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대통령은 팬데믹과 경기침체, 트럼프 지지자들의 의회 난동 등 미국의 극심한 분열 등 역사상 유례가 없는 복합적인 위기국면에서 직무를 시작했다. 현재 미국 경제는 회복국면이지만 전 세계적인 공급망 붕괴라는 암초를 만나 3분기에는 2.0% 성장에 그쳤다. 적극적인 백신접종 확대 노력에도 불구하고 델타변이 확산으로 팬데믹의 장기화조짐에 경제 전반에 피로감이 쌓이고 있다. 매끄럽지 못했던 아프간 미군철수는 베트남 전쟁의 치욕을 상기시키며 '외교의 달인'으로 불리던 바이든의 인기 하락을 부채질했다. 아프간 철군 후 국면전환용으로 프랑스와 사전 충분한 상의없이 미, 영, 호주의 대중 안보 협력체인 오커스(AUKUS) 동맹을 서둘러서 발표하는 바람에 서방동맹이 적전분열하는 후폭풍에 시달렸다. 최근 갤럽의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바이든 대통령의 지지율은 취임 후 첫 3개월은 평균 56.0%였다. 그러나 최근 3개월인 7월 20일부터 10월 19일까지는 44.7%로 하락했다. 반면 트럼프의 지지율은 계속 상승하면서 2024년 그의 대권도전 가능성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현재 바이든 행정부의 최대 난제는 사회복지성 예산처리로 이 문제가 먼저 매듭지어져야 임박한 기후변화 대응과 산업경쟁력 강화, 친환경 경제재건을 내세운 '바이드노믹스'의 본격 시동이 가능하다. 바이든 대통령은 '인적 인프라'로 불리는 3조5000억 달러 규모의 사회안전망 예산안 통과를 추진했다가 지난주 그 규모를 반으로 줄여 타협안으로 제시했다. 부채 증가, 증세 등을 우려하는 공화당은 물론 민주당 내 일부 중도파의 반대에 막혀 몇 개월째 교착상태에 빠지자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한 궁여지책이다. 예산안이 줄어들면서 재원 마련을 위한 추가 세수확보 역시 2조 달러 수준으로 줄면서 고소득자에 대한 '부자증세' 공약은 대폭 후퇴했다. 새 예산안은 유급 가족 휴가와 커뮤니티 컬리지 무상 교육 등 일부 항목은 전면 백지화하고 의료 예산도 상당 부분 축소했다. 워싱턴포스트는 이를 50년에 걸친 바이든의 정치 경력에서 보기드문 정치적 도박으로 평가했다. 하지만 민주당 진보파의 반발로 대통령의 희망대로 이번 주 의회통과 여부는 불투명하다. 미 의회는 최근 격론을 벌이다가 양당 합의로 미 연방의 부채한도를 4800억 달러(약 570조원) 늘려주며 미국 정부는 디폴트 사태를 겨우 모면했다. 급한 불을 끈 바이든 대통령과 민주당 지도부는 사회안전망 예산안과 1조2000억 달러 규모의 ‘인프라 예산안' 처리에 전력을 다하고 있으나 민주당과 공화당의 격차가 거의 없는 현재의 정치지형상 바이든 대통령은 대공황을 극복한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실시했던 혁신적 복지정책도 추진은 쉽지 않아 보인다. 루스벨트 정부 출범 당시 민주당은 압도적 다수당으로 각종 법안의 의회 통과가 속전속결로 이뤄졌다.
팬데믹의 탈출구
외견상으로 미 경제는 코로나 사태 이전으로 되돌아가는 듯 보인다. 학교 수업이 정상화되고 여행객이 늘어나며 9월 실업률이 지난해 3월 이후 처음 5% 이하로 내려갔다. 그러나 지난해 팬데믹 발생 이전의 수준으로 회복이 되려면 아직 갈길은 멀다. 팬데믹이 선언되기 1개월 전인 2020년 2월에 비해 미국의 취업인구는 아직도 500만명이 적다. 그 갭이 꾸준히 메꿔지고는 있다지만 기대만큼 속도가 빠르지 못하다. 미국경제에 대한 팬데믹의 상처가 그만큼 깊다는 반증이다. 신규일자리 증가가 생각보다 더딘 데다 팬데믹 지속으로 보건의료계에 종사하는 취업자들도 번아웃(burn out)에 시달리며 일자리를 떠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델타변이 확산과 백신접종까지 정체를 보이면서 바이든 행정부는 여전히 팬데믹의 탈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는 지난 7월 4월 독립기념일을 맞아 팬데믹 공포로부터 미국의 독립을 선포했다. 그러나 델타변이로 인한 4차 대확산으로 이런 선언은 무색해졌다. 코로나19 백신과 관련된 허위 정보 및 음모론이 난무하는 가운데 공화당 지지층이 많은 주(州)를 중심으로 정부 주도의 봉쇄조치와 백신의무화조치에 대한 반발이 커지고 있다. 백신접종은 영국과 함께 세계에서 가장 먼저 시작했지만 백신접종률이 지금 G7 국가에서 꼴찌인 이유이다.
현재 미국 경제를 더욱 어렵게 만드는 것은 휘발유, 식료품, 자동차, 집값, 임대료 등 전방위적인 인플레이션 압박이다. 지난 수개월 동안 백악관과 미연방은행은 재정확대 정책으로 인한 인플레이션이 '일시적(transitory)'이라고 주장했으나 물가는 안정되기는커녕 계속 치솟고 있다. 중국도 유례없는 전력난과 국제 에너지 가격 폭등 영향으로 3분기 4.9% 성장에 그친 가운데 경제 전문가들은 향후 세계경제의 최대 위협으로 '공급망 병목'을 꼽고 있다. 팬데믹 장기화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떠나면서 산업현장 곳곳에 일자리 부족현상은 심화되고 있다. 경제가 기지개를 켜면서 수요는 늘어나지만 공장에는 생산할 사람이 부족하고 항구에서는 하역이나 운송을 할 사람을 구하지 못하면서 미국의 주요 항구는 최악의 물류대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다급해진 바이든 정부는 지난 13일 연말 크리스마스 쇼핑 시즌의 공급 대란을 해소하기 위해 항만을 24시간 가동하는 '90일간의 질주' 비상 작전을 선포하기까지 했으나 병목 현상은 내년 초나 되어야 풀릴 전망이다. 올해 말 테이퍼링(자산매입축소)을 시작하고 내년 중후반 기준금리 인상을 예고한 연준도 인플레이션 공포가 커지면서 통화정책의 조기 정책전환을 고민할 수밖에 없다.
바이든 대통령이 출범하면서 미국의 '더 나은 재건'(Build Back Better)을 외쳤다. 미국이 제조업 혁신과 기후위기 대응과 투자를 통해 미국의 미래를 만들겠다는 의지를 담은 바이든 대통령의 핵심 선거공약이다. 코로나19 등장에 따른 반도체 등 주요산업의 공급망 위기를 경험한 후 중국 등 다른 국가에 의존하지 않고 미국 자체 부품과 기술공급망을 구축한다는 것이 전략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주 의회에서 사회안전망 예산을 1조7500억 달러(약 2048조원)로 삭감한 새로운 방안을 제시하면서 "이는 수백만 일자리를 만들고, 경제를 성장시키고, 기후 변화에 있어 중국을 비롯한 세계 주요 나라들과의 경쟁에서 우리를 승리로 이끌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언론은 당초보다 대폭 예산 규모가 줄었지만 바이든 대통령은 5550억 달러(약 649조3000억원)에 달하는 기후위기 대처에 필요한 예산은 그대로 두었다며 바이든 대통령이 특유의 유연한 정책과 적응력으로 국정을 수행하겠지만 기후변화에 대한 문제는 결코 양보를 하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명이라고 분석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2035년까지 화석원료 발전소를 없애고 친환경 전력생산 시스템 구축을 목표로 하고 있다.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 투자, 전기차 구매자에 대한 감세, 전기 버스·트럭 신규 도입, 산불·홍수 재난 지원금, 기후변화 인력 30만명 채용 등이 포함됐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주 기자회견에서 "기후변화 대응에서 역대 가장 중요한 투자"가 될 것이라며 "이 나라를 뒤바꾸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바이든 행정부가 이렇게 '그린'(친환경) 이슈에 골몰하는 이유는 라이벌인 중국과 배터리, 전기차 친환경 소재 등 친환경 기술 분야 (그린 테크) 경쟁이 가열되고 있기 때문이다. 미·중 기술경쟁에서 핵심은 반도체와 그린테크인데 반도체와 달리 그린테크 분야에서 중국이 앞서가고 있다. 또 하나는 기후변화에 대한 유럽동맹국들과의 다국적 협력을 통해 자유세계의 질서를 구축하겠다는 의도이다.
운명의 일주일
현재 유럽을 순방 중인 바이든 대통령은 다자주의를 통한 외교 강화와 동맹 달래기를 위해 본격적으로 ‘바이든표 외교’를 가동하고 있다.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참석차 이탈리아 로마를 찾은 바이든 대통령은 29일 (현지시간)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과 만나 "우리가 한 일은 어설펐다"고 말하며 영국·호주와의 안보동맹 '오커스'(AUKUS) 창설 과정에서 불거진 갈등을 봉합했다. 오커스 창설로 호주와 체결한 잠수함 공급 계약을 파기당한 프랑스가 격하게 반발하고 나섰던 일에 대해 공개석상에서 사실상 사과한 것이다. 이어서 유럽연합(EU)과는 미국과의 오랜 무역갈등 사안인 철강관세 분쟁과 '디지털세' 갈등도 해결했다. 1일에는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 참석을 위해 영국 글래스고로 이동한다.
190개국 정부대표와 전문가 환경운동가들이 참석하는 이번 회의는 국제무대에서 바이든 대통령의 리더십을 테스트하는 최대 기회이다. 기후변화 대응이 시급한 글로벌 이슈로 떠오른 지 오래됐다. 과거 민주당 출신 대통령 빌 클린턴과 버락 오바마는 집권 당시 탄소배출을 감소시키기 위한 과감한 액션 플랜을 제의했지만 그들은 의회와 산업계 압력에 굴복해 뚜렷한 성과를 도출하는 데 실패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트럼프 행정부가 파기했던 파리 기후협약을 복원시켰다. 바이든 대통령에겐 이번 회의에서 뚜렷한 성과를 내는 것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각종 악재로 자신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는 상황에서 기후변화 대응의 국제적 공조에 대한 구체적인 합의를 도출하지 못한다면 바이든호의 운명은 풍전등화일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이 국정수행 동력을 회복할 수 있을지 여부는 이번 주 버지니아 주지사선거 결과와 의회의 사회안전망 예산안 처리 그리고 COP26에서의 활약에 달려 있다. 이번 주는 바이든 대통령에게 그야말로 '운명의 일주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