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이 오르는 것에 부담을 느낀 다주택자들이 집을 내놓을 것이란 정부의 기대와 달리 집값만 더 상승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매물 잠김 현상으로 거래량 자체가 줄어들 수는 있지만, 버티기에 들어간 다주택자들이 매도 대신 증여를 택하는 등 우회 노선을 찾아 나섰기 때문이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유경준 의원이 최근 기획재정부에 확인한 내용에 따르면 정부는 내년 수도권 집값이 올해보다 5.1% 상승하고 주택거래량은 17% 줄어든다는 전망을 전제로 내년 세입예산을 편성했다.
부동산 거래량이 줄어든다는 예측을 바탕으로 양도세 감소를 전망했으면서도 종부세는 증가할 것으로 본 것은 부동산 가격 자체는 더 오를 것으로 봤기 때문이다.
유 의원은 "기재부가 발표한 2022년 국세수입 예산안에는 내년 부동산 가격상승 전망이 명백히 반영돼 있다"며 "이 전망치는 지난 7월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주택가격이 지속적으로 오를 수 없다'고 발표한 것과 대조적"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다주택자의 매물은 갈수록 말라가고 있다. 지난해 7월부터 올 6월까지 1년 동안 서울의 2주택 이상 다주택자 전체 주택 매도량은 5만1363건으로 1년 전(5만8090건)보다 12%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대부분은 양도세 중과에 대한 부담감에 쉽게 매물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집값 상승에 대한 기대감은 여전한데 다주택자에 대한 보유세·양도세 중과 등 세 부담이 강화되면서 아파트 증여 비중은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한국부동산원의 아파트 거래 현황(신고일자 기준)에 따르면 올해 1∼8월 전국의 아파트 증여 건수는 총 5만8298건으로 집계됐다. 해당 기간 전체 거래 건수(85만3432건)의 6.8%에 해당하는 수치다. 2006년 관련 통계 집계 이후 가장 높은 비율이다.
전국에서 아파트 증여 비중이 가장 높은 곳은 고가주택이 밀집해 있는 서울이었다. 전체 거래 건수 7만4205건 중 증여가 1만355건으로 13.9%를 차지했다. 서울 아파트 증여 비중은 4년 새 3.6배로 올랐다. 2017년 3.9%, 2018년 9.5%, 지난해 12.2%를 기록하는 등 4년 연속 증가하는 추세다.
서울 중에서도 집값이 비싼 강남권에서 증여를 택하는 비율이 높았다. 올해(1∼8월) 서울의 자치구별 증여 비중이 가장 높은 곳은 강동구(28.5%)였으며 송파구(27.1%), 강남구(20.9%), 양천구(16.0%) 등이 뒤를 이었다.
아파트 증여가 꾸준히 늘어난 것은 집값 상승세와 정부의 부동산 규제가 맞물린 결과라는 분석이다. 집값은 계속 오르는데 정부의 부동산 규제로 보유세 부담이 늘어나는 상황이 계속되자, 일찌감치 자녀 등에게 주택을 물려주기로 결정하는 사례가 늘었다는 것이다.
올해부터 다주택자의 종부세 최고 세율은 기존 3.2%에서 6.0%로 뛰었고, 양도소득세 최고 기본세율도 기존 42.0%에서 45.0%로 올랐다. 보유세에 부담을 느껴 집을 팔려고 해도 시세차익의 상당 부분을 양도세로 내야 하니 차라리 증여를 택한 셈이다.
더군다나 2023년부터는 증여 취득세를 매기는 기준이 공시가격에서 시가로 변경될 예정이어서 2022년 이전에 증여하려는 다주택자는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우병탁 신한은행 부동산투자자문센터 팀장은 "현재 다주택자의 양도세율(16∼75%)보다 증여세율(10∼50%)이 낮은 상황"이라며 "다주택자는 아파트를 팔 때보다 증여할 때 세금이 더 적은 경우가 많아 자녀 등에게 앞당겨 증여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