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나리포트] '탕핑'에 빠진 중국 부동산기업…규제완화 언제쯤

2021-10-07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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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금난에 토지 매입도 포기…하루 1개꼴 파산

규제에 돈줄 말라…헐값에 새집 내다팔기도

인민은행 '부동산' 이례적 언급…규제 완화 기대감↑

중국의 강도 높은 규제로 부동산 경기가 얼어붙고 부동산기업들은 자금난에 허덕이고 있다. [사진=로이터·연합뉴스]


#화난우후(華南五虎). 중국 화난(광둥·푸젠·하이난) 지역의 다섯 마리 호랑이라는 뜻으로, 한때 광둥성 부동산 시장을 주름잡았던 5대 부동산 재벌인 헝다·비구이위안·푸리·야쥐러·허성촹잔을 일컫는 말이다. 그런데 이 중 두 호랑이(헝다, 푸리)가 최근 위기에 휩싸였다. 350조원 빚더미에 허덕이는 헝다는 올 들어 연일 디폴트(채무불이행) 위기에 맞닥뜨렸고, 푸리도  자금난 속 지난해에만 인력의 절반을 감축했다.  

#지난 2017년 유동성 위기에 빠진 중국 부동산재벌 완다그룹 자산을 인수한 룽촹. 주택 판매면적 기준 중국 5대 부동산기업인 룽촹이 최근 자금난에 직면해 저장성 샤오싱시 지방정부에 제발 좀 도와달라고 읍소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한때 중국 부동산 시장을 주름잡던 부동산 대기업의 현주소다.  중소기업 상황은 더 심각하다. 중국의 강도 높은 규제로 부동산 경기가 냉각되자 자금난에 부닥친 부동산 기업들이 생사 갈림길에 놓였다.

부동산은 중국 경제의 30% 가까이 차지하는 핵심 부문이다. 부동산 경기가 침체하면 중국 경제성장률을 최대 1% 포인트 갉아먹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중국이 그간 강력히 조였던 일부 규제를 탄력적으로 풀 수 있다는 신호도 포착돼 시장은 예의주시하고 있다.
 
"돈 없어 땅 못 사" 얼어붙은 토지 경매시장
최근 자금난에 직면한 대다수 중국 부동산 기업들은 사실상 ‘반(半) 포기' 상태다. 중국 온라인매체 제몐망은 중국 민영 부동산기업들이 '탕핑(躺平)주의'에 빠졌다고 보도했다. 탕핑은 평평하게 드러눕는다는 뜻이다.  젊은 청년들이 힘든 사회 현실에 좌절해 의욕을 잃고 포기해 드러눕는다는 걸 표현한 신조어인데, 이를 부동산 기업의 현실에 빗댄 것이다. 

'탕핑'에 빠진 기업의 모습은 중국 토지 경매시장에서 잘 나타난다. 지난해만 해도 택지 매입에 열을 올렸던 기업들이 올 하반기엔 아예 단체로 토지 매입을 포기하며 토지 경매시장이 급속히 냉각됐다.
 
제몐망에 따르면 중국 주요 도시에서 올 하반기 이뤄진 토지 경매 유찰률은 평균 30%에 달하는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

지난달 26~27일 광둥성 광저우시에선 택지 48개 필지가 경매에 부쳐졌지만, 이 중 거래가 성사된 것은 23개에 불과하다. 나머지 25개 필지는 사려는 기업이 없어 유찰됐다. 매년 토지 경매 열기가 뜨거웠던 항저우도 예외는 아니다. 지난달 15일까지 모두 10개 필지 택지가 경매에 부쳐졌지만, 9개 필지가 유찰됐다. 
 
최근 토지 경매 조건이 까다로워진 점도 있지만, 부동산 규제 강화로 자금난에 빠진 기업들이 토지 매입을 '포기'했기 때문이다. 일부 지방정부는 토지 경매에서 기업들에게 집을 다 짓고 나서야 비로소 분양하도록 요구했다. 개발상들로선 자금 회수기간이 그만큼 길어지다 보니 웬만한 현금력으로는 토지를 매입하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옌웨진 중국 이쥐연구원 연구총감은 "채무, 자금 압박이 커진 부동산 기업의 토지 매입 의욕이 꺾였다"며 각 지방정부의 택지 공급 목표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고 전했다.

실제 중국 국가통계국에 따르면 1~8월 전국 부동산기업 토지 구매 면적은 1억733만㎡로 전년 동기 대비 10.2% 하락했다. 이는 주택 신규 착공면적 감소로 이어졌다.  1~8월 중국 주택 신규 착공 면적 10억800만㎡로,  전년 동비 1.7% 감소했다. 주택 신규 착공 면적이 감소세로 돌아선 건 수 년 만이다.
 

그래프로 보는 중국 부동산시장. [그래픽=아주경제DB] 

파산 신청 부동산기업만 300여곳···하루 평균 1개꼴
자금난에 허덕인 업체들은 원가보다 낮은 헐값에 집을 팔아 자금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투기를 조장하고 중국 부동산 시장 질서를 혼란에 빠뜨릴 수 있다고 판단한 지방정부들은 '집값 하락 제한령'으로 맞섰다.

9월 말 기준, 후베이성 웨양·주저우, 구이저우성 구이린, 윈난성 쿤밍, 랴오닝성 선양, 장쑤성 장인, 허베이성 탕산, 허베이성 장자커우 등 9개 도시에서 집값 하락 제한령이 내려졌다. 대체적으로 분양가보다 15% 싼값에 새 집을 팔지 못하도록 막은 게 규제 핵심이다. 
 
빚을 상환하지 못해 파산을 신청한 부동산 기업도 부지기수다. 중국 인민법원공고망에 따르면 올 들어 9월 말까지 파산을 신청한 기업은 모두 308곳이다. 하루 평균 1개 꼴로 파산한 셈이다. 여기엔 중대형 부동산 기업도 몇몇 포함됐다.
 
지난달 말 청산 처리된 광야오그룹이 그 예다. 광둥성 후이저우 소재 중견 부동산 기업으로, 지난 3월 파산 신청 후 구조조정에 돌입했으나, 끝내 문을 닫았다.  광저우 소재 또 다른 부동산 기업 웨타이도 지난 8월 구조조정 무산 후 청산됐다. 
 
파산 기업은 앞으로도 더 늘어날 전망이다. 올해에만 만기 도래하는 채권을 상환하지 못해 디폴트를 선언한 부동산 기업이 여럿이다.  판하이, 양광100중궈, 화샤싱푸, 그리고 지난 4일엔 중견 부동산기업 화양녠도 디폴트 위기에 직면했다. 중국 부동산재벌 헝다 역시 최근 파산설에 휩싸인 기업 중 하나다.
 
강도 높은 규제에 돈줄 마른 부동산기업들
부동산 기업들의 자금줄에 문제가 터진 배경에는 강도 높은 부동산 규제책이 자리잡고 있다. 

지난 수십년간 중국 부동산 시장은 호황을 누렸다. 대도시 집값은 매년 10%는 기본적으로 올랐다. 오늘날 중국 베이징, 상하이 등 주요 대도시는 세계에서 소득 대비 집값 비율이 미국 뉴욕, 영국 런던, 일본 도쿄보다도 높다. 그만큼 내집 장만이 어렵다는 뜻이다.  이는 시진핑 중국 지도부가 제창하는 '공동부유', 이른바 모두가 함께 잘사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정책 방향에 어긋난다. 

게다가 중국 부동산 기업들은 그간 부동산 경기 호황세 속 빚을 내서라도 집을 지었고, 은행들은 부동산 기업에 아낌없이 대출을 내줬다. 중국 부동산 경제는 사실상 빚더미 위에 쌓아올린 '사상누각'이었다.  모건스탠리에 따르면 중국 부동산업계 총 부채액은 18조4000억 위안(약 3387조원)으로, 중국 국내총생산(GDP)의 약 18%에 달하고 있다. 

부동산 거품 붕괴로 인한 충격이 금융 리스크로 전이될 것을 우려한 중국 정부가 부동산 부문 부채 통제에 나서게 된 배경이다. 

최근 중국 정부는 은행권의 부동산 부문 대출 고삐를 조이는 한편, 부동산 업체에 대한 차입 비율 제한도 까다롭게 설정했다.  지난해 8월 부동산 기업에 '세 가지 레드라인'을 제시해 △순부채율을 100% 이하로 낮추고 △유동부채 대비 현금성 자산을 1배 이상으로 늘리고 △선수금을 제외한 자산부채율을 70% 이하까지 낮추도록 한 것.
 
이 조건을 만족시키지 못하면 사실상 신규 차입을 할 수 없도록 했다. 실제 중국지수연구원에 따르면 중국 부동산 기업의 월간 융자액은 6개월 연속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8월 부동산기업 융자액은 1172억8000만 위안으로, 전년 동기 대비 반토막 났다. 
 
부동산 기업의 주요 자금조달 채널인 채권 발행도 어려워졌다. 중국 시장조사업체 윈드사에 따르면 중국 부동산 기업들의 역외 달러채 순발행액은 올 들어 약 10년 만에 감소세로 돌아섰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기업의 돈줄이 말랐다. 시장조사업체 레피니티브에 따르면 6월 말 기준 홍콩에 상장된 21개 중국 대형 부동산 기업의 이자보상배율은 0.94로, 최소 10년래 최저치까지 하락했다. 이자보상비율은 영업이익으로 이자비용을 얼마나 감당할 수 있는지를 나타내는 것으로, 기업의 채무상환 능력을 가늠하는 지표다.  이자보상비율이 1미만이면 영업활동에서 창출한 돈으로 이자도 감당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월 거래량 2000채 미만''···얼어붙은 주택 경기
강도 높은 규제로 중국 부동산 경기도 얼어붙었다. 국가통계국에 따르면 올해 8월 중국 70개 주요 도시 신규주택 가격의 전년 대비 상승률은 지난 5월 4.9%로 고점을 찍은 후 6월 4.7%, 7월 4.6%, 8월 4.2%로 석달째 하락세를 이어가는 중이다. 9월에는 4%로 더 둔화할 것으로 예상됐다. 
 
대도시 부동산 시장에도 찬바람이 분다. 중국 부동산 바로미터로 불리는 광둥성 선전시가 대표적이다. 전체 주택 거래의 약 80%를 차지하는 중고주택 시장은 거래 절벽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중고주택 거래량이 6개월째 하락하며 9월 고작 1765채에 그친 것.

인구 2000만명 도시 선전의 월간 중고주택 거래량이 2000채 아래로 내려간 건 12년 만이다. 지난해 월평균 거래량이 8376건에 달했던 것과 비교하면 80% 가까이 쪼그라들었다. 

부동산산업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중국 경제에 충격이 될 수밖에 없다. 미국 하버드대 케네스 로고프 교수와 중국 칭화대 양위안청 교수 연구에 따르면 건축, 가구, 인테리어 등을 포함한 부동산 부문의 중국 경제 기여도는 30%에 가깝다. 

레이몬드 영 ANZ은행 중국 담당 이코노미스트는 "부동산 경기 침체가 올해 중국 경제성장률을 0.5% 포인트 갉아먹을 것"이라고 전망했고, 모지 피델리티인터내셔널 자산매니저는 "부동산 난기류로 성장률이 최소 1% 포인트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부동산' 이례적 언급한 인민은행···주택 담보대출 규제 풀까
이런 상황에서 중국 정부가 조만간 부동산 규제를 일부 완화할 수 있다는 신호도 포착된다.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은 지난달 24일 열린 3분기 통화정책 회의에서 18년 만에 이례적으로 '부동산'을 언급했다. 회의는 "부동산 시장의 건강한 발전을 유지하고 주택 소비자의 합법적 권익을 보호하라"고 강조했다.

이어 29일에도 은행보험감독관리위원회(은보감회)와 공동회의를 열고 부동산 금융정책의 연속성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한편, 금융부처가 부동산 부문, 지방정부와 협조해 주택 소비자의 합법적 권익을 보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화권매체 둬웨이망은 실수요와 주택개선형 수요를 만족시키기 위해 맞춤형으로 대출 규제를 일부 완화할 것이란 신호로 해석했다. 주택 시장 실수요를 살려 부동산 기업의 자금 회수 속도를 높여준다는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부동산 기업 차입에 대한 엄격한 요구 조건은 그대로 유지할 것이란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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