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날과 법률용어] 압날·참절·인육…한글날이 부끄러운 법률용어들

2021-10-09 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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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게티이미지뱅크]


법조문 등에는 여전히 일반인들이 단번에 이해하기 어려운 단어가 남아 있다. 그 원인 중 상당 부분은 낯설고 어색한 일본식 법률용어에 있어 보인다. 법제처는 누구나 알기 쉽게 법령 속 어려운 용어들을 바꾸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지만, 여전히 바뀌지 않고 남아있는 단어들이 있다.

▲ 참절(僭竊)…무슨 뜻일까?
지난 1997년 4월 16일 대법원 대법정. 형법상 내란죄와 반란죄 등 혐의로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은 법정에 나란히 섰다. 대법원은 ‘국토를 참절’한 혐의 등을 유죄로 봐 전두환 전 대통령에겐 무기징역을, 노태우 전 대통령에겐 징역 17년을 각각 선고했다. '국토의 참절 또는 국헌 문란을 목적으로 하여 폭동 하는 죄', 형법 제87조가 말하는 ‘내란죄’의 정의이다. 12·12 쿠데타로 집권한 뒤 전두환 전 대통령 등이 내란죄로 대법원에서 무기징역 등을 확정 받은 지도 20년 넘게 훌쩍 지났다.

참절, 한자로 쓰면 '참람할 참(僭)'에 '훔칠 절(竊)' 자를 쓴다. 사전적으로는 ‘분에 넘치는 자리를 가짐’, ‘당치 않은 고위 관직 자리에 있음’이라는 뜻이다. 법률적으론 ‘국토의 일부 또는 전부를 함부로 차지하여 주권을 빼앗음’이라는 뜻이다. 즉 쿠데타 등을 통해 불법적으로 정권을 찬탈하는 경우를 ‘국토의 참절’이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

‘참람하게 훔치다’라는 이질적이고 낯선 한자 조합, 참절은 ‘센세츠(せんせつ)’라고 발음되는 전형적인 일본식 한자어 조합이다. 이 때문에 법제처는 지난 2014년 12월 ‘참절’을 순화 대상 정비 용어로 지정해 법무부에 고지했다. 참절 대신 ‘불법 점령’ 정도로 순화하라고 권고한 것. 하지만 실제로 이행되지는 않았다.

▲ 압날'(押捺)…다가올 날이 아니다

'압날(押捺)'이라는 낯선 단어는 '검찰보존사무규칙' 제9조(보존절차) 1항에 나온다. '보존사무 담당직원은 재판확정기록 표지의 우측 상단 여백에 기록분류인을 압날하고...'라는 문구이다.

도대체 무슨 뜻일까. 없는 게 없다는 포털 어학사전에도 '압날'에 대한 검색결과가 없다. '단어의 철자가 정확한지 확인해 보세요'라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답변이 나온 것. 포털도 모르는 '압날', 일반 시민들은 당연히 처음 들어보는 단어다.

압날은 일단 한자로는 '누를 압(押)'에 '누를 날(捺)' 자를 쓴다. 그대로 해석하면 '누르고 누른다'는 알 수 없는 뜻이 된다. 압날은 '도장을 찍다'라는 뜻의 '압인(押印)'과 '날인(捺印)'에서 앞글자만 따온 말이다. 즉 그냥 '도장을 찍다'라는 뜻이다.

따라서 검찰사무규칙 '기록분류인을 압날하고'는 '기록분류 도장을 찍고'라고 고쳐놓고 보면 쉬운 말이다. 이 쉬운 말을 '기록분류인을 압날하고'라는 황당한 문장으로 써온 것. 압날이라는 한자는 '오우나츠'라고 발음되는 전형적인 일본식 한자어 조합이다.

▲ 일반인은 낯선 단어 모용(冒用)

형법 제232조 '자격 모용에 의한 사문서의 작성' "타인의 자격을 모용하여 권리·의무 또는 사실증명에 관한 문서 또는 도화를 작성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라는 구절이 나온다.

‘타인의 자격을 모용하여’, ‘모용’.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사이트에서 ‘모용’이라는 단어를 검색하면 모두 4개의 단어가 검색된다. 모용(毛用), 털을 씀. 모용(毛茸), 식물의 잎이나 줄기의 표면에 생기는 잔털. 용모를 뜻하는 모용(貌容)에, 고대 중국 북방민족 선비족(鮮卑族)의 하나인 모용(慕容)족까지. 모두 ‘타인의 자격을 모용하여’ 할 때의 ‘모용’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뜻이다.

형법에 나오는 ‘모용(冒用)’은 ‘모험(冒險)을 하다’ 할 때 쓰는 ‘무릅쓰다’라는 뜻의 ‘모(冒)’ 자에 ‘쓸 용(用)’ 자를 쓴다. 이 ‘모(冒)’ 자엔 ‘거짓으로 대다’라는 뜻도 있다. 따라서 형법의 모용은 ‘거짓으로 대서 쓰다’, 즉 타인의 자격을 ‘도용’하거나 ‘사칭’하는 것을 말한다. 법조계에선 일상적으로 쓰이지만 국립국어원 사전에도 나오지 않는다.

▲ 인육으로 오손되어? 무슨 뜻일까

민주공화국 국민의 기본 권리 중의 하나인 투표를 규정하고 있는 국민투표법, 국민투표법 제78조 2항에는 '다음 각 호에 해당하는 투표는 무효로 하지 아니한다' 6호에 이런 말이 나온다. '인육으로 오손되었으나, 어느 난에 기표된 것인가가 명확한 것'이라는 표현이다.

인육은 유래도, 정체도 불분명한 일본식 한자 조합이다. 그래서 '조선왕조실록'에도, 일제가 조선을 강점한 이후인 1914년 4월 쓰인 '순종실록부록' 정도에나 나온다. "공문에는 인육으로 흑색을 쓰며"가 그것이다. '공문에는 검은 인주를 쓴다'는 내용을 저렇게 표현한 것.

법제처는 지난 2006년 법전 속 '인육'을 더 써서는 안 되는 순화해야 할 용어로 지정하고, '인주'를 사용할 것을 권고했지만, 10년이 넘도록 '인육'은 우리 법전에 그대로 살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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