. 최근 우리나라의 한국수력원자력도 SMR을 탄소중립에 이용해야 한다고 의견서를 제출해 눈길을 끌었다.
영국과 프랑스 외에도 불가리아, 크로아티아, 체코, 핀란드, 헝가리, 폴란드, 루마니아, 슬로바키아, 슬로베니아 등도 원전 회귀에 찬성 분위기다. 독일 정도만 유일하게 아직 원전에 대해서 완고한 입장을 보인다.
세계 1·3위 탄소 배출국인 중국과 인도는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 제출 요구를 거부했다. 강제적 온실가스 감축이 국가의 경제성장률에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우려로 해석된다. 각 국가들이 탄소중립에 대한 행보를 달리하면서 31일 개막하는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의 성과 도출도 어려워지는 분위기다.
현재 우리나라의 경우 탄소중립을 위해 원전을 줄이자는 입장과 오히려 원전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다만, 향후 원전의 수출 및 지역경제의 활성화를 위해서라도 정책의 유연성이 필요하다는 여론은 어느 정도 힘을 얻고 있다. 박병석 국회의장은 10월 11일 이집트 순방 당시 원전 세일즈에 나서며 우리 기술력에 대한 지원사격에 나서기도 했다.
주한규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정부가 제시한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위해 가장 유효한 수단으로 원전의 재가동을 꼽았다. 최초 운영허가 기간이 중단되는 원전 10기 정도를 계속 운전하는 것만으로도 약 7000만톤 정도의 온실가스 감축이 가능하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주 교수는 "원전은 탄소감축에 가장 유효한 수단으로 인정을 받아 미국과 영국 그리고 프랑스에서도 확대하려는 움직임이 있다"며 "우리나라가 탈원전을 시작한 것은 원전에 대한 오해와 편견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오판으로 시작된 탈원전을 고집함으로써 탄소중립에 유효한 원전을 원칙적으로 배제하는 건 잘못된 선택이며, 재생에너지만으로 탄소중립을 이루는 것도 실현 가능하지 않다"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